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올리면 그 돈 누가 지불하나? 결국 저소득층이 부담하게 돼"

입력 2018.05.19 03:00

美 '최저임금 전문가' 데이비드 뉴마크 UC어바인 교수

데이비드 뉴마크
최저임금, 정확히 표현하자면 최저시급(時給)은 올들어 한국경제를 들썩이게 만든 '뜨거운 감자'였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 폭(16.4%)은 2001년(16.8%) 이후 최고. 일부 중소업체·소상공인들이 "인건비 부담 때문에 사업을 접어야겠다"는 푸념을 쏟아내면서 공방이 벌어졌다.

최저임금은 원래 19세기말과 20세기초 섬유·의류·제지 공장 등 저소득 근로자들이 대거 몰린 사업장(sweat shop)에서 취약 계층을 보호하고 아동노동 착취를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다수 경제학자들은 이를 시장에 대한 개입으로 해석한다. 경쟁시장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고용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일자리 킬러(job killer)'라고까지 부른다.

실제는 어떨까. 1994년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데이비드 카드·앨런 크루거 두 교수가 공동 발표한 논문은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미 뉴저지주가 최저임금을 18.8% 인상한 데 따른 패스트푸드점 고용 변화를 접경지인 펜실베이니아주와 비교해 연구했는데 예상과 달리 뉴저지는 오히려 고용이 늘고 펜실베이니아는 감소했다.

그렇다면 진실은 뭘까. 카드·크루거 논문에 대해 집요하게 문제점을 지적해온 경제학자가 있다. 미국 내에서 최저임금 관련 연구 분야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데이비드 뉴마크(Neumark·59) UC어바인 경제학과 교수다. 연구실로 찾아가 만난 뉴마크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는 그동안 숱하게 나왔기 때문에 재론할 가치도 없다"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주장하는 건 자유인데 문제는 고용효과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간편한 폴로 셔츠 차림으로 기자를 맞았다. 목소리엔 에너지가 넘쳤고, 친절하게 설명하려 애쓰면서 종종 유쾌한 농담을 섞어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미국 내 대표적인 최저임금 적용 매장인 맥도널드 햄버거점 직원들.
미국 내 대표적인 최저임금 적용 매장인 맥도널드 햄버거점 직원들. / 로이터
최저임금 올려도 고용 증대 없어

―한국에선 최저임금 인상이 정말 일자리를 감소시키는지를 놓고 설전(舌戰)이 펼쳐진다. "전 세계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논문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과 실제 그런 것과는 다르다. 연구자가 편견을 갖고 통계를 보면 그런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연구를 종합하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①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연구는 엄청나게 많다 ②사회 전반적인 빈곤을 감소시키지 못한다는 증거도 많다 ③물가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연구도 적지 않다 ④어떤 산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타격을 입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⑤일자리가 줄지 않는다는 연구는 아주 적다. 이미 나와있는 연구 결과를 믿고 싶지 않으려는 거야 어찌할 도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어떤 정책이 고용을 위축시킨다고 무조건 나쁘다곤 할 수 없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정책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석유산업 종사자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까. 다만 최저임금 정책처럼 당초 의도대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정책을 고집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소상공인·자영업자가 부담 지게 돼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국내 편의점에 무인 주문기 도입이 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국내 편의점에 무인 주문기 도입이 늘고 있다. / 김연정 객원기자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가난한 사람들에겐 좋지 않을까.

"케네디 상원의원은 과거 '최저임금이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최고 정책 중 하나'라고 지적한 적이 있고, 오바마 대통령도 '정규직(full-time) 근로자가 가난하게 살도록 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뉘앙스는 다르지만 같은 취지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꼭 저소득층 가구에게 혜택이 돌아가진 않는다. 생각해보라. (적어도 미국 내에서) 저소득층 가구가 갖는 가장 큰 고민은 아예 직업이 없다는 점이지 최저임금이 아니다.

