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세계의 젊은이 마음을 다시 낚다" 늙은 구찌 화려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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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5.05 03:00

      연매출 20%씩 줄던 2014년, 새 CEO 영입… 무명 디자이너를 내부서 파격 발탁
      보수적인 디자인을 화려하게 바꿔 온라인 제품군 출시 디지털 젊은층도 잡아

      이탈리아 명품 기업 구찌(Gucci)는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수많은 명품 기업이 판매 감소와 인지도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구찌는 연간 40~50%씩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구찌의 매출은 50% 가까이 증가해 처음으로 60억유로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명품 산업은 5% 성장하는 데 그쳤다. 구찌의 성장에 힘입어 모회사 케링(Kering)의 지난해 매출도 25% 늘었고, 주가도 84% 뛰었다.

      구찌는 2014년까지만 해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연 매출은 감소하던 중이었고 구찌 특유의 로고가 박힌 디자인은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파트리치오 디마르코 당시 구찌 최고경영자(CEO)와 프리다 지아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수석 디자이너)가 비슷한 시점에 연달아 사임하면서 2014년 말에 경영 공백이 생겼다. 2014년 말 구찌의 구원투수로 마르코 비자리(Bizzarri·56) CEO가 급하게 투입됐다. 이듬해부터 구찌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색다른 이미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더 놀라운 점은 구찌 소비자의 50% 이상이 35세 미만이라는 것이다. 대다수 명품 기업이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컨설팅업체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명품 시장 매출에서 밀레니얼 세대(1980년 이후 출생)가 차지한 비중은 30%에 그쳤다. 구찌가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내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①CEO, 무명 디자이너를 파격 발탁

      구찌 CEO 마르코 비자리
      2014년부터 구찌 수장을 맡은 비자리 CEO는 기업 회생에 일가견이 있는 경영자다. 이탈리아 출신인 그는 2005~2009년 영국 명품 브랜드 스텔라 매카트니의 흑자 전환을 주도했다. 2009~2014년 사이에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연 매출을 4억유로에서 10억유로로 키워놓았다.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모회사 케링의 쿠튀르 및 가죽 부문장으로 승진한 지 8개월도 채 안 됐을 때 그는 프랑수아 앙리 피노 케링 회장으로부터 구찌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구찌는 당장 다음 패션쇼를 준비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부터 필요했다. 비자리 CEO는 인사팀에 '구찌의 핵심 인재' 명단을 요청한 뒤 이들을 직접 만나 앞으로의 사업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그중 한 명이 12년간 구찌에 몸담았던 무명의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Michele·46)였다. 비자리 CEO는 "처음에 그가 누구였는지 몰랐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그가 구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구찌의 미래를 그리는 비전과 아이디어가 많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비자리 CEO는 다른 명품 기업처럼 이름이 알려진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해오는 대신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하는 파격 인사를 감행했다.

      미켈레는 임명되자마자 명품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그가 선보인 구찌는 다채로운 색상의 의류와 장신구에 꽃, 호랑이, 나비, 뱀 문양 등 현란한 장식으로 가득했다. 이전의 보수적인 디자인의 구찌와는 완전히 달랐다. 소비자는 장난스럽고 화려한 구찌에 열광했다. 첫 패션쇼 직후부터 주문이 쇄도하고 판매가 급증했다. 비자리 CEO는 미켈레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그는 "극단적이어도 좋으니 (알레산드로에게) 원하는 대로 다 해보라고 했다"면서 "오늘날은 애매하면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독특하고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자리 CEO는 기업문화 개혁에도 나섰다. 그는 30세 미만 직원들로 구성된 '그림자 위원회'를 운영하며 젊은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 그는 여기서 나온 의견을 반영해 가죽 낭비를 줄이는 공정을 도입하고, 기업의 윤리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에 맞춰 모든 제품에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렸다. 비자리 CEO는 "밀레니얼 세대가 변덕스럽고 브랜드 충성도가 낮다고 하는데 구찌 고객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젊은 층을 사로잡으려면 그들의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디자이너, '팔리는 파격' 만들다

