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회사에서 항공우주 기업으로… 한 우물만 깊이… 망하던 회사 일으켜

입력 2018.04.21 03:00

[Cover story] 일본 강소기업의 불타는 생존력… 대표 기업 3곳 분석

이미지 크게보기
(사진 왼쪽)항공기에 들어가는 볼트, 너트 등 부품. (사진 오른쪽)유키정밀 직원이 공장에서 공정을 확인하는 모습. /유키정밀
일본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53㎞ 떨어진 가나가와(神奈川)현 지가사키(茅ヶ崎)시. 서핑족들이 즐겨 찾는 해안 도시다. 해변에서 약간 떨어진 시 외곽엔 중소기업들이 밀집한 산업단지가 펼쳐진다. 벚꽃이 핀 시골길을 따라 들어선 골목에 컨테이너처럼 생긴 2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인공위성이나 항공기, 고급 시계 등에 들어가는 정밀부품을 만드는 유키정밀(由紀精密) 본사다.

유키정밀은 1951년 오쓰보 사부로가 설립한 '오쓰보 나사 제조사'에서 출발했다. 주로 대기업 하도급을 받아 공중전화 부품을 만들다가 1990년대 공중전화 수요가 급감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후 전기기기·전선을 연결하는 부품인 커넥터 생산으로 업태를 바꿔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IT(정보기술) 거품이 꺼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유키정밀은 전 세계 100여 개사에 항공우주·의료기기 부품을 제공하는 강소기업으로 거듭났다. 연 매출은 4억3000만엔(약 43억원). 아직 미미하지만 2008년 이후 매년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거래처에 설문조사 돌려 강점 확인

기울어가던 유키정밀을 일으켜 세운 주역은 오쓰보 마사토 대표이사. 창업주 손자인 그는 2000년 도쿄대에서 공학 석사를 받은 뒤 다른 회사에서 일하다가 2006년 합류했다. 그는 "처음엔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일단 "우리가 가진 장단점이 뭘까" 파악해보고 미래 설계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를 객관화하기 위해 아예 거래처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거래처에선 유키정밀에 대해 "제품 완성도가 높고 불량률이 낮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새로운 도전 분야를 골랐는데, 그게 지금 주력인 항공우주 부품 생산이다. 오쓰보 대표는 "항공우주산업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품질과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유키정밀 DNA에 적합한 유망 업종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그다음은 무작정 도전. 오쓰보 대표는 우선 항공우주 기업들이 뭘 바라는지 알아보기 위해 2008년 국제항공우주 전시회에 기존 제품을 출품했다. 당시 부스가 우연히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건너편에 있었는데, 관람객들이 미쓰비시와 연관된 기업으로 착각하고 자주 들러 이것저것 묻는 과정에서 전환의 계기를 잡았다. 유키정밀에서 생산한 다른 정밀부품을 보고 고객이 '항공우주 부품도 이렇게 만들어줄 수 있느냐'고 문의한 게 출발이었다. 오쓰보 대표는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섣불리 '변화'나 '혁신'을 논하기보단 기존 강점을 살려 다른 분야로 적용하는 '집념(執念)'이 재도약을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오쓰보 마사토 대표와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회의하고 있다. /유키정밀