미국에서 최저임금 대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상당수는 청소년이다. 우리 가족이 사는 곳은 샌프란시스코다. 딸도 고교 시절 '알바'를 했는데 어느날 집에 오더니 '와 최저임금이 올라 월급이 뛰었어요'라며 즐거워하더라. 그래서 말해줬다. '네가 다니는 가게 주인보다 아빠는 3배 이상 번단다.' 이게 말이 되나. 가게 주인은 자기보다 3배 수입이 많은 가정에 속한 자녀에게 월급을 올려줘야 하는 셈이다. 소득분포 통계를 면밀히 살펴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수혜를 보는 빈곤층은 13~14% 정도다. 그 다음 저소득층이 18~19%, 그런데 중산층은 30%가 넘는다."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정책이 빈곤을 줄이는데 득보다 실이 많다는 얘기인가.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그 돈은 누가 지불하나. 투자은행(IB)이나 대기업? 아무 상관 없다. 결국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가 부담을 진다. 또 최저임금이 올라 인건비가 많이 나가면 어쩔 수 없이 제품값을 올리는 데는 어딜까. 대형 백화점이 아니다. 동네 식당 같은 작은 상점들이다. 거길 누가 이용하나. 주로 저소득 계층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누군가 대가를 치르는데 하필 저소득층이 타격을 입는 게 문제다."

―한국에선 최저임금 인상으로 공장 문을 닫는 업체도 나타난다고 한다.

"그건 좀 과장됐다고 보지만 완전 틀린 얘긴 아니다. LA타임스에 최저임금 관련 기고를 한 뒤 한 의류재가공업체 사장 전화를 받은 일이 있다. LA시가 최저임금을 올린 데 대한 불만이었다. 그 사장은 철지난 면티셔츠 등 재고 의류를 헐값에 구입해 청소용으로 가공하는데, 직원이 하는 일이라곤 의류업체에 가서 트럭으로 한가득 싣고 온 뒤 잘라서 기계에 넣는 게 전부다. 그 사장은 '이 정도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숙련인 근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시간당 12달러(현재 LA시 최저임금 기준)를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LA시가 최저임금을 올린다? 그럼 최저임금이 낮은 인근 도시로 본사를 옮기면 된다. 굳이 LA에 있을 필요가 없다. 결과는? 그 회사 직원은 일자리를 잃는다. 맘대로 회사를 옮길 수 없는 세탁소나 음식점은 다르다. 고스란히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최저임금보다 근로장려세가 나아

―최저임금보다는 근로장려세제(EITC·Earned Income Tax Credit)처럼 세제 혜택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EITC는 저소득 근로자 가구에 근로장려금을 세금 환급 형태로 지급하는 제도이다.)

"(EITC는) 최저임금처럼 실제 누가 혜택을 보는가가 불분명한 제도보단 대상이 명확하다. 정말 지원이 필요한 가구에게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EITC 혜택을 받으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구직 의욕을 촉진시키는 효과도 있다. 사실 모든 건 경기에 많이 의존한다.

경제가 활성화해서 일자리가 늘고 직원을 구하기 어려워지면 임금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최저임금 같은 규제도 필요없게 된다."

―한국에선 최저임금을 올려 소득이 늘면 구매력이 상승하고 소비가 활성화돼,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저임금을 올려 경기가 활성화된다는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소득 증가가 소비 활성화로 이어지는 건 단기 처방일 뿐이다. 장기적으론 저축이 필요하다. 그래야 자본 축적이 이뤄진다."

―최저임금이 한국에선 정치적인 쟁점으로 비화했다.

"미국만 놓고 보면 사실 최저임금은 정당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정치적 쟁점은 아니다. 민주당이 적극적이긴 하지만 과거 최저임금을 인상했던 시기를 보면 부시 행정부 등 공화당 시절도 많다. (아버지·아들 부시 대통령 모두 두 차례씩 인상했다.) 오바마 때는 결국 한번도 올리지 못했다. 트럼프는 잘 모르겠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떠드는 사람이라 혹시 이것도 손댈 수 있지 않을까(웃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적극적인 건 캘리포니아나 뉴욕주, 워싱턴주(시애틀)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우세한 지역이었지만, 최근엔 일부 남부 몇몇 주를 제외하곤 다 최저임금이 (연방 기준보다) 높아지는 추세다. 정치적 입장 보다는 최저임금의 경제적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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