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행' 비난 들어가며 매출·인원 절반 줄여… 회사 체질 싹 바꿔

입력 2018.05.19 03:00

저성장 돌파한 일본 기업 <9> 시오노기 제약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
제약업계는 독자적인 기술 없이 살아남기 어려운 분야다. 그런데 경쟁사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구·개발(R&D) 투자로 경쟁사를 압도하는 실적을 보이며 성장하는 일본 제약업체가 있다. 시오노기제약(塩野義製藥)이다. 2017년 시오노기제약의 R&D 투자 규모는 5억5000만달러. 일본 최대 제약업체 다케다약품공업(武田藥品工業·28억8000만달러)의 5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경상이익은 11억4000만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다케다약품(13억3000만달러)에 필적한다. 영업이익률은 30%로 다케타약품(9%)의 3배가 넘는다. 일본 제약업계의 노포(老鋪·오래된 가게) 시오노기제약은 어떻게 이런 성장을 일궈냈을까.

시장 변화 체감 못 하고 실책 연발

시오노기제약은 1878년 오사카에서 약품 도매상으로 출발한 '시오노기 사부로상점(塩野義三朗商店)'이 전신이다. 1781년 창업한 다케다약품과 더불어 일본 제약업계의 대표적인 노포다. 일본 항생물질 제조·판매의 대표적 제약업체로 잘나가던 시오노기제약이 위기에 빠지게 된 건 두 가지 원인 때문이다. 하나는 시장 환경 변화. 1990년대 들어 항생물질 오·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한때 전체 매출의 50% 정도를 차지하던 항생물질 관련 시장이 크게 침체됐다.

다른 하나는 개발한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한 특허 독점권을 타사에 넘긴 것. 고지혈증과 항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신약후보 물질을 연구하다 자금난 조짐이 보이자 1998년 특허 독점권을 각각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미국 화이자에 로열티를 받고 넘겼다. 그런데 이 신약들이 나중에 성공을 거두면서 결정적인 실책을 범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때 이후 공교롭게 시오노기제약에 장기 침체가 찾아왔다. '이미 망한 회사'라는 야유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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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기제약 재건을 이끈 데시로기 이사오 사장(맨 왼쪽). 시오노기제약 연구원과 직원들. 시오노기는 연구·개발 분야에서 선택·집중을 통해 ‘창약형 제약회사’로 거듭났다. /시오노기제약
전문경영인 발탁과 개혁 착수

이런 시오노기제약을 구한 건 전문경영인 데시로기 이사오(手代木功) 현 사장이었다. 그는 1999년에 비서실장 겸 경영기획실장에 발탁되면서 체질 개선에 착수했다. 주로 일본 내에서 병원과 의사들에 대한 항생물질 영업을 통해 몸통을 키워왔던 시오노기제약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온 항생물질의 황금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새로운 성장전략과 이를 추진할 수 있는 개혁이 필요했다. 데시로기 당시 경영기획실장은 "지금 이대로 항생물질 영업에 매달려 있다가는 회사가 망하고 말 것"이라며, 시오노 모토조(塩野元三) 사장(현 회장)에게 '항생물질 영업의 달인 시오노기제약'이라는 세간의 평가에서 벗어나 '창약(創藥)형 제약회사'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의료형 의약품에 특화하기 위한 사업구조 재편이었다. 기존에 다각화했던 사업들은 차례차례 매각했다. 2004년까지 동물용 의약품, 식물 성분 약품, 의약품 도매 등 의료용 의약품과 직접 상관없던 사업 부문들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이 과정에서 약 37억달러에 달했던 매출액은 2004년에 약 18억달러로 절반 이하까지 떨어졌다. 1만명에 달했던 종업원 수도 절반으로 줄었다. 사내에선 '참을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사장의 지원 아래 사업구조 재편을 밑어붙여 이사와 상무로 계속 승진하면서 시오노기 개혁은 속도가 실렸다.

R&D 부문도 선택과 집중

개혁 전 시오노기제약 R&D 부문은 안팎에서 '시오노기대학'이란 혹평을 받을 만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조직이라고는 평가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겨우 개발한 신약후보 물질도 정부 승인이 거부되는 등 R&D 부문이 제 기능을 못 했다. 비주력 사업 매각 등으로 사업구조 재편 작업이 마무리됐지만 R&D 부문 개혁 없이는 창약형 제약회사로 변신이 불가능했다. 데시로기 현 사장은 2004년 상무로 승진하면서 의약연구개발본부장으로 발령받았다. 취임 1년 만에 장기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던 신약후보 물질 7개 개발을 중단시켰다. R&D 대상 부문도 감염증, 통증, 대사성 질환 등 3대 부문으로 축소하고 인재와 자금을 집중 투입했다.

연구부문 반발은 거셌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면 시장성이 좋은 암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데시로기 현 사장은 "연구원 전체가 암 치료제 개발에 집중해도 거대 제약기업을 당해내기는 어렵지만, 감염증은 우리가 연구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곤경에 처하게 된다"면서 "우리가 해야만 하고 사람들의 아픔을 멈추게 하는 것이야말로 제약회사다운 일"이라고 이들을 설득했다. 당시 800명 정도 연구인력으로 프로젝트당 2000명 정도 인력을 투입하는 거대제약기업과 경쟁을 피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부문에 집중했던 것이다. 덕분에 지금의 시오노기제약은 전체 개발제품 중 자사 창약품 비중이 40%, 공동 연구·개발품 비중이 32%로 오리지널 상품 비중이 70%를 넘는 창약형 제약회사로 거듭났다.

안정적인 로열티 수입 체제로

2013년 들어 시오노기제약은 제약업계 전체에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당시 시오노기제약은 사업구조 재편과 R&D 부문 개혁을 통해 빠르게 실적을 회복하고는 있었지만, 2016년에 찾아오는 특허 기간 종료, 이른바 '특허절벽(patent cliff)'에 부닥치면서 수익이 급감하고 경영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져 있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로부터 받는 고지혈증 치료용 신약물질에 대한 특허 로열티가 전체 매출의 20%를 웃도는데 이게 2016년 끝날 예정이었다. 이에 데시로기 사장은 2014~2016년 아스트라제네카로부터 받기로 한 로열티를 2023년까지 연장하여 나눠 받기로 계약을 변경했다. 단기 고수익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중·장기 수익 기반을 확충하려는 시도였다. 업계에선 '신의 한 수'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시오노기제약은 거대제약회사와 정면 승부를 피했다. 그리고 유망한 신약후보 물질 특허 독점권을 아스트라제네카 등에 잘못 넘겼지만 이 실수를 계기로 특허 독점권보다는 안정적인 로열티를 받는 전략을 채택해 저성장의 함정을 극복했다. 2006년 전체 매출의 5% 정도에 불과했던 시오노기제약의 로열티 수입은 2016년도 34%에 달할 정도로 커지면서 시오노기제약의 핵심 성장 기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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