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기업인들이여 예술을 배워보라 새 길이 보일 것이다"… 세계적 예술대학이 MBA 개설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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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6.02 03:00

      세계 3대 디자인스쿨 英 센트럴세인트마틴
      세계 최초로 MBA 과정 개설

      영국 런던예술대(UAL)의 디자인 스쿨인 센트럴세인트마틴(CSM)은 미국 파슨스, 벨기에 왕립예술대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스쿨로 꼽힌다. 디올(Dior) 수석디자이너였던 존 갈리아노 메종마르지엘라 디자인총괄, 현재는 본인 이름을 건 브랜드를 경영하는 스텔라 매카트니 전 끌로에 디자인총괄과 알렉산더 매퀸 전 지방시 수석디자이너, 올해 버버리 디자인총괄로 임명된 리카르도 티시 등이 CSM 출신이다.

      CSM은 지난해 예술대학으로는 세계 최초로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개설했다. 예술·문화·디자인산업에 특화된 '아트 MBA'로 불린다. 이 과정을 진두지휘한 제러미 틸 학장은 건축가 출신의 아트스쿨 수장이다. 대개는 디자이너들이 맡던 자리다. 세라 위글스워스(Wigglesworth)와 공동 작업한 런던의 친환경 건축물 '10 스톡오처드스트리트(10 Stock Orchard Street)'로 영국건축학회(RIBA)의 상을 받기도 했다.

      모서리가 약간 닳아 떨어진 크로스백을 메고 걸어 들어 온 틸 학장을 학교 본관 1층 라운지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먼저 예술 산업에 경영학 지식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MBA 과정을 개설한 것이냐고 물었다. 틸 학장은 "완전히 반대"라고 답했다. 그는 "예술·문화계에서조차 경영학의 방법론이 아주 정형화돼 있다"며 "이와 반대로 예술적 관점에서 기존 경영학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MBA 과정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첫해 22명 뽑는데 135명이 지원했고, 잡지 편집장과 레스토랑 사장, 중견 사진가 등이 몰려들었다. 필수 과목에 '가치 분석, 문화 자본과 문화적 경험에 대한 이론과 팀 프로젝트'를 넣는 등 일반 MBA와 다른 문화 관련 강좌가 많다. 그러나 회계·재무 등 경영 전문 과목도 병행한다. 경영 과목은 런던대 버벡(Birbeck)칼리지에 위탁 운영한다.

      효율성보다는 가치를 탐구

      ―예술과 경영은 별개 영역이라고 보통 생각하는데.

      "이미 널리 알려진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에서 유추할 수 있듯 기업들이 예술과 디자인에서 힌트를 얻는 과정은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물론 아트스쿨이 운영하는 MBA는 우리 학교가 세계 최초인 만큼 쉬운 결정은 아니었고, 실패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디자인, 건축, 패션 등 창의적 분야의 전문 교수진은 이미 학교에 많아 추진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경영 부문은 외부 도움(버벡칼리지)으로 해결하면 됐다.

      ―일반적인 MBA와 차별화되는 점은.

      "주류 경영대학원(비즈니스스쿨)의 매력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경영대학원에서는 사례 분석을 통한 비용 절감과 순이익을 늘리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아트 MBA는 가치를 고민한다. 전통적인 경영학에서는 기업이나 조직 활동에 수반된 사회현상, 예를 들면 환경문제나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기 어렵지만 예술계는 다르다. 전통적인 비즈니스스쿨과 차별화되는 '가치에 기반한 접근법'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신입생을 모집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여학생 비중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첫해 입학생의 77%가 여성이다. 일반적인 MBA는 남성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경력은 다양했다. 예술계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 등 공공 부문, 출판, 마케팅, 제조업, 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울렀고 개인 사업가들도 있었다. 주류 MBA가 다루지 않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새로운 시각에서 고민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디자인 싱킹'이 전통적 경영 방식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기업인들은 문제와 해결책을 1차원적으로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정해진 답이 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일정한 절차를 따르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는 얘기다. 반면 디자이너들은 다차원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분석한다. 다양한 관계, 즉 대상들 사이 연결성을 함께 고려한다는 뜻이다. 다차원적으로 대안을 찾는 게 디자인 싱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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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한가운데가 트여 있어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세인트센트럴마틴 본관 내부./세인트센트럴마틴
      리더십에도 공감 능력을 중시

      ―그렇다면 창의적 리더십은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까.

      "창의적 리더십은 이미 과용된 단어라고 본다. 이제 리더에게 창의성보다 더 중요한 건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적 지능이 그 어떤 능력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만큼 더 큰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는 셈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풍부한 감정 표현을 능력 부족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문화권에서는 좋은 리더도 드물다.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사람들 사이에 상호이해도가 높은 만큼 공감 능력이 있는 리더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예술·문화산업계에서 일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나.

      "예술·문화만이 아니라 모든 산업계에 새로운 능력이 필요한 시기다. 세계가 워낙 빠르게 변하면서 새로운 이슈가 속속 등장하는 만큼 기존 경영 방식과 모델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민첩성과 창의성이 특히 중요하다.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방향을 전환하거나 방법 자체를 바꿀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경영 모델은 상황이 악화됐을 때 대개 아웃소싱(외부 하청)처럼 비용을 줄여 이익을 늘리는 방법을 떠올린다. 자본 중심 논리가 강한 영미 산업계와 대조적으로 독일 산업계는 강한 노동조합 문화를 갖고 있지만, 산업 기반은 오히려 더 탄탄하지 않은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디자인 싱킹을 활용한 사례가 있다면.

      "'공공 공동 실험실(Public Collaboration Lab)'은 CSM 재학생들이 캠던(Camden)구와 공동으로 진행한 정책·공공 서비스 개선 프로젝트다.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들이 캠던구의 공공 서비스를 점검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장이었다. 그중 대표적 성공 사례는 거동이 불편한 주민 집으로 공동 도서관 책을 배달해주는 '집 도서관(home library)' 서비스 운영 방식을 개선한 것이다. 운영 비용이 많이 든다는 지적 때문에 원인을 찾아보니, 이용층과 서비스 방식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노인들이 이 서비스의 주된 이용자였는데, 책을 배달하러 간 직원들이 최소 30분가량 방문지에 머물면서 말동무를 해 드리고 돌봐 드리느라 투입되는 예산 대비 효율성이 낮아졌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담당 직원들이 하는 일이 도서관 업무보다 사회복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그렇다면 사회복지제도와 결합하고 관련 예산을 더 투입하면 되는 것이다. 다양한 정부 부처가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하기만 해도 공공 서비스 수준과 효율성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술 관점에서 사회문제 해결 노력

      틸 학장은 "건축가로서 내가 발견한 것이 있다면 건축과 건축물에도 사회적 역할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특히 대형 공공건물은 상징적인 디자인, 미적인 부분 외에도 해당 건축물이 지역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 같은 공공건물을 지을 때 랜드마크가 될 만큼 독특한 디자인을 고안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친환경적 기능이나 지역민들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등 공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예술 교육기관들도 사회 기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예술을 공부한 학생들이 공공 문제의 해법을 찾도록 기회를 찾아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