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 자살 베르테르 바로 안 죽고 로테 만나… 괴테 넘은 마스네

    • 박종호 문화평론가

입력 2018.04.21 03:00

[CEO Opera] <7> 마스네의 '베르테르'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일본에서 한 한국 청년이 껌공장을 세웠다. 미군이 갖고 들어온 껌맛을 알게 된 일본인에게 직접 껌을 보급하겠다는 포부에서였다. 회사 이름을 정할 때 이 청년은 학창 시절 감동 깊게 읽었던 소설 주인공을 회사명으로 내세운다. 그것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지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로테(롯데)였다(원래 독일어 원제목에 충실하자면 '젊은 베르터의 고뇌'가 가깝겠지만 이미 익숙해진 제목이라 그냥 쓰기로 한다).

2014년 2월 14일 뉴욕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요나스 카우프만(왼쪽)과 소피 코흐가 오페라 ‘베르테르’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2014년 2월 14일 뉴욕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요나스 카우프만(왼쪽)과 소피 코흐가 오페라 ‘베르테르’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사랑 못 얻자 자살하는 베르테르

사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구도는 아주 단순하다. 남자 1이 여자를 좋아하지만, 여자는 남자 2와 결혼한다. 그래서 남자 1은 자살한다. 진부하고 단순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얇은 소설이 엄청난 판매액을 올렸고, 온 유럽이 '베르테르 후유증'을 앓았다. 젊은이들은 베르테르 복장을 하고 다녔고 소설 속 운명을 모방해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수천 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괴테는 이 작품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유명해져, 결국 '유럽의 대문호' 반열에까지 올랐다. '파우스트' 등 후기 걸작은 독일 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찬사를 받은 반면, 25세에 출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초기작은 치기 어린 청춘소설로 평가절하되는 측면도 있다.

괴테 사후 60년이 되던 1892년 빈 오페라극장에서는 새로운 베르테르가 세상에 나왔다. 프랑스의 쥘 마스네(1842~1912)가 작곡한 오페라 '베르테르'다. 음악은 강렬하다. 아리아는 애잔하고 듣는 이의 심장을 쥐어짠다. 오케스트라는 눈물을 터뜨릴 만큼 극적으로 몰아붙인다. 과연 음악의 힘은 위력적이다. 프랑스 오페라에 대한 독일인들의 폄하에도 오페라 '베르테르'는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어로 부르지만 가슴을 도려내는 사랑이 독일인에게만 있을 리는 없다. 오페라가 문학과 다른 점은 음악이니, 그런 점에서 감정의 폭발은 오페라가 단연 유리한 위치에 있다.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왼쪽)와 안나 스테파니가 공연한 오페라 ‘베르테르’.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왼쪽)와 안나 스테파니가 공연한 오페라 ‘베르테르’. /풍월당
마스네의 '베르테르'가 가진 독특한 구조는 베르테르가 죽는 대목이다. 로테에게 키스를 하지만 매몰차게 절교를 선언당한 베르테르는 삶을 포기한다. 그는 하숙방으로 와서 로테의 남편이 빌려준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쏜다. 소설 속에서는 베르테르가 자살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로테가 소식을 듣는다. 하지만 마스네는 이것을 고쳐 '마스네의 결말'을 만들었다. 즉 권총을 들고 간 하인의 뒤를 따라 달려간 로테가 베르테르의 방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아직 숨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죽기 전 눈물의 재회를 한다. 이 장면을 위해서 연출가들은 베르테르가 머리가 아닌 배에 총을 쏘아 시간을 버는 등 별별 방법을 쓰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연출가의 능력을 보는 것 역시 즐거움이다.

죽어가는 베르테르를 보고 로테는 절규한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주신 키스를 돌려드리겠습니다"라며 그녀는 그의 피범벅이 된 얼굴을 껴안고 열렬하게 키스한다. 베르테르가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가? 그렇다면 이것은 마스네가 지어낸 말일까? 천만에. 이미 로테가 입속으로 수없이 읊조렸던 말을 여기서 내뱉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괴테가 쓴 것이다. 그것을 입 밖으로 노래하게 하는 것, 이것이 오페라요 마스네의 '베르테르'다.

사랑보다 물질적 안정 택한 로테

그리고 로테는 덧붙인다. "저와 제 집을 지키기 위해서, 제가 당신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렇다. 괴테의 소설은 다만 실연으로 자살한 성급한 청년을 그린 것이 아니다. 당시는 봉건귀족 시대 계급이 무너지고, 시민사회가 시작될 때였다. 시민들은 모두 새로운 상류층으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던 시대다. 괴테도 법관이 되어야 한다는 고위층 아버지의 강요로 힘든 청춘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능력으로는 법관이 될 수 없었다. 기득권층의 수성(守成)을 원하는 아버지의 바램을 채워줄 수 없었다. 그의 소망은 자연과 예술 같은 다른 쪽이었다.

이 이야기는 당시 현실과 이상 속에서 갈등하는, 그리고 유리천장을 깰 수 없는 젊은이들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킨 것이다. 사회와 부모가 바라는 것이 자신의 꿈과 같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을 사회적 능력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계량하려는 사회에 그는 절망하였다. 마음속으로는 베르테르를 사랑하면서도 부모가 원하고 이미 기득권층에 안착한 안정적인 약혼자를 남편으로 선택한 로테의 결정 또한 그렇다. 그리고 베르테르의 비극은 21세기의 이 땅에서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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