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일본 강소기업의 불타는 생존력 셋… 창의력·집념·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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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4.21 03:00

      [Cover story] 심층 분석- 글로벌 강소기업 <1> 일본

      창업 60년이 넘은 일본 중견 클리닝 업체 기쿠야(喜久屋)의 나카하타 신이치 사장은 10여 년 전 세탁물을 찾으러 온 고객이 던진 말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발굴했다. 허겁지겁 매장을 방문한 이 고객이 주인에게 "늦게 찾으러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것. 당시만 해도 세탁을 맡기면 늦어도 다음 날엔 찾아가는 게 관행이었다. 세탁소 주인들은 세탁물이 쌓여 공간이 부족해지면 고객에게 "왜 빨리 찾으러 오지 않느냐"면서 독촉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나카하타 사장은 "공간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 가정 환경을 고려할 때 옷을 오랫동안 맡아주고 원하는 날짜에 찾아갈 수 있게 하면 고객들이 좋아하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대형 창고를 마련해 6개월에서 3년까지 세탁물을 보관해주는 '시티 클로짓(City Closet)' 서비스를 출범시켰다. 이 서비스를 비롯, 새롭게 시도한 창의적 서비스들이 호평을 받으면서 기쿠야는 부진에 시달리는 클리닝 업계 실정과 달리 매년 5% 이상 성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기쿠야처럼 자신들만의 독특한 강점을 무기로 불황을 극복하고 성장을 이어가는 강소 기업이 적지 않다. 일본은 '장수(長壽) 기업' 대국으로 통하는데 장수 기업 대부분이 강소 기업으로 분류된다. 전 세계에서 100년 이상 존속한 기업 중 80%가 일본에 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다. 이런 장수 기업은 創(창의), 執(집념), 變(변신)이란 화두를 기반으로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면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오카다 고이치 메이지대 교수는 "일본 장수 강소 기업들은 창·집·변으로 표현되는 특징이 있다"면서 "여기엔 '산포요시(三方よし)' 정신, 즉 '파는 사람도 좋고, 사는 사람에게도 좋고, 세상에도 좋은' 사업을 해야 한다는 경영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①創 :남이 생각 못 한 길을 찾아라

      1986년 도쿄 주택가에서 창업한 우산 제조 회사 슈즈셀렉션은 장마가 끝나면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번번이 부진에 시달리는 질곡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맑은 날에도 사고 싶은 우산을 만든다"는 구호 아래 다채로운 우산을 만들기 시작했다. 색상과 문양을 화려하고 다양하게 넣었고, 주머니에 들어가는 수퍼 미니형, 150g 초경량형 등 별별 우산을 다 만들었다. 낙진으로 고생하는 가고시마현 주민을 위한 둥글고 긴 투명 우산 '사쿠라지마 파이어', 도야마현 폭설·강풍을 견디도록 강화 플라스틱을 사용한 '도야마 선더' 우산 등은 "새롭고 창의적"이란 찬사를 받았다. 슈즈셀렉션은 현재 일본 우산 시장에서 점유율 17%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2000만개 이상 우산을 판매하고 있다.

      ②執 :있는 강점을 극대화하라

      공중전화 부품 회사였던 유키정밀은 공중전화 수요가 줄면서 위기에 처했다. 이후 부품 생산 기술을 살려 항공우주 부품 생산에 뛰어들어 극적인 반전을 이뤘다. 부품 제조 기술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집념과 결단, 이를 직원들과 전폭적으로 공유한 소통력이 성공의 원동력이었다. 주물 제작 업체 노사쿠도 주물 제조 기술을 발전시키며, 단순 하도급에서 직접 놋쇠 풍경(風磬·작은 종) 제작, 구부러지는 항균 재질의 주석 식기 '카고(KAGO)' 개발을 통해 프랑스·이탈리아 등 해외시장까지 진출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③變 :과감한 변신으로 돌파하라

      금속을 녹여 산업용 기기 부품을 주조하던 주물 업체 아이치도비는 지금은 일본 최고 밥솥 제조 업체로 통한다. 아이치도비가 만든 '버미큘라 라이스포트'는 8만엔(약 80만원)에 이르는 고가임에도 주문 후 제품을 받으려면 최장 15개월까지 기다려야 하는 베스트셀러다. 이전에 만든 버미큘라 냄비 역시 명품 반열에 오른 상태. 아이치도비는 2000년대 초반 발주 감소로 고전하다 "새로운 사업 분야를 찾아보자"는 각오로 도전해 성공했다.

      1967년 설립한 간판 제조 회사 코미는 우연히 블록 거울을 회전 간판에 붙인 걸 계기로 사각지대를 없애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특수 거울 제조에 뛰어들었다. 현재 항공기 수화물 유실 확인용, 도로 충돌 방지 반사경, 서점·편의점 도난 방지용 거울 등 일본 특수 거울 시장의 80%를 차지하면서 신천지를 개척했다.

      일본의 강소 기업들은 20여 년간의 장기 침체와 고령화의 위기 속에서도 혼신의 노력과 독자적 노하우로 생존에 성공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강소 기업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기술력 향상과 철저한 서비스를 추구한다"면서 "이를 대변하는 신조가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라고 말했다. 물건을 뜻하는 '모노'와 만들기를 뜻하는 '즈쿠리'를 합친 말로 '혼신을 다해 최고 제품을 만든다'는 장인 정신을 내포하고 있다.

      WEEKLY BIZ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국 중소기업들에 시사점을 주기 위해 일본을 시작으로 글로벌 강소 기업들의 비결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