하도급업체지만 먼저 부품 설계 제안

결정을 내리고 오쓰보 대표는 갑작스러운 업종 전환으로 혼란스러워할 직원들을 위해 직접 항공우주산업을 공부하고 직원들과 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본사 2층 작은 공간을 회의실로 개조, 매주 1시간 동안 항공우주 산업 관련 지식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사업 계획도 알렸다. 거래처를 대하는 방식도 단순 하도급에서 설계를 먼저 제안하는 구조로 바꿨다. 부품 디자인과 설계를 담당하는 연구개발(R&D)팀을 신설, 고객 요구에 더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 끝에 1년 만에 JISO(항공우주품질경영시스템)9100을 취득하고 2011년 파리항공우주쇼에 항공 부품을 출품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오쓰보 대표는 자사 강점으로 능동성과 '공정별 품질 관리'를 꼽았다. 사내 시스템을 통해 누가, 언제, 어떤 재료로 어떤 기계를 사용해 어떤 작업을 담당했는지 세세하게 기록해 안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한다. 고객사와는 완성품이 나올 때까지 의견을 주고받는 제도를 만들어 제조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고 있다. 직원들과 가지는 토의는 점차 영역을 확장, 창업 100년을 맞는 2050년의 유키정밀 비전을 어떻게 세울지를 놓고 치열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상태로 발전했다.

북미·스위스 등 해외 시장 공략

유키정밀은 앞으로 거래처를 세계 곳곳으로 대폭 확장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고 있다. 다른 일본 중소기업들이 뛰어난 기술력을 갖췄음에도 내수 시장에 만족하는 폐쇄성에 그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쓰보 대표는 "일본에서 고품질 부품을 제조한 뒤 이를 제값에 사줄 수 있는 해외 고객과 협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항공산업이 발달한 프랑스에 지사를 두고 있고, 스위스와 북미 지역으로 넓힐 방침이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다양한 해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매년 국제 전시회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오쓰보 대표는 자사 제품을 보여주면서 "시제품이 훨씬 많은데 국제전시에 보낸 상태라 더 보여줄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오쓰보 마사토 대표이사/ 이재은 기자
"남들은 거절했을 견적에 끈기 있게 매달려… 회사 장기비전 제시하자 직원들 달라져"

“지금 잘나가도 1~2년 뒤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회사 강점을 잘 파악하고, 이를 업종과 상관없이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꾸준히 살펴봐야 합니다.”

일본 정밀부품 제조사 유키정밀을 이끄는 오쓰보 마사토 대표이사(大坪正人·43·사진)는 빠르게 변하는 기업환경에서 중소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기업 세부 내용에 대해 공개할 부담이 없는 중소기업이다 보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당장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획을 밀어붙일 수 있는 집념이 있었다”고 말했다. 도산 직전 회사를 12년 만에 항공우주·의료기기·반도체 부품 강소기업으로 키워낸 저력이 묻어나는 발언이었다.

오쓰보 대표는 “항공우주 사업을 개척하는데 거대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 “부품은 늘 만들었던 것이고, 회사의 장기 비전만 새로 제시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손바닥만 한 위성 부품을 들어 보이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회의실 한쪽에 세워진 유리장에는 유키정밀이 만드는 각종 부품의 시제품이 진열돼 있었고, 벽면에는 각종 기술 인증서가 걸려 있었다.

오쓰보 대표는 유키정밀이 주력 사업을 전기기기나 전선을 연결하는 전자부품인 커넥터에서 항공·의료기기 부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게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년 전 미국 위성 벤처기업으로부터 위성 부품을 만들어달라는 이메일을 받은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당시 위성 부품을 만든 적이 없었던 데다가 견적을 내보니 (비용이 많이 들어)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면서 “다른 기업이었다면 제안을 거절했겠지만 우리는 끝까지 해보겠다고 답장을 보냈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이 자세한 도면을 제공하지 않자,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설계를 직접 제안해 계약을 성사시켰다.

앞으로 유키정밀은 정밀부품 제조 기술을 환경, 에너지, 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할 방침이다. 오쓰보 대표는 직원들과 2년간 논의를 거쳐 이 계획을 ‘유키정밀 100년 비전’으로 정리했다. 그는 “환경 오염을 줄이는 기계, 자원 문제를 해결하는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 등을 만들어 세상에 도움이 되는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유키정밀(由紀精密)

설립 1961년
본사 일본 지가사키현
대표이사 오쓰보 마사토
직원 35명
사업 내용 항공·의료·기계 부품 제조
매출 4억3000만엔 (2017년)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over story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