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살 네슬레 "스타벅스, 네 젊은 피가 필요해"

입력 2018.06.16 03:00 | 수정 2018.06.21 14:50

7조7000억원 주고 스타벅스 판매권 거머 쥔 '식품 공룡' 네슬레

'네슬레 커피머신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우려낸다.'

네슬레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식품회사다. 지난해 매출액이 898억스위스프랑(약 98조원)이다. 1866년부터 지금까지 150여년 동안 커피를 주요 제품으로 팔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네스카페' 같은 커피는 모두 네슬레가 만드는 제품이다. 커피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킷캣' 같은 초콜릿, '하겐다즈'와 같은 아이스크림, '네슬레퓨어라이프' 같은 생수 등도 생산·판매한다. 이 제품들은 전 세계 189국(지난해 기준)에 들어간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인 북한의 상점에서도 네스카페 커피가 진열된 장면이 뉴스에서 수차례 목격되기도 했다.

그런데 '식품 공룡' 네슬레가 최근 들어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주력 상품 커피 분야에서다. 지난 2015년 당시 세계 커피 시장 2위 업체인 야콥 다우 에그버츠(네덜란드)는 3위 업체인 미국 큐릭 그린 마운틴을 인수했다. 시장점유율을 높여 네슬레와 경쟁하기 위해서였다. 더 무서운 경쟁자도 치고 올라왔다. 스타벅스 등은 센스 있는 마케팅으로 젊은 층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네슬레의 인기는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세계 최고 소비 국가인 미국에서 네슬레의 부진은 두드러졌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네슬레의 미국 내 커피 점유율은 2.2%에 불과했다. 스타벅스(12.8%)보다 10%포인트 이상 떨어지는 수치다.

결국 네슬레가 칼을 빼들었다. 7조원을 넘게 주고 스타벅스 커피 판매권을 사들인 것이다. 앞으로 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판매하는 회사는 스타벅스가 아니라 네슬레다. 또 네슬레의 커피머신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맛보게 되는 시대도 열리게 됐다.

지난달 7일 네슬레는 "71억5000만달러(약 7조7000억원)를 스타벅스에 지급하고 스타벅스 커피 등의 제품 판매권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두 회사가 맺은 계약서를 보면 네슬레가 판매권을 인수한 제품은 '스타벅스' '스타벅스 비아' '스타벅스 리저브' '시애틀스 베스트 커피'와 같은 커피 제품과 차 브랜드인 '티바나' 등이다. 네슬레는 세계 곳곳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을 제외하고 마트나 편의점 등 매장 외부에서 이 제품들에 대한 판매 권한을 갖는다.

'7조7000억원+a'에 스타벅스 품다

7조7000억원 주고 스타벅스 판매권 거머 쥔 '식품 공룡' 네슬레

네슬레는 WEEKLY BIZ와 인터뷰에서 "스타벅스와의 이번 제휴는 재무적인 측면에서 네슬레에 굉장히 매력적인 계약"이라고 밝혔다. 네슬레가 인수한 스타벅스 사업은 연간 20억달러 가까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데, 이는 네슬레 그룹 총 연간 매출의 약 2%에 달하는 수치라는 것이 네슬레의 설명이다. 스위스의 네슬레 본사 관계자는 "이번 제휴를 통해 커피 부문의 총매출을 15%가량 올릴 수 있으며, 그룹 차원에서 성장 가속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이번 계약을 계기로 네슬레는 앞으로 자사 커피 브랜드인 '네스프레소(nespresso)'와 '네스카페 돌체구스토(Dolce Gusto)' 커피머신에 들어가는 캡슐에 스타벅스 커피가 담긴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현재 네스프레소와 돌체구스토 커피머신에는 네슬레가 생산하는 커피와 네슬레 제품의 상표가 새겨진 캡슐로만 커피를 내려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스타벅스가 생산하는 커피와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캡슐을 집어넣어 커피를 우려낼 수 있게 된다. 이 밖에 두 회사는 소비재 분야에서 일하는 500여명의 스타벅스 직원을 네슬레가 고용하기로 합의했다.

북미 시장 부진에 칼 빼들어

네슬레가 스타벅스에 내야 하는 돈은 계약 당시 발표된 71억5000만달러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소유권 이전에 따라 처음에 지급하는 비용일 뿐 앞으로 판매액에 대한 로열티를 계속 내야 한다. 두 회사는 "로열티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며 밝히지 않았다.

이만큼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네슬레가 계약을 진행한 배경에는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북미 지역에서의 부진이 자리 잡고 있다. 네슬레는 전 세계 커피 시장에서 굳건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북미 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이 다르다. 스타벅스를 비롯해 던킨도너츠나 맥도널드까지 매장에서 커피를 판매하는 등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네슬레 커피는 이들에 치이면서 경쟁력을 차츰 잃어 가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네슬레 커피 제품인 네스카페와 네스프레소의 시장점유율은 2%대에 머물렀고, 맥스웰하우스는 7% 수준에 그쳤다. 반면 스타벅스는 12%를 넘었고, 네슬레보다 늦게 커피를 내놓은 던킨도너츠도 2%를 유지했다.

노화 이미지 극복 위한 승부수

네슬레의 이 같은 부진에는 늙고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7일 '60세 미만이라면 누구든 네슬레가 지루하다고 여긴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같이 분석했다. 신문은 "비록 네슬레가 세계 커피 업계를 장악하고 있지만, 미국의 젊은 소비자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전했다. 미시간대 로스경영대학원의 에릭 고든 교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네슬레의 커피 브랜드 인지도는 제로(0)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에서 네슬레의 커피 점유율은 2%대로 곤두박질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네슬레는 WEEKLY BIZ와 인터뷰에서 "(늙은 이미지라는 해석에 대한) 특별한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면서도 "네슬레는 이번 제휴로 북미 지역 커피 시장에서 성장하기 위한 강력한 플랫폼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네슬레 판매망 손에 넣은 스타벅스

스타벅스는 이번 결정으로 8조원에 이르는 큰돈을 손에 넣게 됐다. 하지만 이제껏 애지중지 키워왔던 제품들을 매장 외에선 판매할 수가 없게 됐다. 전 세계 어딜 가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는 스타벅스가 왜 네슬레에 판매권을 넘겼을까?

여기에는 네슬레가 가진 전 세계 190여개 나라의 유통망을 활용하겠다는 목적이 깔려 있다. 스타벅스가 매장 외에서 내놓는 커피 제품에 대한 전 세계 유통망은 네슬레의 6분의 1 수준인 30여개 나라에 불과하다. 스타벅스는 "이번 제휴로 스타벅스 브랜드와 네슬레의 유통망이 만나서 전 세계 190여국 수백만 명의 가정에 스타벅스 커피를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데이타의 닐 손더스 애널리스트도 "이번 계약으로 스타벅스는 핵심 시장인 북미와 유럽 이외 지역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스타벅스가 카페 사업에 더 집중하기 위해 판매권을 넘겼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CNBC는 "이번 결정으로 스타벅스는 소매업을 네슬레에 넘겨버리고 카페에 집중할 여건이 조성됐다"고 분석했다.

한편 스타벅스는 이번 계약을 통해 2020년까지 총 200억달러(약 21조원)에 이르는 배당금을 주주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케빈 존슨(Johnson) 스타벅스 최고경영자는 "이번 계약으로 당초 우리 주주들에게 향후 3년간 지급하기로 약속했던 150억달러 배당 규모가 20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Hot Issue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