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격동의 유럽경제… 메르켈 고민 5가지

    • 0

    입력 2018.05.05 03:00

      [Cover Story] 국내 지지도 하락까지 겹쳐… 메르켈, 격랑의 유럽 경제 어떻게 헤쳐 나갈까

      ① 브렉시트

      "영국이 유럽연합(EU) 시민의 이민을 제한하면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메르켈 총리는 작년 5월 주요 20국(G20) 노동조합 대표들과 베를린에서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이 자국으로 몰려드는 이민을 제한할 움직임을 보이자 강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그만큼 영국의 EU 탈퇴가 못마땅하다는 얘기다.

      유럽 통합론자인 메르켈에게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우선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면 가장 먼저 맞닥뜨릴 문제는 단일 시장과 관세 동맹에서 영국이 탈퇴하면서 커지는 경제적 부담이다. EU는 단일 시장이다 보니 상품이나 서비스, 자본이 회원국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이동한다. 인력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자본 거래나 각종 투자도 한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 간 거래로 취급된다. 하지만 영국이 단일 시장에서 빠져나갈 경우 EU 회원국과 영국이 거래하면 양측 모두에 각종 비용이 발생함에 따라 상당한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영국의 EU 탈퇴로 통합유럽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영국 국기와 EU 깃발이 함께 펄럭이는 모습. / 블룸버그
      관세 문제도 있다. EU 국가끼리는 국경을 넘을 때 관세를 물리지 않는다. 영국은 나머지 EU국 27곳 처지에서 보면 미국 다음으로 교역량이 많은 국가다. 만약 영국이 관세 동맹에서 탈퇴하면 EU와 영국 모두 교역에 따른 상당한 세금이 부과된다. 영국 컨설팅 업체 올리버 와이먼 등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이 추가적 무역 협정이 없이 EU를 떠날 경우 새로운 관세가 부과되면서 EU와 영국의 수출 기업에 각각 연간 310억파운드, 270억파운드씩 총 580억파운드(약 86조원)의 손실이 일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그 때문에 영국의 야당인 노동당은 EU에서 탈퇴하더라도 관세 동맹에는 잔류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메르켈은 브렉시트 이후 EU 회원국의 추가 탈퇴를 막아야 한다는 고민도 떠안았다. 브렉시트 이후 각 회원국에서 벌어진 선거에서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정당이 약진했다. 당장 독일에서도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이 작년 총선에서 제3당으로 올라섰고,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총선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12년 각종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 국민들이 그리스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를 히틀러에 비유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AP 뉴시스
      ② 그리스 구제금융

      EU는 함께 잘살기 위해, 즉 '공동 번영'을 위해 출발했다. 하지만 출범 25년이 지난 지금 회원국 간 빈부 격차로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EU 회원국 상당수는 단일 통화인 유로화를 쓴다. 단일 시장으로 재화와 서비스, 인력 등이 마음대로 오간다. 경제적으로는 같은 나라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한 회원국이 심각하게 경제 위기를 겪으면 다른 나라에도 그 위기가 옮아간다. 연합 체제가 해체될 우려도 있다. 유럽 최고 경제 대국 수장이자 유럽 통합론자 메르켈에겐 큰 걱정거리다.

      가장 큰 뇌관은 그리스이다. 그리스는 유로화를 채택한 후 예전 자국 통화보다 화폐 가치가 높아지는 바람에 수출이 줄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또 만연한 부정부패와 탈세, 공무원 등 일부 특권 계층에 대한 과도한 복지로 재정 위기를 겪었다. 2010년부터 EU와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구성된 채권단은 24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독일은 유럽중앙은행 최대 주주로 그리스에 제공하는 구제금융 비용을 가장 많이 떠안은 국가다. 이 때문에 독일 국민들은 "왜 우리가 이렇게 비싼 돈을 들여 그리스를 살려야 하느냐"며 반발한다. 유럽 통합과 자국민 모두를 신경 써야 하는 메르켈에게는 난감한 상황이다. 독일 등 선진국은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해주면서 "공짜로 빚을 탕감해 줄 수는 없다"며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구조 개혁과 긴축 정책을 요구한다. 반면 그리스는 빚 탕감에 초점을 맞추고,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이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와 독일 간의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일단 그리스는 조만간 2010년부터 8년 동안 이어진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 신탁통치 체제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로화 사용 19국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의 마리우 센테노 의장은 지난달 19일 "EU는 8월 만료될 그리스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연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가 앞으로 신규 자금은 빌리지 못하겠지만 지난 8년간 빌린 돈을 제대로 갚을 수 있을지, 구제금융이 끝나면 외부 감시가 느슨해져 재정 상황이 다시 악화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 밖에 키프로스나 몰타,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헝가리 등도 경제가 좋지 않아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메르켈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행사장에서 메르켈(왼쪽) 독일 총리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에서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 EPA연합
      ③ 트럼프 무역전쟁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과 그동안 누리던 밀월관계 대신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EU가 벌이는 통상 갈등은 '치킨 게임(chicken game)'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일로 예정했던 EU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10~25%)를 일단 한 달 뒤인 6월 1일로 일시 유예했지만 근본적인 갈등은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설득하고 달래봤지만 방침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EU는 미국이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달 유예한 조치는 "시장 불확실성을 연장시키고 있으며 기업들에 불안감을 증폭시킨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단호하다. "EU는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EU에서 뭔가 양보하지 않는 이상, 기존 결정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다. 미국은 자동차에 대해 EU가 미국(2.5%)보다 4배 높은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점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다른 산업 제품에 대해서도 관세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EU는 아직까진 맞불 작전을 거두지 않고 있다. 미국이 기어이 관세를 고집한다면 EU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버번 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 오렌지·쌀 등 미국산 제품들에 보복 관세 25%를 때리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법처럼 EU와 통상 갈등을 다루고 있다고 해석한다. 강도 높은 압박·제재를 퍼붓자 북한이 한발 뒤로 물러난 부분에 대해 고무되고 있다는 얘기다. 미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는 이 '치킨 게임'에서 EU가 미미하나마 양보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일 것"이라면서 "미·EU 간 무역 전쟁 해결은 EU 손에 달려있다"고 분석한다.