      구찌의 혁신을 가져온 알레산드로 미켈레.
      구찌의 혁신을 가져온 알레산드로 미켈레.
      비자리 CEO와 구찌의 부활을 이끈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스토리텔링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90년대 파산 직전의 구찌를 살려낸 유명 디자이너 톰 포드에게 발탁돼 2002년 구찌에 입사했다. 이후 12년간 구찌에서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았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내 베테랑이었던 그는 2015년 구찌의 디자인 총괄을 맡으면서 진가를 드러냈다.

      미켈레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그림과 도널드 덕 같은 만화 캐릭터를 접목한 의상과 장신구를 선보이고, 할머니가 입을 것만 같은 복고풍 치마에 두꺼운 뿔테 안경과 반짝이는 구두를 조합하는 등 '명품은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깼다.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층은 틀에서 벗어난 미켈레의 디자인에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그는 1980년대 뉴욕 할렘가의 재단사였던 흑인 대퍼 댄과 손잡고 남성복을 출시하고, 16세기 화가가 그린 것 같은 화폭을 연상시키는 광고를 찍는 등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켈레의 장점은 자칫 과할 수 있는 디자인을 팔리는 제품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일부 디자이너는 무대에서는 눈길을 사로잡지만 일상에서 입기 난해한 전시품 같은 의상을 만든다. 이와 달리 미켈레는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의상을 구현해낸다. 비결은 소통이다. 그는 비자리 CEO와 구찌에서 판매를 총괄하는 야코포 벤투리니와 끊임없이 의견을 나누면서 작업한다. 그 결과 상업성과 예술성이 적절히 조화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구찌 매출 추이

      ③디지털 익숙한 젊은 층을 사로잡다

      구찌는 시장조사업체 가트너 L2가 매년 집계하는 '디지털IQ 지수'에서 오랜 기간 1위였던 버버리를 제치고 2016년 1위에 올랐다. 대다수 명품 기업들이 매장에 중심을 두고 기껏해야 웹사이트를 정비하는 데 그쳤다면, 구찌는 오프라인 판매를 온라인에 매끄럽게 통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구찌는 스마트폰으로 제품을 소비하는 젊은 층의 성향을 반영해 매장에서는 구할 수 없고 온라인에서만 구매가 가능한 제품군을 출시하는 등 디지털 전략을 강화했다. 지난해부터는 명품 쇼핑몰 파페치와 손잡고 뉴욕, 런던, 도쿄 등 주요 도시에서 스마트폰으로 주문한 구찌 제품을 90분 내 집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앱으로는 다양한 예술가와 인플루언서(influencer)와 협력해 젊은 층을 겨냥한 만화, 영상, 화보 등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일례로 스페인 출신 예술가 이그나시 몬레알이 그린 최근 구찌 광고의 경우 구찌 모바일 앱으로 광고 이미지를 스캔하면 3D 효과가 나도록 만들어졌다. 장 프랑수아 팔루 케링 부사장은 전자상거래와 모바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구찌가 올린 이익을 다양한 디지털 채널에 재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구찌
      ④미래 위해 연구센터 '아트랩' 설립

      구찌는 최근 피렌체 본사 인근에 구찌의 미래를 책임질 3만7000㎡ 크기의 연구센터 '아트랩'을 설립했다. 이곳은 수공예와 디자인, 신기술을 연구하는 공장형 실험실이다. 구찌는 아트랩에서 제조 공정 기술을 발전시키고 생산 시스템과 공급망을 개선해 제품의 품질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당장 올해 안으로 가죽과 신발 제품을 만드는 직원 900명을 신규 채용할 방침이다. 비자리 CEO는 "구찌 아트랩은 기술을 배우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곳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