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동서고금 경영학] (4) 이나모리 가즈오의 '후학삼강'
1867년, 27세의 한 청년이 일본 요코하마 부두에 섰다. 곧 프랑스 파리로 떠나는 증기선이 기적을 울렸다. 항구를 떠난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는 유럽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전시장이었던 만국박람회가 열리는 파리에 도착했다. 그는 거기서 두 가지 점을 새로 알게 됐다. 하나는 상공업자가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면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증기기관, 방적기계 등 구미 열강의 눈부신 자본주의 문명이었다.
파리에서 돌아오는 그의 두 손에는 한 권의 책과 주판이 들려 있었다. 하나는 새로운 경제 이념으로서의 '논어'였고, 다른 하나는 경영 기법으로서의 '주판'이었다. 논어는 '경영자가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 인간으로서의 바람직한 모습'을 뜻한다. 주판은 '사업을 전개해나가는 데 겸비해야 할 지식이나 기술'의 뜻을 담고 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사업을 영위해나가기 어렵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이후 일본의 조세, 화폐, 은행, 회계 제도를 선구적으로 개혁하며, 500여 개의 기업체를 주도적으로 세웠다. 지금은 일본 자본주의의 초석을 닦아 '일본 기업의 아버지' '일본 근대 자본주의의 최고 영도자'로 불린다.
100여 년이 지나 또 다른 27세의 청년이 강단 위에 섰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의 넷째 사위인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다. 다니던 회사에서 자신의 기술을 인정받지 못하자 자본금을 빌려 회사를 만들었다. 그의 앞에는 20대 젊은 동료 여덟 명이 있었다. 그들은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라고 혈서를 함께 써 결기를 보였다. 1959년 그는 훗날 일본 최고의 전자회사가 되는 '교세라'를 창립했다. 이렇게 100년의 간격을 두고 두 인물이 이어진다. 시간이 흘러 1983년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젊은 경영자들이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경험과 철학을 전수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였다. 이나모리의 경영스쿨인 세이와주쿠(盛和塾)이다. 2017년 현재 일본 내 지부 85개, 해외 지부 12개를 비롯해 약 1만2000명의 회원을 가진 세이와주쿠에서 그는 후학들에게 세 가지 경영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1강: 경천애인(敬天愛人)
"전 직원의 행복을 추구하라."
시대를 넘어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건네준 '논어'는 먼저 '모든 상업은 죄악이다'라는 유학(儒學)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라고 이야기한다.
공자는 "부귀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부귀를 누리지 않아야 한다. 빈천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이를 '정당한 도를 통해 얻는 부는 좋은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이를 이어가듯 이나모리 가즈오는 "젊은 시절 공자의 '논어'를 배운 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과학이 발달한 문명사회에서 도(道)는 더는 필요 없고 돈을 버는 것만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인간의 도가 가장 중요하다"며 "회사 경영은 공명정대하고 이치에 맞아야 하며 또 도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생각에 따라 그가 창업한 교세라의 사훈은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로, 경영 이념은 '전 직원의 물심양면의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인류·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공헌할 것'으로 정해졌다.
사업을 하려면 '내가 사업을 왜 하는가'에 뚜렷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업 영역과 사업 구조를 가질 수 있다. 최근 한국의 대기업들이 대부분 겹쳐진 사업 영역에서 서로 경쟁하는 이유는 내가 왜 사업을 하느냐는 철학보다는 수익이 되는 신사업 영역에 서로 동시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인격이 있는 것처럼 회사에도 회사의 품격이 있다.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품격 높은 회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사업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경영철학을 구현하고 있는가?'
2강: 중심성성(衆心成城)
"임직원 전원이 경영하게 하라."
파리만국박람회 사절단은 1868년 메이지유신이 발발하면서 일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프랑스에 남았다. 근대적인 회계법, 금융제도, 주식회사의 구조를 직접 배우기 위해서였다.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이나모리 가즈오에게 건네준 오른손에는 이때 배운 경영기법의 주판이 들려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를 통해 '아메바 경영'을 펼쳤다.
