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TV채널 수십개, 식당 수천개… 기업이 큐레이션을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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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5.19 03:00

      [Cover Story] 마이클 바스카 옥스퍼드핸드북 시리즈 공동편집장

      마이클 바스카 옥스퍼드핸드북 시리즈 공동편집장

      마이클 바스카(Bhaskar·사진) 옥스퍼드핸드북 시리즈 공동편집장을 런던 유스턴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옥스퍼드에 살고 있지만, 매주 이틀은 구글의 인공지능연구소 딥마인드의 컨설턴트 겸 작가 자격으로 런던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출판인으로서 경험하고 배운 내용을 토대로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다룬 '콘텐츠 머신'과 디지털 시대의 경영에 필요한 큐레이션 기법에 대해 분석한 '큐레이션' 등을 저술했다.

      큐레이션의 핵심은 선택과 배열

      ―현대 사회에서 큐레이션이란 무엇인가.

      "이전까지 큐레이션은 예술계에서 전시회를 기획하는 일에 아주 좁고 한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단어였다. 1990년대 무렵부터 사회 곳곳에서 큐레이션이란 단어를 활발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에서 음식 메뉴나 와인을 '큐레이션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예술계에서 사용하는 단어라서 멋있어 보여서 사용하는 것 아닌가, 일종의 지적인 허영에 불과한 건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점차 큐레이션이라는 용어가 왜 이렇게 대중화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에 큐레이션이 주목받는 이유는 사회 변화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회 전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과잉'이 문제가 됐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져 생긴 상황이다. 사람들이 예술계에서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를 빌려온 이유도 이런 선택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큐레이션의 핵심은 두 가지, 선택(selecting)과 배열(arranging)이다. 현대 사회는 자원이나 데이터, 선택지가 적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데서 비롯된 문제들을 안고 있다."

      ―소위 '선진국 사람들의 고민'이라는 건가.

      "일종의 농담처럼 쓰이기는 하는데 우리가 사는 사회가 더이상 선택할 게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게 문제라니,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전 세대가 겪은 문제에 비해 더 쉬운 걸지도 모른다. 역사적으로 자원이나 선택지가 부족해서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물론 여전히 자원 부족이 문제인 나라도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최소한 영국 런던, 한국 서울에서는 과잉이 문제다. TV 채널만 해도 당장 최소 수십 개다. 외식을 하려고 생각해도 고를 수 있는 식당이 수천 곳이다. 시장이 포화 상태인 만큼, 선택이 인간의 삶을 정의하고 더 나아가서 경제를 규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과 직결되는 큐레이션이 정보와 문화 산업을 중심으로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전에는 기업들이 '더 많이 생산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생산 능력보다 '더 좋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해마다 생산이 증가하고 경쟁이 심해지는 탓에 개별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큐레이션은 과잉공급에 압도된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중요한 일이다."

      기술 넘어 인간적 측면도 포함

      ―큐레이션이 선택과 배열이라면, 어떻게 잘할 수 있나.

      "좋은 큐레이션은 기본적으로 큐레이션의 대상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고, 그 대상에 진정으로 헌신하는 데서 비롯된다. 좋은 큐레이션이 기업의 사업과 잘 맞아떨어지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좋은 예가 스포티파이다. 지난달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스포티파이는 온라인 음악 서비스 기업으로, 300억달러 가치를 평가받았다.

      실제로 창업 초기 스포티파이가 잘했던 일은 많은 음악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큐레이션에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 대략 3000만~4000만 곡이 있다. 그 누구도 수천만 곡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스포티파이가 사용자들의 음악 감상 목록을 살펴보다가 발견한 것은, 수백만 개 선택지가 있음에도 사용자들은 항상 듣던 곡만 반복적으로 듣는 데 그친다는 거였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음악을 갖춰 놓았는데! 핵심은 콘텐츠 부족이 아닌, 사용자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음악을 찾아내지 못한 데 있었다. 스포티파이의 해법은 음악전문가와 DJ를 고용하고, 음악 자동 추천 서비스를 위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데 투자한 것이다. 인간 전문가와 인공지능이 합작한 음악 큐레이션으로 사용자들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음악을 추천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큐레이션에 인간이 굳이 참여할 필요가 있나.

      "지금처럼 데이터가 넘쳐나는 시대에 인공지능 기반 큐레이션이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문화산업만 해도 3500만 곡에 달하는 음악, 수억 건의 소셜미디어 콘텐츠와 신문 기사, 수억 시간 분량의 동영상과 음악을 다루는 작업이 큐레이션이다. 이처럼 방대한 콘텐츠를 처리하려면 자동화는 필수다.

      하지만 기술적인 접근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개인적이고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것, 소비하는 대상의 비화(秘話) 같은 것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IT 기업들이 컴퓨터·기술공학자 외에 인문·사회 분야 전문가를 고용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좋은 큐레이션은 '돌보다'라는 의미인 라틴어 어원(curare)에 충실하다.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그에 적합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작업이 큐레이션이다.

      실제로 큐레이션의 결과물을 더 많이 접하게 될수록 인간미에 대한 수요도 커진다. 평소 온라인 콘텐츠를 출판·편집하는데, 전자책이 등장했음에도 종이책에 대한 수요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독자들이 재미를 위한 가벼운 소설류는 전자책으로 읽지만, 순수문학이나 지식을 위한 책은 종이로 읽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큐레이션을 위한 알고리즘에도 인간적인 가치가 포함돼야만 한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정치적인 사건이나 가짜 뉴스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누군가 페이스북 라이브에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총격 사건 동영상을 올린다면, 이런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개적으로 게시해도 될까? 윤리적으로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소셜미디어로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의 범위를 결정하는 일은 책임감과 윤리 문제와 직결된다. 이런 어려운 결정을 무작정 알고리즘에만 맡길 수는 없다. 기술기업들이 공학·기술 전문가만이 아닌 언론인과 정책전문가, 작가, DJ를 고용하는 것도 인간의 선택이 필요한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큐레이션 따라 매출 천차만별

      ―기업의 생존에도 큐레이션 능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고 했는데. 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전문인력을 고용하고 기술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다.

      "큐레이션의 흥미로운 부분이 이 지점이다. 큐레이션 자체로는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다. 큐레이션을 비즈니스 모델에 어떻게 적절하게 활용하는가에 달렸다. 예를 들면, 패션산업. 누구도 패션 큐레이션의 영향력을 안 받고 살 수는 없다. 옷을 판매하는 쪽도 구입하는 쪽도 그렇다. 패션의 모든 것은 유통업계에서 판매하는 데 달렸다. 큐레이션을 안 할 수가 없다. 패션스토어에 다양한 의류와 액세서리가 있다. 10달러부터 1000달러까지 가격대도 넓다. 의류매장의 매출은 얼마나 큐레이션을 했느냐와 직결된다. 옷을 배치하는 일 자체는 더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큐레이션을 더할수록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작은 옷가게라도 큐레이션을 안 할 수는 없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