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클라우드 서비스는 비틀거리는 코끼리를 다시 춤추게 할까

입력 2018.05.19 03:00

[이철민의 Global Prism] (3) '23분기 만에 매출 상승' IBM 로메티 CEO의 승부수

이철민 선임기자
이철민 선임기자
2012년 1월 지니 로메티(Rometty·당시 54세)가 IBM의 수장(CEO)이 됐을 때, 43만 명의 전 세계 직원에게 강조한 것은 세 가지였다. ①이익을 못 내거나 경쟁력이 없는 비즈니스의 과감한 매각, ②급변하는 IT 환경에서 직원들의 지속적인 자기개발(reinvention), ③인공지능(AI)·클라우드 컴퓨팅·사이버 보안·모바일·소셜플랫폼 기술의 개발이었다. 물론 이는 160억달러의 적자에 허덕이던 IBM을 10년 새 80억달러의 날렵한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키며 '코끼리를 춤추게' 했던 루 거스트너(Gerstner)와 후임 CEO 새뮤얼 J 팔미사노(Palmisano)를 거치면서 계속된 흐름이었다.

그래서 PC 비즈니스를 중국 기업 레노보에 23억달러에 매각(2004년)했고, 반세기를 이끌어온 반도체 비즈니스는 2014년에 되레 15억달러를 '주고' 매각했다. 반면에 경영과 테크놀로지 설루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컨설팅을 35억달러에 사들였다. 1888년 출근시간 기록기 제조로 시작해 한때 전동 타자기, 미니프레임(중소형) 컴퓨터, PC와 프린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까지 생산했던 IBM의 새 방향은 분명했다. 비즈니스 주력 분야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를 거쳐 재무·인사·유통·판매관리 등에서 다양한 서비스와 비즈니스 설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의 변신이었다.

로메티는 이 변혁을 주도했지만, CEO에 오른 이래 22분기 연속으로 전체 매출은 감소했다. 2011년 1070억달러였던 매출액은 작년에 791억달러로 줄었다. 같은 기간, 세전(稅前) 이익도 163억달러에서 129억달러로 축소됐다. 이런 매출 감소는 한때 시가총액이 2316억달러(약 248조원)에 달했던 IBM이 핵심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판단한 '군살'을 덜어내고, 새 방향으로 선회하는 과정에서 예상은 됐지만, 그 기간이 너무 길었다. 매출 하향 곡선은 작년 4분기에 드디어 반전의 꼭짓점을 돌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의 평가는 박했다. 경영 실적이 발표된 지난 4월 19일 주가는 매출액 증가에도 최근 5년 새 최대 낙폭(7.5%)으로 빠졌다.

IBM 매출 추이
AI·클라우드를 전략 비즈니스로 선정

월스트리트의 박한 평가를 이해하려면 IBM의 주요 비즈니스 부문과, 로메티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이른바 '전략적 필수 비즈니스'의 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IBM의 비즈니스는 ①기업 전산 시스템에 각종 비즈니스 설루션을 구축하고 이를 클라우드 환경으로 확대하는 '테크놀로지 서비스와 클라우드 플랫폼', ②인공지능(AI) 왓슨과 빅데이터 분석을 활용한 '인지(cognitive) 설루션', ③170여 개국에서 기업들에 전략 컨설팅을 제공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서비스', ④메인 프레임과 서버(대용량 기업용 컴퓨터), 스토리지(데이터 저장장치) 등 기업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시스템 사업부' 등 4개 부문으로 나뉜다. 한편 로메티가 추진하는 '전략적 필수 비즈니스'는 인공지능 왓슨을 포함한 빅데이터 분석·클라우드·모바일·사이버 보안 등으로, 4개 비즈니스 부문에 녹아 있다고 보면 된다.

AI 왓슨은 분석 넘어 '예측'까지

이 중에서도 2016년 클라우드 플랫폼과 인지 설루션 기업임을 천명한 IBM이 주안점을 두는 것은 클라우드에 기반을 둔 왓슨의 '인지 능력'을 활용한 설루션이다. 이 설루션을 기업에 제공해 수익을 내는 사업 모델이다. 왓슨의 능력은 이미 텍스트 인식을 넘어 언어 번역, 사운드와 이미지 인식, 감정 분석 등 비정형(非定型) 데이터를 분석해 이해·추론하고 스스로 학습해 '예측'하고, 이를 통해 인간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셜과 모바일 플랫폼에 게재되는 하루 수천만, 수억 건의 정보를 수집해서 트렌드를 파악하고 특정 상품에 대한 구매자의 감정까지도 파악하는 것이 왓슨과 같은 AI의 몫이다.

