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실리콘밸리서 살아남은 한국 젊은이들 "고객만 생각하고 과감하게 내질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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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4.21 03:00

      '네오펙트' 반호영 - 현지화와 인재 채용에 승부 걸어 CES 2년 연속 혁신상
      테슬라 근무 이시선 - IT와 상관없는 숙취해소 음료 개발, 가상 웹사이트로 승부
      '굿타임' 개발 재스퍼 손 - 면접관 밀착 연구, 채용 프로그램 개발, 에어비앤비도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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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호영 네오펙트 대표가 자사 제품‘라파엘 스마트 글러브’를 선보이고 있다. / 네오펙트

      지난 1월 'CES(국제가전박람회) 2018'에서 2년 연속 혁신상을 받은 국내 스타트업 네오펙트. 뇌졸중·치매 환자를 위한 재활기기 '라파엘 스마트 페그보드'와 '라파엘 스마트 글러브'가 주역들이다. 네오펙트는 뇌 손상 등으로 인지 능력이 떨어진 환자의 회복을 돕는 각종 제품·설루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삼성전자에서 마케팅 기획을 하던 반호영(41) 대표가 2010년 창업, 이제 8년 차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매출액은 73억원으로 세계적 재활병원 RIC를 비롯, 뉴욕 몬테피오르 메디컬 센터, 위스콘신대 병원 등에 납품하고 있다.

      네오펙트는 본사가 용인, 미국 법인이 실리콘밸리에 있다. 이들은 어떻게 실리콘 밸리에 안착했을까. 반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선 현지화가 중요하다"면서 "현지 인재 채용에 각별히 신경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애초 미국 법인을 예상보다 빨리 세운 것도 꼭 영입하고 싶었던 버지니아대 경영대학원(MBA) 동기가 실리콘밸리 거주를 고집했기 때문. 반 대표는 지난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에서 열린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에서 이 같은 경험담을 전했다. 이 행사는 스타트업 협력·후원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2014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창업자, 투자자, 엔지니어 등을 초청, 경험과 현지 트렌드를 공유한다.

      사업 기회 생기면 과감히 지른다

      캐나다 교포 이시선씨는 실리콘밸리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에서 제품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수년 전 20여 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가 과음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들 북미에선 볼 수 없는 숙취 해소 음료를 마시는 걸 보곤 신기했다. 실제 먹어보니 효과도 있었다. 그는 "이런 게 왜 미국엔 없지", "미국에서도 잘하면 대박을 터뜨릴 것 같은데"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직접 인터넷을 뒤져 숙취 해소 효과를 내는 헛개에 대해 논문을 쓴 대학 교수를 찾아 자문을 구하고 시장 규모를 추산해봤다. 미국인들 알코올음료 소비량을 고려하면 숙취 해소 음료는 에너지드링크를 능가하는 20조원 규모 시장으로 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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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선 82랩스 대표가 지난 3일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행사에서 숙취 해소 음료 제조업체 창업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젠 수요 예측. 간단하게 행오버닷컴(thehangover.com)이란 가상 웹사이트를 열고 숙취해소제 음료를 5달러에 판다는 문구를 내걸었다. 얼마나 사람들이 흥미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2000달러에 달하는 주문이 쏟아졌다. 시제품도 없었는데 관심이 뜨거웠던 것. 그는 일단 받은 주문을 취소하고 전액을 환불해준 뒤 본격 창업 준비에 들어갔다. 테슬라에서 퇴근하면 저녁과 주말, 휴가 기간을 쏟아 중국·한국 공장을 수소문해 샘플을 만들었다. 꾸준히 반응을 살핀 결과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지난해 테슬라를 나와 숙취음료 스타트업 '82랩스'를 창업했다.

      창업 후 3개월 만에 매출 100만달러를 돌파했고, 지금은 연 매출 700만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알토스벤처스 등에서 800만달러를 추가 투자받았다. 실리콘밸리 창업이라고 꼭 IT(정보기술) 분야에 한정된 건 아니라는 점도 보여줬다.

