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족이 먹고 입고 쓰는, 매우 특별한 상품 800가지의 비밀

입력 2018.06.16 03:00

[Cover Story] 영국 왕실 인증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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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은 우수한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에 ‘기업 훈장’ 격인 왕실 인증을 해준다. 사진은 지난해 6월 런던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모인 왕실 가족. (앞줄 왼쪽부터) 찰스 왕세자 부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 윌리엄 왕세손 부부. / AP 연합뉴스

의류 버버리(Burberry), 자동차 벤틀리(Bentley), 차(茶) 트와이닝스(Twinings)의 공통점은 뭘까. 그냥 명품이 아니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엄선한 왕실 인증(Royal Warrant) 기업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벤틀리에서 특수 제작한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을 타고, 트와이닝스에서 제조한 차를 마신다. 외부 행사에서 왕실 맞춤형 버버리 코트를 입은 모습도 종종 포착됐다.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왕실이 있는 나라에선 왕실에서 쓰는 제품·서비스를 공급하는 업체가 따로 있다. 스웨덴, 덴마크, 스페인, 태국, 일본 등도 마찬가지다. 왕족이 쓰는 물품·서비스인 만큼 고를 때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과거 조선시대 왕의 진상품이 들어갈 때와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단연 영국 왕실은 그 역사와 규모에서 왕실 인증 기업 문화가 남다르다.

영국 왕실이 주는 왕실 기업 인증서는 기업엔 일종의 훈장이다. 일단 품질은 기본이고 이 품질을 오랫동안 유지했다는 전통이 탄탄하게 받치고 있어야 가능하다. 왕실 인증서는 최소 5년 이상 꾸준히 왕실에 제품을 납품한 기업에만 주어지며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인증서는 박탈된다.

탄탄한 전통의 장수기업이 대부분

현재 영국 왕실에는 800여개 왕실 인증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 분야에서 적어도 100년 이상 전문성을 검증받은 기업이 대부분이다. 와인을 납품하는 베리브로스앤드러드(Berry Bros & Rudd)는 1698년부터 런던에서 주류를 판매한 업체이다. 구두를 수제작하는 존 롭(John Lobb)은 1849년 시골 마을 구두점에서 출발한 초장수 기업이다. 왕실은 납품업체를 고를 때 단지 제품 자체만 보지 않는다. 환경이나 사회적 명성, 인도적 가치 등을 제대로 실현했는지 시대적 사명 수행 여부도 같이 점검한다. 리처드 펙(Peck) 왕실인증보유자협회 사무국장은 "기업이 왕실 인증을 받으면 매출은 물론, 브랜드 이미지 상승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기업 가치 컨설팅업체인 브랜드파이낸스는 관광산업과 관련 상품 판매, 영국 관련 이미지 개선 효과 등을 감안해 영국 왕실이 연간 영국 경제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가 지난해 기준 18억파운드(약 2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 중에서 왕실 인증 보유 기업의 수출 증대 효과는 1억9000만파운드(약 2700억원)로 추산했다.

도제식 교육 거쳐 가업 계승

영국 왕실 인증

영국 왕실 인증 기업이 10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한 비결은 뭘까. WEEKLY BIZ와 인터뷰한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빠르게 변하는 외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과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미 인증을 받은 기업도 5년 주기로 자격을 재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관리 기준이 엄격하다.

왕실 인증 기업 트와이닝스는 한 잔의 차를 만들기 위해 엄선된 차 농장에서만 찻잎을 공급받고 30년 경력 차 전문가들이 일주일에 2000여잔 차를 맛보면서 최종 제품을 내놓는다. 트와이닝스의 스티븐 트와이닝 대외협력 이사는 "고객이 마시는 차의 맛과 풍미, 향, 입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색상 등이 언제, 어디서나 균등하도록 철저하게 품질 기준을 지킨다"고 말했다.

왕실기업의 철저한 규율과 기술은 창업주 후손을 통해 대대손손 이어진다. 가업을 이어받은 구두업체 존 롭의 조너선 롭 매니저는 "나는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는 할아버지 밑에서 도제식으로 업(業)을 배웠다"고 했다. 19세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존 롭 매장에는 아직도 구두 장인 7~9명이 구두를 직접 손으로 만든다.

해외시장에 나선 왕실 인증 기업에 왕실 인증은 하나의 경쟁력이자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 스코틀랜드 의류업체 킨록앤더슨(Kinloch Anderson)의 더글러스 킨록앤더슨 회장은 "왕실 눈높이에 맞춰 품질을 유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상승했다"면서 "인증이 보장하는 신뢰와 전통이 아시아와 미국 등 해외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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