      EU 내에서는 국가별로 분위기가 약간 다르다. 프랑스는 "어떤 이유에서든 관세 인상은 정당화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독일은 "(미국과) 무역 유대를 더욱 강화하는 게 양쪽에 모두 이득"는 입장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차장은 "메르켈이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앞으로 미·EU 무역전쟁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메르켈 총리는 지난 2015년 7월 한 독일 방송에 출연해 “난민을 모두 받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 난민 소녀가 울음을 터트리자 메르켈 총리가 달래주고 있다. / 방송 캡처
      ④ 난민 배분

      메르켈 총리는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難民)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도 고민에 빠져 있다. 경제적·정치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개발도상국 국민이 유럽을 도피처로 삼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다 난민이 본격적으로 유럽의 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2010년 말부터다.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 아랍 세계에 민주화 운동(아랍의 봄)이 확산되면서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상황이 악화됐다. 그때부터 난민이 대거 발생해 유럽으로 밀려들었다. 2015년 한 해 동안 130만명 넘는 피난민이 유럽연합(EU) 회원국에 난민 지위를 신청하기도 했다.

      유럽연합 난민 신청자 추이
      독일 내부적으로는 관용적인 난민 수용에 대한 반대 여론이 고조되면서 극우 정당이 득세했다. 난민에 포용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인 입지가 약화됐다. 나빠진 여론은 지난해 총선 결과에 반영됐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중도보수정당인 기민당과 기사당 연합의 득표율은 32.9%로, 2013년 총선보다 9%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의석수는 65석 줄었다. 반면 지난 선거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94석을 차지하며 단숨에 제3당으로 부상했다.

      메르켈 총리는 난민 위기가 발생한 초기에는 난민들을 대거 받아들였다. EU 통계기관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독일·이탈리아·프랑스 순으로 최종 행선지로 인기가 높은데, 난민 위기가 절정이던 지난 2015년 전체 신청자의 36%가 독일행을 선택했다. 그러나 난민으로 입국한 일부가 베를린, 뮌헨 등에서 폭력 사건을 일으키면서 독일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EU 내부에서도 몇몇 국가에 난민 부담이 집중되는 현행 난민 허가 제도를 두고 비판적인 여론이 많다. 난민들이 바닷길로 넘어오는 그리스·이탈리아와 육로로 집중돼 들어오는 헝가리 등이 대표적이다. EU 국가들과 국경을 맞댄 터키, 알바니아 등도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특정 나라에 몰린 난민들을 다른 EU 국가로 재배치하는 등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이 난민 배분 쿼터제를 반대하는 등 회원국 간 이견이 적지 않다. 그래서 메르켈 총리가 'EU 출신이 아닌 난민은 처음으로 입국한 EU 국가에만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 '더블린 규약'을 거센 반발에도 개정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013년 4월 독일 북부 하노버에서 열린 산업박람회에서 메르켈(오른쪽) 독일 총리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모습.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 AP뉴시스
      ⑤ 러 제재 풀까 말까

      2014년 7월 EU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28개 회원국의 대사급 회의를 열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발효하기로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병합하는 것에 대응하는 조치였다. 러시아 은행이 유럽 금융시장에서 주식과 채권 등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고 무기와 에너지 분야 기술의 수출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제재를 놓고 독일이 기타 회원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분야가 있다. 바로 러시아로 통하는 가스관을 놓고서다.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공급해 수익을 거뒀는데, 80%는 우크라이나에 매장돼 있는 가스관을 통해 공급했다. 우크라이나는 이에 따른 수수료 명목으로 매년 20억달러(약 2조3600억원)를 거둬들였다.

      경제 제재가 발효되자 EU는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독일은 달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잦은 마찰 등으로 공급에 어려움을 겪자 발트해 해저를 통과해 독일 등으로 직접 연결하는 가스관 건설에 나섰다. 가스관이 완성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거치지 않고 매년 독일에 275억㎥의 천연가스를 추가로 직접 공급할 수 있다. 독일도 환영했다.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가스관보다 약 2000㎞ 짧은 노선으로 가스를 공급받을 수 있어 상당한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유지돼도 이 가스관 건설은 그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내비쳤다. 메르켈 총리도 지난 2월 "(이 사업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경제 프로젝트"라며 지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러시아 견제를 위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왔다. 그래서 "새 가스관이 생기면 우크라이나의 안정성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또 라트비아 등 일부 EU 회원국도 "(가스관 건설이) 러시아만 배불리고, 가스 공급을 다변화하려는 EU의 장기 에너지 전략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 입장에서는 자국의 경제를 고려하면 가스관 건설을 위해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것이 유리하다. 하지만 EU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미국이나 다른 EU 회원국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