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서 회의하니… 쥐어짜도 안 나오던 말랑말랑한 아이디어가 샘솟듯

    • 황성혜 한국화이자제약 전무

입력 2018.05.05 03:00

유럽 별장 비즈니스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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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샤토포름 로망빌 전경./샤토포름
지난 3월 말 프랑스에서 유럽·아시아 등 전 세계 지사의 약가(藥價) 보험 업무 책임자들이 모였다. 파리 드골공항에 도착한 뒤 북쪽으로 1시간쯤 가니 한적한 시골 마을 누빌보스크가 나타났다. 널따란 평원에 말들이 풀 뜯고 고목들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 여기에 중세 귀족 별장같이 생긴 숙소 샤토포름(Chateauform)이 있었다.

"한국에서 오셨죠?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합니다." 운영책임자인 자비에·사브리나 곰보(Gombaud) 부부가 삐걱거리는 계단을 오르며 2층 방까지 짐을 올려다 주면서 인사를 건넸다. '꽃 집(Maison des Fleurs)'이라 쓰인 건물에 있는 '작약(芍藥)' 룸. 침대와 책상, 샤워 부스가 전부인 좁은 공간에 들어오니 수도원에 온 기분이다. 창문에선 쉴 새 없이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식당에선 온기가 느껴지는 음식이 정성스레 준비되어 있었다. 동료들은 서로 "여기 일하러 온 것 맞느냐"며 웃었다.

샤토포름에 머무르는 동안 곰보 부부는 수시로 눈앞에 나타났다.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챙겨주고 비가 오면 숙소 앞에 우산을 놓아주거나 저녁 식사에 나타나지 않으면 뭔 일 있는지 전화로 안부를 확인했다. 허기가 있는 사람에겐 간식거리를 갖다주고, 친근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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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샤토포름 누빌보스크를 운영하는 곰보 부부. ②로망빌에 마련된 그물 침대(해먹). ③프랑스 듀히추클레몽에 있는 샤토포름 필레발성. 세미나 참석자들이 점심을 들고 있다.
古城·수도원을 세미나 장소로

샤토포름은 사실 브랜드 이름이다. 기업 세미나와 이벤트를 전문으로 관리하는 프랑스 국적 회사다. 1996년 프랑스 파리에 처음 세워져 프랑스 44개 지점을 비롯, 독일·스페인·이탈리아·스위스·벨기에 등 유럽 6국에서 63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교외에서 여는 세미나뿐 아니라 도심에서 이뤄지는 행사와 연회에도 관여한다. 이용자가 올해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연 매출은 2억유로(약 2600억원·2017년)에 달하며 직원만 1800명이다. 화이자를 비롯, 주로 유럽을 거점으로 한 글로벌 기업들이 샤토포름을 통해 독특한 비즈니스 미팅을 구현한다.

'세미나의 집'이라 불리는 샤토포름 공간은 보통 대형 회의장이나 특급 호텔과 딴판이다. 비교적 공항에서 가깝긴 하지만 도심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 잡았으며, 고성(古城)이나 수도원 등을 개조한 곳이 많다. 마구간과 온실을 회의실과 식당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도심에서 떨어지다 보니 회의 기간 내내 싫건 좋건 동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 수밖에 없다. 가장 큰 특징은 시골 가정집에 초대받은 것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샤토포름은 '바로 내 집같이(Just like at home)'를 표방한다. 이용료에 숙박료·식대를 이미 포함, 정말 집에 머무는 것처럼 편히 먹고 마실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세미나와 워크숍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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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프랑스 북부에 있는 샤토포름 메즈널에서 참석/샤토포름 ②샤토포름 벨렁글리즈 성에서 게임을 즐기는 참석자들./샤토포름
"학창 시절에 캠프 온 기분"

봄비가 내리는 아침에 식당에 갔더니 '프랑스판 부침개'로 통하는 크레페를 직접 만들 수 있게 요리사들이 재료를 마련해 놓았다. 재미 삼아 반죽을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서툴게나마 크레페를 요리하고 있었더니 세계 각국 동료들이 "내 것도 좀 만들어줘"라면서 지나갔다. 커다란 창 밖으로 나무와 풀들이 보이는 원형 회의실 '해바라기룸'은 울창한 식물원에 와 있는 듯한 감정이 들게 했다. 회의실 의자는 소파였고, 한가운데 탁자에 빵과 과자가 가득했다. 발표자가 파워포인트로 글로벌 전략을 설명하는 동안 밖에서 새소리와 교회 종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회의가 끝나자 참가자들은 시골길을 자전거로 달리거나 실내에 설치된 당구대 앞에 모였다. 거실에서 와인을 즐기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휴식 시간을 활용해 기타를 튕기던 영국인 직원은 "지난해 호텔에서 모임을 했을 때와 전혀 다르다"면서 "학창 시절 캠프에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샤토포름이 가진 독특한 '가정집 분위기'를 구현하는 중심에는 현장 매니저인 호스트 커플이 있다. 이들은 까다로운 심사와 5주에 걸친 사전 교육을 받은 뒤 유럽 내 각 지점을 책임진다. 말하자면 호텔 총지배인인 셈인데 단지 지배인이라고 단정 짓기보단 민박에서 숙박객을 맞는 주인 부부에 가깝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샤토포름 버지니 르누방(Renouvin) 홍보담당은 "호스트 커플을 채용할 때 호텔업계 종사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고객을 더 편하게 맞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느냐를 주로 살핀다"고 했다.

휴식 즐기며 상상력 극대화

르누방 담당은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곳에서 배우며 새로운 생각을 하게 돕는다"며 "개인적으로 누리는 휴식이 비즈니스맨의 전문성 발휘로 이어지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샤토포름을 경험한 많은 참가자가 다시 이곳을 찾는다. 제약, 컨설팅, 보험, 의류, IT(정보기술) 등 이름만 대면 아는 세계적인 글로벌 회사들이 단골이다. 한 소프트웨어 업체 직원은 "아침에 필라테스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 리더십 교육을 받은 경험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다른 제약회사 직원은 "따뜻한 보살핌이야말로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고객 중심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근사한 고성에서 가정집 서비스를 받는다고 하면 요금이 비쌀 것 같지만 의외로 세계 대도시 고급 호텔에서 치르는 것과 비교해 비싸지 않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통상 1박에 숙식 등 포함 1인당 250~300유로(32만~38만원) 선이며 업체 여건에 따라 할인이 주어진다.

기업체 가서 '샤토포름' 설치도

샤토포름은 언제나 '고객 중심'에서 출발해 운영하는 걸 철칙으로 삼고 있다. 창업 이후 비즈니스를 다각화한 것도 기업체 고객 피드백과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세미나 전에 전문 강사를 초빙해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거나 자국 음식을 따로 준비해달라고 하는 아시아 기업 부탁도 다 들어준다.

도심에서 간단한 미팅을 하는 고객들을 지원하는 '시티(City)' 사업, 100명 넘는 많은 수의 직원을 대상으로 한 대형 이벤트를 지원하는 '캠퍼스', '집 같은' 느낌을 주는 샤토포름 분위기를 아예 기업체에 가서 꾸미고 설치해주는 '홈(Home)' 브랜드는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작품이다. 샤토포름 누빌보스크 호스트인 곰보 부부는 "참가자들이 이곳에 도착하던 날과 떠나는 날 표정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달라진 걸 알 수 있다"면서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과 동료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 비즈니스 성과는 따라오는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걸 지켜보고 응원하는 게 우리가 찾는 보람이자 결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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