2016년 여름 미국 메릴랜드주의 내셔널 하버에 등장한 12인승 무인 자동차 올리. 올리는 IBM사의 인공지능 왓슨과 연결돼 승객들과 직접 대화하는 버스다.
2016년 여름 미국 메릴랜드주의 내셔널 하버에 등장한 12인승 무인 자동차 올리. 올리는 IBM사의 인공지능 왓슨과 연결돼 승객들과 직접 대화하는 버스다. / IBM
IBM이 2015년 전 세계 기상 정보를 수집하는 웨더 컴퍼니를 20억달러에 사들인 것도 왓슨이 인지적 컴퓨팅을 할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해, 매출이 기상에 민감한 고객 기업들에 실시간으로 최적의 설루션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2016년 미국의 로컬 모터스가 만든 12인승 자율주행 합승차량 올리(Olli)는 차량 윗부분에 왓슨과 연결된 센서가 부착돼 있다. 승객이 마치 옆 승객에게 묻듯이 지역 관광지나 식당, 쇼핑 정보를 물으면, 올리와 연결된 왓슨은 실시간으로 음성 서비스를 제공하며 "오늘 밤에 강우가 예상되니 우산을 챙기라"는 조언까지 한다. 작년 12월부터 롯데백화점이 쇼핑 도우미로 활용하는 챗봇 로사도 왓슨과 연결돼, 고객에게 본점의 쇼핑·식당·엔터테인먼트 정보를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AI 사업, 아마존·구글 등이 맹공

사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은 현재 'FAANG'이라고 불리는, 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 등 월가에서 가장 사랑받는 테크 기업 모두가 주력하는 비즈니스다. 그런데 이 중 한 축을 담당하는 '클라우드 전쟁'에서 지난 1분기 IBM의 매출 성적표는 마이크로소프트(60억달러)·아마존(54억달러)에 밀려 업계 3위(42억달러)이고, 그 뒤를 구글이 바짝 뒤쫓는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 "IBM은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터넷 기반으로 제공되는 기업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다른 기업보다 늦었다"고 진단했다. IBM은 클라우드 컴퓨팅 초기에, 이 기술이 기업 전산 시스템에 메인 프레임과 서버,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판매하는 IBM 기존 비즈니스에 위협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IBM이 선도한 AI 왓슨의 경우에도 왓슨을 전 세계의 막대한 암(癌) 관련 자료 리서치에 우선으로 투입했지만, 단기적 매출 효과는 크지 않았다.

IBM은 클라우드 비즈니스에서도 IBM의 고객 기업들이 각사의 자체 전산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클라우드 기술의 속도와 유연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하이브리드(hybrid) 클라우드' 서비스에 주력한다. 왓슨을 포함한 다양한 비즈니스 설루션도 IBM 클라우드 환경에 최적화돼 있다. 오랜 기간 전 세계 기업을 상대로 그 기업 자체의 전용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 온 IBM으로선 일차적으로 이 유산을 클라우드·AI 기술과 접목시키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다. IBM 클라우드에 왓슨뿐 아니라 블록체인, 양자 컴퓨팅 기술도 탑재해 프리미엄 설루션을 고객 기업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클라우드 서비스도 격전 예상

미 문구 업체 스테이플스와 IBM이 개발한 문구류 주문 버튼.
미 문구 업체 스테이플스와 IBM이 개발한 문구류 주문 버튼.
실제로 전 세계 정부기관이나 금융회사, 대기업과 같이 IBM의 전통 고객들은 고객·금융 관련 핵심 정보는 자사 소유의 전산 시스템에 보관하고, 대용량·초고속 연산이 필요한 경우에만 일시적으로 외부 클라우드와 연계해 쓰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이 핵심적인 학사 정보는 학교 전산 시스템에 보관하고, 대규모 연산 능력이 일시적으로 필요한 입시 철에만 외부 클라우드를 쓰는 식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이, IBM의 신모델 메인 프레임 컴퓨터인 z14는 4분기에도 판매 호조를 보였다.

이에 반해 세계 곳곳에서 수없이 명멸하는 인터넷 스타트업들은 자체 전산 시스템을 구입하지 않고, 다른 회사의 공용 클라우드 서비스와 이에 수반된 공용 설루션을 쓴다. 하지만 시장 규모를 따진다면, 앞으로의 주요 전장(戰場)은 공용 클라우드일 수밖에 없다. IBM이 최근 3년간 19국에 60개의 공용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설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로메티에게 최대 숙제는 여전히 '속도'다. 그 스스로도 "꽤 이익을 내는 기업에 어떻게 긴박감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6년 전 지목한 '전략적 필수 비즈니스'는 아직도 IBM 매출의 절반이 채 안 된다(올 1분기 47%). '코끼리'가 훨훨 춤추는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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