처음 교세라를 창업했을 때, 기술자 출신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경영과 숫자에 밝지 못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경영의 핵심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매출은 최대로, 경비는 최소로 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조직은 급속도로 커졌다. 매출과 비용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자 그는 조직의 단위를 작게 나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아메바 경영을 '세세하게 나누어서 눈에 보이는 경영'이라고 했다. 아메바경영의 대표적 사례로는 그가 했던 JAL(일본항공) 회생작업을 꼽을 수 있다. 그는 3만명에 달하는 JAL의 직원을 10명씩 팀으로 나눴다. 그리고 월말에는 그 팀의 승패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아메바 경영의 장점으로는 과거의 수치가 아닌 '현재의 수치'에 바탕을 둔 현실경영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맹자(孟子)'의 양혜왕(梁惠王上) 제환진문장(齊桓晉文章)에 등장하는 명찰추호(明察秋毫)와 일맥상통한다. 명찰추호란 눈이 아주 밝고 예리해서 가을날 가늘어진 짐승의 털까지도 분별할 수 있다는 의미와, 사리가 분명해 극히 작은 일까지도 미루어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내세운 또 하나는 전원이 참가하는 경영 방식이다. 이는 '국어(國語)'의 주어(周語) 하편에 등장한 '중심성성'과 맞닿아 있다. 중심성성이란 '여러 사람의 마음이 성(城)을 만든다'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합치면 견고한 성과 같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작은 조직 단위에서는 리더를 중심으로 각 아메바 멤버들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또 각각의 입장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게 된다. 그 결과 회사 임직원 전원이 목표 달성을 위해 개별 역량을 결집하는, 이른바 '전원 참가형 경영'이 이뤄진다.
3강: 인이관지(人以貫之)
"사람, 즉 직원이 답이다."
공자는 '오도는 일이관지라(吾道 一以貫之)'라고 했다. "나의 도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뜻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공자와 같이 단 하나의 이치로 경영의 모든 것을 꿰뚫었다고 하며, 직원, 즉 사람이 답이라고 한다. 일이관지를 넘어 인이관지(人以貫之)를 강조한다. 경영은 사람이 하는 일이며, 모든 경영 문제의 열쇠는 사람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로서 현재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경영의 신이다. 교세라를 종업원 수 6만여 명, 매출 1조3000억엔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킨 반세기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 비결은 왼손의 논어와 오른손의 주판이 모두 사람을 향하는 인이관지가 아니었을까?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1932~ 일본 가고시마시 출생 가고시마대학 공학부 졸업. 쇼후공업 기술자로 입사
1959 교토세라믹주식회사(현 교세라) 설립
1984 다이니덴덴(현 KDDI) 설립
2010 일본항공(JAL)이 파산하자 회장에 취임(13개월 만에 흑자 전환)
2013 JAL 회장 물러나 교세라 명예회장으로 복귀
후학 3강의 뿌리, 이시다 바이간의 '石門心學'
이나모리 가즈오의 '후학 3강'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먼저 일본 에도시대 경제사상가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1685~1744)의 '석문심학(石門心學)'을 시작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시다 바이간은 상대와 자신이 모두 잘되는 것이 진정한 상도(商道)라고 주장하여 일본인들의 직업의식을 도(道)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일본 산업 혁명 성공의 원동력이 된다.
석문심학은 두 가지 점을 강조한다. 첫째, 진정한 상인은 상대방과 자신을 모두 이롭게 한다. 이익을 남기되 이윤 자체가 아니라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하는 데서 상행위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 둘째, 물욕을 버리고, 눈앞의 이익보다는 상대를 이롭게 하는 것이 오랫동안 장사를 할 수 있는 길이다.
메이지유신 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윤리도, 도덕도, 공익도 망각한 채 오직 부의 획득을 위해서만 돌진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도덕과 경제는 서로 반(反)하는 게 아니라 수레의 두 바퀴처럼 서로 의지하며 굴러가야 진정한 근대 자본주의가 완성된다"고 주장했다. 기업가들이 단지 개인의 영리 추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사회적 기여와 공익을 명백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는 '곤궁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홀로 몸을 선하게 하고, 출세하게 되면 함께 천하 사람들을 선하게 해야 한다'는 '맹자' 정신을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부의 축적과 도덕을 연관시킨 이시다 바이간과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경영철학은 서양의 칼뱅주의 청교도 상업윤리와 서로 맥이 통한다. 막스 베버는 고독과 불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이 세속 생활을 영위하면서 자기의 직업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절약과 부의 축적을 그 징표로 삼는 청교도 정신이야말로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했다. 또 경제적 부의 축적에 종교적 축복과 도덕적·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할 때, 외부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면적 가치의식에 의해 동기부여가 이루어질 때, 이러한 내면적 가치의식이 사회 일반의 윤리 규범으로 객관화되어 금욕주의가 사회적 문화 가치로 정착할 때, 비로소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가 정상적 기능을 하게 된다고 보았다.
동서양에 공통된 자본주의 정신과 경영철학을 동양의 언어로 표현하면 '인의도덕(仁義道德)'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올바른 도리로 얻는 부가 아니면 그 부는 아름답지도 않고 영원할 수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부의 정당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