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통합 '동상 오몽'

입력 2018.05.05 03:00

[Cover Story] 국내 지지도 하락까지 겹쳐… 메르켈, 격랑의 유럽 경제 어떻게 헤쳐 나갈까
프랑스마저 "더 가진 독일이 더 내놓아라"… 난민·통합 반대하는 극우 정당, 각국서 속속 등장

지난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마크롱(왼쪽부터) 프랑스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나란히 앉아 웃고 있는 모습.
지난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마크롱(왼쪽부터) 프랑스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나란히 앉아 웃고 있는 모습. / AP연합
유럽 통합을 이끌기 위해 최전선에 있는 독일이 오히려 최근 유럽 해체 위기의 주범으로 비판받고 있다. 유럽 언론들은 "코끼리처럼 덩치가 큰 독일이 도자기 가게 격인 유럽을 휘젓는 상황"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왜 그럴까? 개별 회원국의 국내 산업을 보호해주던 관세와 환율 장벽이 유럽에서 사라지면서,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나라가 바로 독일이다. 경쟁력이 강한 독일 상품이 유럽 단일 시장을 석권하면서 독일 경제는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복지병과 통일 후유증 때문에 10% 수준이던 만성 실업이 하락을 거듭해, 올해 초 독일의 실업률은 3.5%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면에 2010년 재정 위기를 겪었던 남유럽 국가들은 아직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의 실업률은 21%이고, 청년실업률은 45%나 된다. 프랑스도 유럽연합(EU) 평균인 7%보다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EU 회의론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유럽 각지에서는 난민과 유럽 통합을 반대하는 극우 정당이 부상하고 있다. 또 EU가 초국가적 권한을 확대한 탓에, 개별 회원국이 위기 대처 능력을 상실했다고 비판하는 자국중심주의가 번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영국은 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했고, 다른 유럽 국가가 EU를 떠나는 제2의 브렉시트가 나올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1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주재 신임 외국 대사들과 환담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2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펼쳐진 연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
1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주재 신임 외국 대사들과 환담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2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펼쳐진 연말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파올로 젠틸로니 이탈리아 총리. / 연합뉴스·블룸버그
EU 회원국 "부자 독일이 더 내라"

독일을 제외한 다른 EU 회원국은 독일에 더 많은 경제적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장클로드 융커(Juncker) EU 집행위원장은 "넉넉한 나라가 어려운 회원국을 재정적으로 도와줘야 국가 부도 위기가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혁을 위해 '유럽 차원의 예금자 보호', '재정 위기 국가를 구제할 유럽판 IMF', '유럽 공동 예산의 확충'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안은 이행되지 못하고 회원국 간 의견 충돌만 초래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최근 유럽의회 연설을 통해 융커 위원장의 EU 개혁안에 힘을 실어줬다. 그는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돕는 동반경제성장 모델을 제안했다. 회원국의 EU 예산 분담금을 국민총소득의 1%에서 3%로 대폭 올려, 재정이 어려운 국가의 경제 발전과 인프라 투자를 위해 사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럽연합은 원래 프랑스가 주도하고, 독일이 동조하면서 전진해왔다. 유럽 통합에 대한 피로감이 확산하자, 프랑스가 유럽 통합을 위해 "더 가진 독일이 더 많이 내놓아라"고 얘기하는 상황이다.

고전하는 메르켈의 포용적 리더십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13년 총선에서 "유로화의 실패는 유럽의 실패"라는 구호를 외친 인물이다. 그런 만큼 유로존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빈부격차를 막아야 하며, 이 때문에 EU 개혁은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독일 국내로 눈을 돌리면 개혁은 쉽지 않다.

우선 여당과 야당의 해법이 다르다. 야당인 독일 사회민주당(SPD)은 유럽 통합의 해법으로 독일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민당은 현재 독일이 누리는 과도한 무역 흑자 때문에 다른 회원국이 반발하고 유럽 위기가 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 때문에 독일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수출은 늘고 수입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민당 출신의 전임 슈뢰더 총리는 통일 후유증으로 발생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개혁을 밀어붙였다. 이에 따라 실질임금이 오랜 기간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만약 임금을 올리면 독일의 흑자 폭이 줄어들고 균형 무역을 달성할 수 있게 돼 유럽 통합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일 집권당이자 메르켈 총리가 속해 있는 기독민주당(CDU)은 사민당의 이 같은 소득 주도 동반성장론에 대해 반대한다. 또 그동안 영국이 내오던 EU 분담금을 브렉시트 이후에는 독일이 상당 부분 떠안아야 할 판에, 자국 국민이 낸 세금으로 EU를 추가 지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독일이 유럽 예금자를 보호하는 대신, 각국의 은행이 부실채권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 간 빈부격차를 해소하려는 독일 정부의 지원 정책은 독일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메르켈은 자신이 몸담은 당의 의견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4선 임기를 여는 데는 성공했지만, 과거보다 당내 기반은 크게 약해졌기 때문이다. 집권 이후 메르켈은 최저임금 도입, 단계적 탈원전, 징병제 폐지 등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중도 정책을 대거 채택해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그 결과 평균 7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신 당내 보수 세력과는 소원해졌다. 또한 지난 2015년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우호적인 정책을 펴자 독일 국민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작년 총선에서 많은 의석을 잃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메르켈이 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유럽우선주의를 유지할지 관심거리다.

유럽 주요국의 '하나의 유럽'에 관한 입장
"정부보다 시민이 주도해야 통합"

그동안 유럽 통합은 회원국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시민들은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유럽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이처럼 민주성이 부족한 점을 꼽는 전문가가 많다.

EU가 가진 초국가적 권한이 커지면서 EU가 유럽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반해 EU에 대한 유럽인의 감시 권한은 거의 없다. 주권자는 유럽 시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독일이나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EU에 지분이 많은 강대국 정부가 EU의 주권을 행사하는 게 현실이다. EU의 최고정책결정기구인 유럽이사회 등에서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견해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반면 유럽 시민이 직접 선출하는 유럽의회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부차적인 권한을 가질 뿐이다. 따라서 EU가 위기를 맞게 되면, 최대 주주인 독일에 책임을 묻게 된다.

메르켈이 현재의 통합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유럽인의 대표기관인 유럽의회에 좀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유럽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게 하면 된다. 권력 축이 회원국 정부에서 유럽의회로 옮겨간다면, 회원국 간의 국익 갈등을 해소하고 정치 통합에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over Stor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