      고객 입장을 철두철미하게 연구한다

      텍사스대를 졸업한 재스퍼 손은 부인 문아련씨와 함께 2013년 실리콘밸리로 이주했다. 전공이 경영학인데도 코딩에 빠진 아련씨는 제한된 시간 안에 팀을 짜서 제품을 만들어보는 창업경진대회인 해커톤에 남편과 함께 여러 번 나갔다. 그리고 여러 번 우승했다. 재스퍼는 우승 비결을 "심사위원이 원하는 걸 알아내 정확히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링크트인 등을 뒤져 심사위원 이력을 자세히 조사한 다음 그가 좋아할 만한 아이템으로 제품을 만듭니다. 그렇게 하면 거의 실패하는 법이 없죠."

      이들은 해커톤에서 만난 심사위원으로부터 에어비앤비 같은 실리콘밸리 유니콘 기업들이 엔지니어를 채용할 때 후보자와 면접관을 연결해주는 과정이 너무 복잡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보통 엔지니어 1명을 채용하기 위해 150명을 만나 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면접관으로 참여한 사내 엔지니어들이 스케줄을 잡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비용을 쓰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를 효율적으로 재구성하면 회사에 큰 가치를 줄 수 있겠다 싶어 이 아이디어로 창업했다.

      우선 채용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아련씨는 IT업체에 직접 채용담당자로 입사했다. 일종의 '위장취업'인 셈인데 채용 절차를 모르면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을 개발할 수 없다고 판단, 무급 3개월을 자청했다. 재스퍼는 에어비앤비 채용담당자의 애로 사항을 이해하기 위해 쿠키를 싸들고 3개월 동안 매일 방문했다. 그런 과정을 밟아 고객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는 제품을 만들어 냈다. 첫 번째 고객은 에어비앤비였다. 이들이 만든 스케줄러 프로그램 '굿타임'은 스트라이프, 옐프 등 실리콘밸리 유명 유니콘 기업들이 애용하는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

      잉여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실리콘밸리 혁신에너지가 나오는 다른 통로는 '잉여의 시간', '사이드 프로젝트'다. 링크트인에서 일하는 박기상 엔지니어는 동부 기업에서 일하다가 실리콘밸리 쪽으로 이직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잉여 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사이드프로젝트를 하며 자기계발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베이에서는 모바일엔지니어, 인텔에서는 IoT(사물인터넷)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가 그렇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베이 면접을 보기 전에 모바일게임을 취미로 만들어 봤고, 인텔에 입사할 때는 원격으로 제어가 되는 IoT 스피커를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시험 삼아 만들어봤기 때문이다. 기상씨처럼 많은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은 잉여시간을 이용해 뭔가 공부하고 만들어 본다. 그런 다음 굿타임 문아련 대표처럼 해커톤에 참여한다. 82랩스 이시선 대표도 그런 사이드프로젝트를 창업아이템으로 발전시킨 경우다.

      창업자 우대하는 투자자를 골라라

      온라인데이팅서비스 커피밋츠베이글 강아름 대표는 뉴욕에서 창업해서 얼마 뒤 실리콘밸리로 회사를 옮겼다. 온라인데이팅에 있어선 뉴욕이 더 큰 시장인데 왜 실리콘밸리로 옮겼냐는 질문에 강 대표는 좋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구하기 쉽다는 점 외에 "투자자가 다르다"고 말했다. 동부 투자자와 달리 실리콘밸리 투자자는 창업자 입장에서 더 생각해주고 기업 가치도 잘 쳐준다는 것이다. 굿타임 문아련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투자받을 때 장점은 회사 장기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전문 투자자에게서 충분한 자금을 받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투자자가 가진 방대한 네트워크도 스타트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내에서도 창업자를 우대하는 투자자를 잘 만나느냐에 따라 생존 확률이 달라진다. 스타트업에 대한 안목과 경륜뿐 아니라 배려심을 갖춘 투자자를 골라 찾아가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