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문가 2명의 분석

    • 손열 연세대 교수
    • 허 윤 서강대 교수

입력 2018.06.02 03:00

[Cover Story]

손열 연세대 교수
손열 연세대 교수
손열 연세대 교수 "트럼프가 문제"

미·중 무역 전쟁은 지난 수십 년간 역사를 돌이켜 보자면 그다지 낯선 현상은 아니다. 미국은 1980~1990년대 일본에 대해 '공격적 일방주의'라는 무역 압력을 행사했다. 2000~2010년대 중국을 상대로 벌이는 무역 압박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당시 국제사회는 떠오르는 일본과 중국이 불공정 행위로 국제 질서를 위협한다고 봤다. 미국이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건 결국엔 국제 질서를 수호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거라 믿었다.

그렇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뿐 아니라 미국 자신도 국제 질서를 교란하는 주범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지금 현실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강렬한 경제 민족주의 색채를 담은 무역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연간 4000억달러에 육박하는 대중(對中) 무역 적자를 구실로 중국을 압박하며 철강, 알루미늄, 태양광 등에 보복관세를 물렸다. 자유주의 무역 질서 근간을 흔들고 있다. 이는 트럼프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보호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이나 다름없다.

더 근본적 원인은 패권국 미국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중국이 부상(浮上)하고 있는 전 지구적 세력 균형의 변화에 있다. 일반적으로 국제 질서는 압도적 세력을 보유한 국가 주도 아래 형성되어 왔다. 1945년 이래 미국은 강력한 경제력·군사력을 바탕으로 자유주의 콘텐츠를 담은 국제 질서를 구축, 유지해 왔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경쟁력 쇠퇴를 만회하기 위해 기성 질서를 편의적으로 활용하고 강제력을 종종 남용하면서 도전국 중국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첨단 기술 이전 요구 등을 비자유주의적 불공정 관행이라고 비난하면서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 이면엔 단지 자국 기업 보호나 무역 적자 해소 차원을 넘어 양국 간 전략적 경쟁이 걸린 첨단 기술 산업 부문에서 우위를 지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 미국이 중국의 야심 찬 굴기 전략인 '중국 제조 2025' 계획을 정조준하고 IT 기업 ZTE에 제재를 가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백악관에서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안에 서명한 뒤 결재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백악관에서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안에 서명한 뒤 결재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AFP
미국 쇠퇴·중국 부상이 배경

문제는 미래를 좌우할 전략적 산업 부문에서 관세 정책만으로 중국을 억제하긴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 부문에서 양국 기업들은 초국적 가치 사슬을 통해 상호 의존 관계를 심화하고 있다. 수출입 규제가 심해지면 서로 손실을 보는 구조다. 양국 정부가 보복관세로 일전불사(一戰不辭)를 외치면서도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저하는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지난 5월 19일 양국 간 무역 협상에 따른 공동성명은 상황을 봉합한 수준에 머물렀으나, 향후 양국은 전략적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더 세련되고 정교한 정책으로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이다.

힘의 우위를 활용하는 강대국 경쟁이 고조됨에 따라 자유주의 규칙과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는 혹한기를 겪을 것이며, 한국과 같은 중견국은 시련의 세월을 맞을 것이다. 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과정에서 보듯 강대국이 무역 이익을 위해 안보 카드를 활용하거나, 반대로 사드 보복에서 보듯 안보 이익을 위해 무역 카드를 악용하는 수법이 자주 벌어진다. 그 결과, 아·태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해 온 정경 분리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

한국은 현실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강대국과 양자 교섭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중시하는 통상 외교를 펼쳐야 한다. 일본, 호주, 아세안 등 무역에 의존하는 다른 중견국들과 연대하여 국제적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허윤 서강대 교수
허윤 서강대 교수

허윤 서강대 교수 "中이 원인 제공"

미·중 무역 전쟁의 발발 원인과 주요 쟁점은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우선 미국이 중국에 요구하는 바를 살펴보자. 첫째,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미국 수준으로 낮추라. 둘째, 미국 서비스·농산물의 중국 시장 접근을 더 용이하게 하라. 셋째, 보조금과 각종 산업 정책 형태의 정부 지원을 중단하라. 넷째, 합작 투자 제한 요건을 제거하라. 다섯째,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기존 정책과 제도를 폐기하라. 여섯째, 지식재산권의 사이버 절도에 대한 정부 용인을 근절하라. 일곱째,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화하라. 여덟째, 개혁 이행을 점검하는 분기별 회담 개최에 동의하라.

이에 반해 중국이 미국에 원하는 바는 이렇다. 첫째, 중국산 제품에 대한 일방적 수입 제한 조치들을 유예하고 추가 조사를 금지하라. 둘째, 중국 기술과 서비스에 대한 미국 정부 조달 시장을 개방하라. 셋째, 중국에 대한 미국 첨단 기술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하라. 넷째, 중국 기업에 대한 전자 결제 시장을 개방하라. 다섯째, 국가 안보 해석에서 중국 기업에 미국 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제공하라. 여섯째, 중국투자은행 CICC(중국국제금융공사)에 금융 라이센스를 부여하고 통신 회사 ZTE에 대한 수출 금지 조치를 철폐하라.

이처럼 미국은 중국 정부의 각종 정책과 규제 및 이행이 차별적이고 불공정하며 비상호주의적이라고 규정하고 근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오바마 이후 최근까지 이어져온 미국의 다양한 대중(對中) 압박과 징벌적 조치의 시정과 완화를 원하는 입장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G2 무역 전쟁을 개시한 이는 트럼프지만 그 원인은 중국 정부가 제공하였다. 역사적 맥락에서 이 문제를 되짚어보자.

지난달 19일 중국 난퉁에서 한 근로자가 수출 철강 제품 위에 앉은 수탉을 쫓으려 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중국 난퉁에서 한 근로자가 수출 철강 제품 위에 앉은 수탉을 쫓으려 하고 있다. /AFP
원인 제공자는 트럼프 아닌 중국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까지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 목표는 명확했다. 바로 중국을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편입시켜 시장 자유화를 이뤄내겠다는 것이었다. 성과도 있었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동남연해를 중심으로 대외 개방의 시작을 주도한 역사적 사건이었다면 2001년 WTO 가입은 장쩌민이 쏘아 올린, 본격적 자본주의 체제 돌입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이전 30년간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에 열심이었다면 2009년 이후로는 오히려 반시장적이고 퇴행적 행태를 보인다. 그동안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경제 발전 모델에 중국 정부가 나서 급제동을 건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미 상공회의소가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한 시점도 이때였다. 이런 중국을 오바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주도하면서 강하게 압박했다. 오바마 집권 기간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중국을 WTO에 제소한 건수는 이전의 5배에 달했다. 또 집권 후반에 이를수록 대중국 수입 규제 조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트럼프는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한 다자주의를 포기하고 힘에 의한 양자주의를 통해 중국 때리기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미·중 무역 전쟁은 향후 대화와 협박, 공격과 보복을 주고받으며 소강과 대치 국면을 반복할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식 통상 정책이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와 대통령 재선 여부에 관계없이 상당 기간 구조적 변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의 실질적 개혁 없이 미국이 종전(終戰)을 선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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