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인 슬로건 당장 내려라, 성과 없는 사람은 내보내라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입력 2018.06.02 03:00

'넷플릭스 컬처 덱'이 보여주는 디지털시대 조직문화

김경준 부회장
디지털 시대엔 어떻게 창의적인 인재들을 열정적으로 도전하도록 조직을 꾸리느냐가 기업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의 동영상 스트리밍업체인 넷플릭스가 만든 조직문화 바이블 '컬처 덱(Culture Deck)'은 실리콘밸리에서 오랫동안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요체는 자유와 책임이다. 컬처 덱 표지에 등장하는 태극 문양은 균형과 조화를 상징한다. 넷플릭스는 휴가와 출장경비 등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개방적 기업문화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비용 대비 효과가 적은 잡다한 프로세스를 간소화하면서 개인에게 엄격한 원칙과 도덕에 기반한 책임을 요구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1. 기업 가치를 인사 때 실행하라

'청렴, 소통, 존중'은 어떤 회사나 강조하는 가치다. 파산한 엔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추상적인 슬로건이 아니라 현실에서 보상받고 승진하고 해고되는 사람을 통해서 나타난다. 개인들에게 쉽게 체화되는 가치는 ①합리적인 판단력(judgement) ②차분하고 간결한 소통(communication) ③성과와 신뢰에 기반한 영향력(impact) ④광범위한 호기심(curiosity) ⑤문제해결형 혁신(innovation) ⑥논쟁을 감수하는 용기(courage) ⑦강인하게 성취하는 열정(passion) ⑧솔직담백한 정직(honesty) ⑨조직과 타인을 우선하는 이타적 행동(selflessness)이다. 이 9가지 덕목은 채용, 평가, 보상, 승진의 실질적 평가기준으로 적용되어 조직원의 구체적 행동을 유발하고, 가치와 행동의 상호연쇄작용을 거치면서 튼튼한 문화로 자리 잡는다.

2. 기업은 가족 아니라 프로스포츠 팀

기업은 가족이 아니라 팀이다. 동호회가 아니라 프로스포츠 팀이다. 훌륭한 일터란 화려한 사무실, 호텔급 구내식당, 고급스러운 워크숍 등 겉치레가 아니다. 멋진 동료들과 팀을 이루어 높은 성과를 만들어 냄으로써 개인과 조직이 성장하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이를 위해 인사부서는 채용, 육성, 해고를 현명하게 진행하여 모든 포지션을 최고의 인재로 구성해야 한다.

높은 성과를 지향하는 문화에 적응하는 유능한 사람들로 조직을 구성한다. A급 노력에도 불구하고 B급 성과를 내는 그저 그런 사람들은 퇴직금을 충분히 주면서 회사를 떠나 보낸다. B급 노력으로 A급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급여를 높이고 업무 부담을 늘린다. 간혹 안정성을 선호하고 성과지향형 분위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솔직하게 소통한 다음 떠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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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3. 자유는 맘껏 주고 책임은 엄격히

조직에서 자유만 넘치면 무질서해지고, 책임만 강조하면 경직된 화석이 된다. 자유와 책임의 균형은 거대 조직도 빠르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디지털 조직문화의 핵심이다. 기업 초창기에는 자유롭고 역동적이지만, 성장하면서 복잡도가 늘어나면 표준화된 규칙과 프로세스가 생겨난다. 창의적 인재들이 답답한 직장을 떠나고 조직 활력은 감소하면서 정체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단순화시키면서 불필요해지는 절차를 신속히 없애야 한다.

