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北, 베트남보다 중국식 개방 모델 택해야… 지원할 땐 공짜로 주지 말고 빌려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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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6.02 03:00

      아시아개발은행 연구소장이 본 북한 경제개방 전략

      핵 폐기와 체제 안전보장이라는 주제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북한의 경제 개방이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닫혔던 북한의 문이 열릴 경우 북한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개방과 경제개발에 나설까.

      지난달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흥미로운 보고서를 내놨다. 60억달러, 우리 돈으로 6조4000억원만 외국기업이 북한에 투자할 경우 북한의 GDP(국내총생산)가 5%나 증가한다는 내용이었다. 베트남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외국 기업인 삼성이 최근 수년간 베트남에 투자한 액수가 이보다 세 배나 많은 170억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여러 나라 기업들이 나서서 소위 '껌값'만 투자해도 북한 경제의 파이를 어마어마하게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경제 사정을 고려할 때 북한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개혁·개방에 나설지 갖가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요시노 나오유키(吉野直行·69) 아시아개발은행(ADB) 연구소장은 WEEKLY BIZ 인터뷰에서 "김정은 1인 독재체제를 갖춘 북한은 베트남보다는 중국식 개방 모델이 적합하다"고 진단했다. 요시노 소장은 40여 년간 일본 게이오대 등에서 일본과 아시아 경제를 연구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북한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또박또박 힘주어 답했다.

      北 정치체제, 베트남보다 중국 비슷해

      북한이 개방 모델로 따를 만한 나라로는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이 우선 거론된다. 중국은 마오쩌둥의 공산화와 국유화로 오랜 기간 경제가 몰락한 후 등장한 덩샤오핑이 외국 자본을 과감하게 받아들이면서 개방에 성공했다. 외국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선전과 주하이 등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하는 경제특구를 신설했다.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각종 규정을 만들어 해외에 있는 화교들에게도 손을 벌리면서 급속도로 발전했다.

      베트남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1986년 '도이모이(쇄신)'라고 불리는 정책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에게 시장을 개방해 해외 자본을 유치했다. 둘 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정치적으로는 공산당이 완전히 독재체제로 집권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중국보다는 베트남이 상대적으로 미국 자본을 더 많이 유치했다는 점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과 핵 담판을 통해 수교까지 노리는 북한이 중국보다는 베트남식 모델로 가는 게 맞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요시노 소장은 북한이 베트남보다는 중국식 개방 정책을 펼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현재의 정치 체제가 북한이 베트남보다는 중국과 비슷하기 때문인 점을 들었다. 그는 "베트남은 공산당 전체가 정치를 운용하고 경제는 시장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반해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라는 강력한 1인이 독재체제를 갖추고 여러 공산당원이 그를 지원하는 방식"이라며 "김정은 위원장이 1인자로 군림하는 현재의 북한체제로 봤을 때 베트남보다는 중국식 모델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공짜로 주면 다른 용도로 쓸 우려 커

      북한이 개방에 나설 경우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외국 자본을 유치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으로 몰락한 유럽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실시했던 '마셜플랜'과 같은 대규모 경제 지원책을 북한에 펼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당시 미국은 유럽에 공짜로 자금을 지원하는 원조를 제공했다.

      하지만 요시노 소장은 국제사회가 북한에 무상으로 돈을 줘서는 안 되고, 빌려주고 나중에 갚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짜로 주면 북한이 원래 용도와 다른 분야에 쓸 우려가 있지만, 융자면 그럴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이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 국제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공업단지 건설, 학교 시설 개선 등을 추진해야 한다"며 "특히 북한이 제대로 개방에 나서려면 한국에서 출발해 북한을 거처 중국까지 갈 수 있는 도로와 철도 등의 인프라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융자를 받아 인프라를 깔게 되면 북한이 차근차근 돈을 잘 갚아 나갈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고 그는 전망했다. 그는 "인프라가 잘 깔려 주변 지역이 개발되고 공업단지에서 생산한 제품들이 해외나 국내에서 판매되면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고 세수도 증가한다"며 "20~30년 후 늘어난 세수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빌린 돈을 갚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런 시스템을 토대로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가 중국이라는 것이다.

      요시노 소장은 서로 다른 화폐를 쓰는 각국이 북한에 융자해줄 경우 북한과의 환율을 어떻게 조정할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이 각각 자국 화폐로 오랜 기간 북한에 돈을 빌려줄 경우, 북한이 돈을 갚아야 할 때마다 적당한 환율이 얼마인지를 놓고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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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2012년 2월의 중국 단둥 시내 모습. 단둥은 중국에서 가장 큰 국경도시로 북한 신의주와 다리로 연결돼 있다. /게티이미지
      한·중·일 거대 경제권 형성할 것

      2016년 한국으로 귀순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지난달 펴낸 그의 저서에서 "개성공업단지가 북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는 공급처이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개성공단 같은 곳을 14개 더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요시노 소장은 이에 대해 공단 건설 자체만으로는 효과가 없으며, 공단 주변에 철도와 도로가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단에서 생산한 제품을 운송하고 해외 판매가 불가능하다면 경제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 때문에 북한 개방이 성공하려면 도로·철도를 최우선으로 정비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한국에서 중국까지 물자가 오고 갈 수 있도록 북한의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경제 개방에 나설 경우 북한을 가장 큰 시장으로 보고 투자할 나라는 역시 한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한반도 전체가 하나의 경제권이 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중국, 일본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거대 경제권을 형성해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일본도 북한의 인프라 정비에 장기 융자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했다.

      요시노 소장은 인터뷰 말미에 유럽의 성공도 독일과 프랑스가 손잡고 거기에 이탈리아가 동참해 큰 경제권을 만들면서 가능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북한, 중국과 일본이 서로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는 구조를 얼마나 잘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느냐에 따라 북한 개방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