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의 남자' 유럽 경제대통령 오를까

입력 2018.04.21 03:00

유럽중앙은행 4代 총재 자리놓고 뜨거운 싸움

유럽 대륙에서 세계 제2의 '경제 대통령' 자리를 둘러싸고 물밑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내년 10월에 임기가 끝나는 마리오 드라기(Draghi)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총재의 후임을 둘러싼 쟁탈전이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럽의 최대 단일통화인 유로화 관리와 유로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기구다. 유로화를 쓰는 19개 회원국(유로존)이 가입해 있다. 유럽중앙은행이 결정하는 금리는 회원국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유럽중앙은행에 가입된 국가의 전체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약 12조달러(2016년 기준). 세계 총생산의 약 19%를 차지한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이다.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회원국에 적용되는 금리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또한 유럽뿐 아니라 세계경제 동향을 진단하고, 유럽 향후 행보에 관한 전망을 내놓는다. 그가 내뱉는 한마디에 세계 자본시장이 요동친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에 이어 세계 두 번째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이유다.

유럽중앙은행 4代 총재 자리놓고 뜨거운 싸움
1998년 유럽중앙은행이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3명이 총재에 올랐다. 초대 총재는 빔 다위센베르흐(Duisenberg)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 이어 장클로드 트리셰(Trichet)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8년을 재임했다. 3대 총재가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출신 드라기 현 총재이다.

유럽중앙은행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는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이다. 유럽중앙은행에 낸 납입금은 전체 납입금의 18%인 19억4820만유로(약 2조5700억원)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다. 2위 프랑스(14%·15억3500만유로)와 3위 이탈리아(12.31%·13억3300만유로)보다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럽중앙은행 총재에 독일 출신 인사가 앉은 적은 없다.

유럽 금리 결정하는 막강한 자리

1998년 초대 유럽중앙은행 총재 자리를 놓고, 최대 주주 독일과 2대 주주 프랑스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당시 유럽중앙은행 본부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두는 데 성공한 독일은 초대 총재 자리에는 자국 출신을 밀지 않았다. 대신 유럽중앙은행의 모태였던 유럽통화기구의 다위센베르흐 총재(네덜란드)를 지지했다. 반면 프랑스는 유럽중앙은행 소재지를 독일에 양보한 만큼 자국 중앙은행 총재인 트리셰가 수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조율 끝에 독일 뜻대로 다위센베르흐가 초대 총재를 맡았고, 트리셰 총재는 4년 뒤 총재에 오를 수 있었다.

이들 뒤를 이은 인물이 드라기 현 총재다. 이탈리아 은행가 출신인 그는 골드만삭스 부회장과 이탈리아 재무장관,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등을 역임했다. 그가 총재에 오르는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최대 주주임에도 총재를 배출하지 못한 독일 때문이었다. 앙겔라 메르켈(Merkel) 독일 총리는 2011년 총재 선출이 임박하자 악셀 베버(Weber) 독일중앙은행 총재를 밀었다. 하지만 베버는 유로존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이 제안한 국채 매입(시중에 돈을 푸는 것) 계획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등 긴축정책을 선호했다. 이 때문에 많은 돈이 풀려 적자가 메워지기를 선호한 다른 회원국과 마찰을 빚었다. 결국 베버는 도전을 포기했고, 드라기가 총재로 선출됐다.

獨 바이트만, 100점 만점에 84점

현재까지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차기 총재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은 독일 출신인 옌스 바이트만(Weidmann) 현 독일중앙은행 총재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1월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그는 100점 만점에 84점을 얻어, 2위인 프랑수아 빌루아 드갈로(Galhau)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26점) 등 다른 후보들을 압도했다. 올해 49세로 비교적 젊은 그는 메르켈 총리의 수석경제보좌관을 지낸 이력 때문에 '메르켈의 남자'라고 불린다. 이번에야말로 독일이 유럽중앙은행 총재를 배출할 차례라며 의지가 강한 것도 장점이다.

또 최근 유럽중앙은행 부총재에 스페인 출신 루이스 데긴도스(Guindos) 스페인 재무장관이 내정된 것도 호재다. 유럽연합은 인사나 행정 등에서 지역 분배를 중시하기 때문. 로이터통신은 "부총재에 남부 국가 출신이 됐기 때문에 북부 국가 출신이 총재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반드시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우선 그가 긴축을 선호하는 통화 강경론자(매파)라는 점이 약점으로 꼽힌다. 유럽중앙은행 가입국 상당수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시중에 돈을 많이 푸는 통화 완화정책을 선호한다. 그러나 독일은 돈이 많이 풀리면 유럽 경제가 자칫 거품으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때문에 지난 2011년에도 베버 당시 독일중앙은행 총재가 다른 회원국과 마찰을 빚었고, 총재직에 오르지 못했다. 바이트만 총재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이탈리아 은행 유니크레디트 에릭 닐슨 이코노미스트는 "바이트만 총재는 유럽중앙은행의 (통화 완화와 관련된) 결정에 너무 많이 반대해 다른 회원국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가장 유력하다고 알려진 후보가 유럽중앙은행 총재에 오른 적이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출범 당시 유력했던 트리셰는 4년을 기다려야 했고, 3대 총재로 유력했던 베버도 낙마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8년 만에 총재직 탈환 노려

바이트만이 낙마할 경우에 대비해 다른 나라 후보들도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프랑스는 드갈로 프랑스중앙은행 총재를 밀고 있다. 그는 상대적으로 바이트만 총재보다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선호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가 총재가 된다면 프랑스는 8년 만에 총재직을 탈환하게 된다.

또 다른 북부 유럽 국가의 후보들도 물망에 오른다. 최근에는 에르키 리카넨(Liikanen)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가 유력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4일 "당초 매파였던 리카넨 총재는 유럽중앙은행이 선호하는 완화정책을 포용하는 중립파로 변했고, 이 점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유럽중앙은행 내부에서도 바이트만 보다 리카넨이 더 나은 상황에 있다고 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밖에 필립 레인(Lane)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와 아르도 한손(Hansson) 에스토니아 중앙은행 총재, 클라스 노트(Knot)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 등도 블룸버그 조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여성 총재 후보로는 프랑스 출신 크리스틴 라가르드(Lagarde)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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