넷플릭스는 원래 연간 휴가일을 구체적으로 관리했지만, 직원들은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온라인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근무시간과 휴가규정을 없앴다. 직원들은 이제 근무시간이나 휴가 준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업무 성과에 의해서만 평가받는다. 출장비도 구체적인 사용 기준을 없애고 '회사에 최선이 되도록 행동하라(Act in Netflix's Best Interest)'는 지침으로 대체했다. 출장비를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출장의 성과를 보고 가성비를 따지겠다는 뜻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넷플릭스 본사.
4. 목표만 주고 방법은 알아서

'배를 만들고 싶을 경우 사람들을 불러모아 목재를 가져오고 작업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대신 그들에게 넓은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 주라.'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가 한 말이다. 좋은 매니저는 직원들을 통제하지 않고 업무에 필요한 통찰과 지식을 전달한 다음 자발적 행동을 유발하여 최선의 성과를 도출한다. 방향과 목표를 제시하면 직원들은 방법과 과정을 선택한다. 통제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평균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지만, 맥락의 전달은 뛰어난 인재들에게 동기를 유발하고 높은 성과를 거두게 한다. 조직 차원에서는 연수와 워크숍을 통해 전파한다.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선 기초적 지식도 학습시킨다. 엔지니어도 회사가 돈을 버는 기본 구조를 이해해야 전체적 맥락에서 업무를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넷플릭스가 월별 가입자 증가율, 콘텐츠 사용료 등 주요 사업지표를 전사적으로 공유하는 이유다.

5. 배치는 잘하되 통제는 느슨하게

조직의 팀워크는 ①구성원들을 강하게 통제하는 단일 조직 형태 ②사일로(Silo) 형태 ③구성원들이 잘 배열되어 있지만 통제는 느슨한 형태 등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사일로는 곡식·유류를 보관하는 격납고를 가리키는 말로 회사 내 서로 독립된 부서를 의미한다.) 단일 조직은 상급자가 관장하고 통제하는 방식인데 규모가 커질수록 느려지고 효율이 떨어진다. 사일로 방식은 구분된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데에는 효과적이나 협력 작업에는 취약하다. 잘 배열되어 있지만 통제가 느슨한 조직은 네트워크의 핵심이다. 이러한 조직은 크고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공유된 전략과 목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 과업은 상호 존중과 신뢰 기반에서 협력적으로 진행한다.

6. 우수 인재에겐 업계 최고 대우

평범한 두 명보다 탁월한 한 명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기 때문에 우수 인재는 항상 최고의 대우로 선발해야 한다. 입사 후에도 언제나 시장가치를 반영하여 급여를 책정한다. 특정 부서 시장가치가 올라가면 그 인력들에 대해선 이를 바탕으로 상승률을 책정한다. 성적이 나쁜 프로 스포츠 팀도 스타 선수를 유지하기 위해 고액 연봉을 지급하는 개념이다. 직원들이 경쟁사나 헤드헌터를 통해 자신의 시장가격을 타진하고, 매니저와 공유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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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투자·제작한 작품 포스터들이 본사 벽에 줄줄이 걸려 있다. 넷플릭스 조직철학을 압축한 ‘컬처 덱’은 자유와 책임을 단단하게 결합한 내용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
7. 경력개발은 스스로 도전

메이저 리그로 올라가는 선수는 재능에 운이 따라야 한다. 팀에서 기회가 없으면 다른 팀으로 이동하거나 마이너 리그에서 꾸준히 승격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넷플릭스에서도 재능에 운이 따르면 성장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반면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면 프로 선수처럼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는 걸 격려하고 축하한다. 경력개발의 핵심은 자기계발이다. 우수한 동료들과 도전적인 과제를 해결하며 경험을 쌓고, 독서와 토론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발전하도록 지원한다. 소위 멘토링, 순환근무, 경력 관리 등은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판단한다. 경력관리와 역량 개발은 각자 몫이다. 프로는 스스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 이미지를 자유복장, 자율휴가, 스마트워크, 개방적 사무실, 고급 구내식당만으로 국한하는 건 피상적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기업문화 이면에는 엄격한 원칙과 상호 신뢰, 그에 수반하는 책임이 있다. 아날로그 시대의 기업문화가 '낮은 자유, 낮은 책임'이라면 디지털 시대는 '높은 자유, 높은 책임'이다. 실리콘밸리를 어설프게 모방하면 '높은 자유, 낮은 책임'으로 흐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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