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생산성 향상 실패한 아베노믹스, 한국이 닮을라

    • 권혁욱 니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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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5.19 03:00

      [WEEKLY BIZ Column]

      경직된 노동시스템… 효율적인 기업이 시장 퇴출되는 기현상
      소득주도 성장 외치는 한국과 닮은꼴 우려

      권혁욱 니혼대 교수
      권혁욱 니혼대 교수
      아베노믹스는 장기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고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됐다. 양적·질적 이차원(異次元)의 금융완화정책, 재정투입정책, 민간투자를 환기하는 성장전략으로 이뤄지는 '세 개의 화살'이핵심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과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물가, 환율, 주가, 실업률, 국내생산성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과 비슷하다. 결국 그동안 아베노믹스는 세계 금융위기와 동일본 대재난 등으로 인한 일본경제 하락을 원상회복시킨 정도였던 셈이다.

      일본경제는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기록적인 저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이후 아시아 금융위기, IT버블 붕괴, 글로벌 금융위기, 동일본 대재난 등 잇따른 위기를 겪는 동안 경제성장 지표는 등락을 거듭했다. 총요소생산성(TFP)은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취업률은 경기와 무관하게 40년간 일정했다. 반면 명목·실질 국내총생산(GDP)은 버블 붕괴 이전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외부 충격은 경제 내부 저력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내부 모순으로 발생한 구조적 충격은 장기적인 악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실질 GDP 하락시킨 주범, TFP 급락

      실질 GDP를 하락시킨 주범은 TFP 상승률의 하락에서 찾을 수 있다. 실증 연구들은 그 원인으로 세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상대적으로 더 효율적인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기현상 때문이다. 즉 시장의 자연 선택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지나친 규제와 경직적 노동관행 등으로 높은 진입장벽이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기업이 진입에 실패했고, 경제의 신진대사 기능이 약화됐다는 주장이다. 둘째, 은행이 국제금융 업무를 보려면 BIS규제(자기자본비율 8%)를 맞춰야 한다. 이 과정에서 부실 채권 문제가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회복 가능성이 낮은 대기업에 계속 대출과 금리감면을 해주면서 퇴출되어야 할 기업을 연명시켰다는 '좀비기업' 가설이다. 셋째,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높은 생산성 상승을 이끌었던 ICT 투자가 일본에서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ICT 투자 과소론'이다.

      그중에서도 장기 저성장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건 'ICT 투자 과소론'이다. 1995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불붙었던 ICT 혁명은 생산구조와 사회 전체 구조를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다. 여기에 잘 적응한 미국은 일본과 달리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경험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신진 기업들이 약진했다.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고,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했다.

      반면 버블 붕괴 이전만 해도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80%를 장악했던 일본에서 지금은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은 자취를 감췄다. ICT 시대를 상징하는 컴퓨터, 휴대폰, 소셜미디어 분야에서도 일본 기업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버블 붕괴 이전인 1989년 시가총액 기준 전세계 10대 기업을 나열했을 때 일본 기업은 NTT(1위)와 일본흥업은행(2위) 등 7개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17년엔 단 한 곳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빈자리는 애플, 구글, 아마존 등 ICT 혁명을 주도한 기업들이 차지했다.

      종신고용 등 경직된 노동시스템이 원인

      일본은 왜 패러다임 전환에 실패했을까. 과거 눈부신 성공을 가져다 줬던 종신고용제, 연공임금제,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이루어진 경직적 노동시스템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취업률은 40년 동안 꾸준하다. 이런 체계 안에선 우수한 ICT 기술자들은 대기업에 안주한다. 이 때문에 새롭게 창업한 기업은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다.덕분에 ICT 시대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 투자를 주도하기도 힘들었다. 대기업들도 인건비를 줄이려면 ICT 기술을 도입하고, 제품·서비스 개발이나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해야 하는데 연공임금제와 종신고용제에 갇혀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기준 일본기업 내부 유보금(현금·예금·보유채권)은 1조9000억달러에 달한다. 'ICT 혁명'이란 패러다임 전환기에도 일본은 투자 기회를 놓친 결과다. 과잉 저축에 따른 만성 유효 수요 부족이 이어지고, 정부가 유효수요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125조엔 재정 지출,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104조엔 공적자금 투입, 제로금리 정책, 양적완화 정책, 아베노믹스에서의 금융완화정책까지 동원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구조개혁 실패, 한국이 닮을라

      더 큰 문제는 ICT 혁명이 4차 산업 혁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로봇 등 기술 변화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과감한 연구개발투자를 단행하고 있지만 일본 기업들은 기대 이하다. 세계 연구개발비 상위 10대 기업에서 일본은 도요타자동차만이 겨우 10위에 턱걸이한 상황이다.

      마지막 남은 기회는 국민적 저항과 고통을 부를 수 있는 노동시장 개혁, 기업구조 개혁, 교육 개혁 등 과감한 구조개혁인데, 지난 5년간 정치적 안정 속에 이를 국민적 합의로 이끌 기회가 있었던 아베 정권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국 경제는 일본을 닮았다. 정부 주도 경제, 서비스업보다 제조업 우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이중 구조, 경직적 노동 관행과 교육 제도, 그리고 빠른 고령화 등이 일본과 같다. 2000년대 이후 GDP 성장률도 일본처럼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국내 투자도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투자 감소에 따른 유효수요 부족을 일본처럼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으로 메우려 하다간 일본이 간 길을 또 밟을 우려가 크다. 소득주도 성장은 그래서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