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애플의 '갑질'이 반도체 납품하는 삼성에 먹히지 않는 세가지 이유

    • 조호진 타키온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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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4.21 03:00

      반도체 가성비 - 하도급업체의 기술력 독점적이면 구매자 휘두를 수 있어
      대안 시장 보유 - 노키아에 굴복 안했듯 PC·노트북 시장을 대안으로 보유
      탁월한 제작 공정 - D램 설계도 공개돼도 제작 공정은 못베껴 1년이상 격차 유지

      2011년 초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스티브 잡스(Jobs)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이에는 폭풍 전야의 긴장감이 흘러 넘쳤다. 잡스는 삼성이 상도의(商道義)를 어겼다고 비판했다. 잡스에게 삼성은 '양날의 칼' 같은 존재였다.

      애플 스마트폰인 아이폰에 장착되는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적시에 값싸게 공급하는 소중한 기업이면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의 유일한 대항마로 간주되던 '갤럭시S' 생산 기업이기도 했다.

      잡스는 삼성이 '정보 차단벽(Chinese Wall)' 정책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같은 회사 내에서라도 이해가 어긋날 수 있는 부서 간에는 정보 교류를 금지하는 정책을 말한다. 삼성이 애플에 공급하는 부품 정보를 갤럭시S의 신제품 개발에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잡스의 비판에는 갤럭시S의 비약적 시장 점유율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갤럭시S의 스마트폰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9년 4%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10%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 사장은 잡스를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 사장과 잡스 사이 협상은 2011년 4월 결렬됐고, 잡스는 역사에 남을 특허 소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잡스는 삼성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하면서도 정작 문제가 된 플래시 메모리 구매는 끊지 않았다. 아니 끊을 수 없었다. 그의 뒤를 이은 팀 쿡 애플 CEO도 마찬가지. 삼성이 애플의 '갑질'을 이겨낼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①경쟁자 압도하는 반도체 가성비


      애플은 아이폰을 디자인하지만, 제조는 하지 않는다. 제조는 전량 미국이 아닌 중국에서 한다. 대만 기업 폭스콘이 250곳이 넘는 납품 기업에서 받은 부품을 조립해 아이폰을 시장에 내놓는다. 아이폰의 부품 납품 기업 중에 삼성전자도 포함되어 있다. 삼성전자는 아이폰X, 아이폰8에 256GB(기가바이트)와 64GB의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를 납품했다.

      스마트폰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강경수 연구원은 "64GB플래시 메모리는 애플이 삼성과 SK하이닉스에서 모두 공급받지만, 256GB플래시 메모리는 삼성 제품만 공급받는다"고 말했다. 더구나 애플은 삼성에 256GB 플래시 메모리의 공급 물량을 늘려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삼성은 더 줄 물량이 없다며 거부했다. 애플 공급 물량을 줄이고, 이윤이 더 높은 고속 서버에 납품을 확대하고 싶지만, 애플과 장기적 관계를 고려해 물량을 줄이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이 삼성 제품을 고집하는 이유는 기술력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256GB 같은 대용량 스마트폰에서는 고속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며 "다른 회사의 256GB 제품은 원활하게 데이터를 처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노근창 현대차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애플이 갑질을 못 하는 유일한 하도급업체가 삼성전자"라며 "하도급업체의 기술력이 독점적이면 오히려 하도급업체가 구매자를 휘두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플래시 메모리의 공급 가격이 갤럭시S용 플래시 메모리의 공급 가격보다 쌀 정도로, 세계 최고 품질을 갖춘 플래시 메모리를 적시에 공급하는 데다 가격까지 싸니 삼성 반도체를 외면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정보 차단벽 논란과 라이벌 회사라는 장애물을 딛고 애플에 매년 대규모 물량을 납품하고 있다. 납품은 삼성전자와, 삼성전자가 지분 85%를 보유한 삼성디스플레이를 통해 이뤄진다. 삼성전자는 램과 플래시 메모리,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유기 발광 다이오드)를 각각 납품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두 회사가 애플에서 받은 대금은 60억달러(약 6조6000억원)에 이른다.

      증권가는 올해 삼성전자 매출액을 약 260조9000억원, 영업이익 약 62조원, 반도체 부문 영업 이익 약 46조5000억원으로 예상한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 계열사가 아이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25%에서 올해 30%로 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애플이 고생해서 아이폰을 시장에서 팔면 삼성전자는 앉아서 수익을 거두는 구조다.


      ②PC·노트북 시장을 대안으로 보유


      삼성전자는 애플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을 과거에 휴대폰 제조업체인 노키아와 경쟁하면서 체득했다. 예전에 노키아는 휴대폰 분야에서 애플만큼 독보적 역량과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었다. 노키아는 애플처럼 삼성의 반도체를 구매했지만, 휴대폰 시장에서는 경쟁 구도였다. 아이폰이 득세하기 전인 2008년 세계 휴대폰 시장은 노키아가 1등, 삼성전자가 2등이었다. 노키아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1위라는 강점을 갖고 납품 단가를 내리거나 하도급업체 교체 카드를 제시하면서 납품 업체를 길들였다.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운영체제(OS)의 약점까지 갖고 있었다. 노키아는 삼성전자가 만드는 휴대폰에 노키아가 개발한 OS 심비안을 사용하도록 압박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을 총괄했던 이기태 부회장은 심비안을 거부하고 싶었지만, 대안이 없어서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구글 안드로이드를 휴대폰 OS로 채택하기 전 시장에 출시했던 옴니아HD 스마트폰이 심비안을 채택한 제품이다.

      노키아는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구매했지만, 꾸준히 납품 단가 인하, 물량 조절 등으로 삼성전자를 압박했다. 삼성전자는 과도한 압박에는 노키아 납품을 거부하는 카드로 대응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에서 노키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는 점이 공세를 막아낼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또 삼성전자는 노키아와 협상이 결렬되면 관련 반도체 부품을 휴대폰이 아닌 PC, 노트북 등에 판매할 수 있도록 생산 라인을 조정하는 유연함도 지녔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만큼 반도체를 대량으로 값싸게 공급할 수 있는 경쟁사가 없다는 자신감이 배경에 깔려 있었다.

      ③설계뿐 아니라 제작 공정도 탁월

      삼성전자는 D램의 반도체 집적도에서 1992년 이후로 줄곧 세계 1위를 고수했다. 반도체 D램은 가장 먼저 상용화된 비(非)메모리 반도체이다. D램의 설계도는 이미 공개됐다. 그럼에도 삼성전자가 여전히 경쟁 업체보다 D램 분야에서 최소 1년 이상 격차를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공정에서 기인한다.

      D램의 D는 전하가 움직인다는 뜻의 다이내믹(dynamic)에서 비롯됐다. D램은 전하를 활용해 저장 정보를 만드는데, 전하가 새어나가는 약점이 있다. 그래서 D램의 전하가 새지 않도록 유지하는 능력이 제작 공정의 핵심 중 하나이다. D램의 전체 제작 공정은 세부적으로는 약 3000개, 크게는 약 300개에 이른다. 이 공정 곳곳에 강점이 숨어 있다. 최양규 KAIST 전자공학과 교수는 "'전하 유지 시간'(retention time)이 짧으면 온도에 대한 내구성이 떨어지는데 삼성전자의 전하 유지 시간은 0.25초로, 동종 업계보다 월등히 길다"며 "삼성전자 D램이 섭씨 영하 50도에서 영상 120도까지 안정적으로 구동되는 이유도 긴 전하 유지 시간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