월드컵은 민족보다 국가 정체성을 키운다

    •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입력 2018.06.16 03:00

[WEEKLY BIZ Column]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2018년 러시아월드컵이 시작됐다. 축구는 '공 하나로 지구촌을 하나로 만든다'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과연 월드컵이 민족 갈등과 정치적 분쟁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보통 사람들은 국적보다는 종교와 인종과 민족에 의해 정체성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해 국민은 낯선 사람이 되고, 극단적인 경우 서로를 적(敵)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국가 지도자들은 국민이 국가 정체성을 갖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미국이 독립기념일을 성대하게 치르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 같은 노력이 효과가 있을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좋은 예다. 이 나라는 과거 흑백 간 갈등으로 심각한 내부 분열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넬슨 만델라 당시 대통령은 럭비를 끌어들였다. 남아공 국가대표 럭비팀을 중심으로 국가를 단합하려고 했다. 그런데 럭비는 주로 미국계 아프리카인이 하는 운동이었고, 인종 차별을 옹호하는 이미지가 강했다. 그 때문에 남아공의 흑인 국민은 대체로 자국 럭비팀을 응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흑인인 만델라는 "우리는 모두 남아공 국민이고,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며 자국 럭비팀을 응원했다. 이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럭비 대표팀은 만델라를 지지하지 않는 세력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델라의 선언으로 인해 남아공 통합에 물꼬가 트였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연구는 이를 뒷받침했다. 쇼뱅 등 국제경제학자들이 행한 이 연구는 국가대표팀의 승리가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뤘다. 이를 위해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사하라 이남에서 펼쳐진 70여 개의 국가대표 축구경기 결과를 바탕으로 설문조사도 했다. 설문에는 '정체성을 가지는데 국가와 인종 가운데 무엇을 더 고려하는가' 등이 담겼다.

결과는 분명했다. 경기에서 이기면 국가에 대한 정체성이 커지고, 민족에 대한 고려는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정체성을 민족에서 찾는다는 비율은 20%나 줄었다. 또 대표팀이 승리하면 사람들은 다른 민족에 속한 자국 국민에게 더 많은 신뢰를 가졌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경기에서 승리가 폭력이나 내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에 관한 연구 결과였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축구선수권대회(네이션스컵) 결승에 오른 나라와 결승 진출에 실패한 국가의 갈등 정도에 대해 살펴봤다. 결과는 놀랍게도 결승전에 진출한 국가의 갈등과 폭력은 다른 국가보다 훨씬 적었다. 이 같은 평온한 상황은 6개월 동안 지속됐다. 스포츠처럼 민족 자긍심을 강조하는 이벤트는 심각한 분열을 겪는 국가에 도전이자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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