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라이트형제가 특허 집착할 때 윌리엄 보잉은 상용화… 글로벌 인재들 영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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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4.07 03:00

      [Cover Story] 보잉 100년 경쟁력

      [Cover Story] 보잉 100년 경쟁력
      비행기를 최초 개발한 사람은 라이트 형제였지만 상업용 항공기 제작에서 업적을 남긴 건 보잉 창업자 윌리엄 보잉(1881~1956년)이었다. 라이트 형제가 특허를 지키려고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보잉이 사업에 뛰어들어 상업화에 성공했다. 보잉은 예일대 공대를 다니다 중퇴한 뒤 창업했다. 종종 빌 게이츠(하버드대 중퇴)와 비교되기도 한다.

      ①글로벌 인재 경영

      보잉은 재능이 있는 인재는 편견 없이 영입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창업 후 처음 채용한 엔지니어는 중국계 미국인 왕추(Wong Tsu)였다. MIT를 졸업한 왕추는 보잉 초기 모델 제작을 주도했다. 현재 보잉에는 전 세계 65개국에서 14만명 직원이 일하고 있다.

      ②선제적 구조 조정

      보잉이 항공기 산업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얻자 정부에서 손을 대려는 움직임이 보였다. 그러자 창업자 윌리엄은 1934년 회사 경영에서 물러나고 계열사를 모두 매각했다. 1970년대 보잉은 점보제트기 B747 판매가 부진하고 항공 산업 위축과 유가 상승 여파로 실적이 추락하자 10만명 직원 중 5만명을 감원하면서 대응했다. 2016년엔 상업 항공기 매출이 역대 최대였지만, "대형기 주문이 감소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자 4000명을 감원하면서 대비했다.

      ③모험을 무릅쓴 연구·개발

      1950년대 보잉사는 제트엔진 상용화에 사운을 걸었다. 지금은 일반화했지만 당시에는 전투기에만 쓰이던 엔진. 위험성 때문에 다른 경쟁사들이 실패했던 프로젝트에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어 시장 판도를 바꿔놓았다. 그 결과 탄생한 B707기는 "민항기 역사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엔 철·알루미늄으로 만들던 항공기 동체에 초경량 탄소복합 소재를 채택한 B787기를 선보였다. B787기는 이후 2년여 동안 600대 주문을 받아 '가장 짧은 기간 동안 가장 많이 판매한' 항공기로 이름을 남겼다. 보잉은 현재 3D 프린터로 항공기 부품을 생산하고 제작 과정에서 AI(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하는 새로운 혁신 과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④글로벌 아웃소싱과 린 생산 방식

      보잉 항공기 제작은 표준화를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진행한다. 일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부속품을 생산, 미국 시애틀 본사 공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생산 기지 단순화와 효율성을 추구한다. 덕분에 유연한 인원 조정이 가능하다. 전 세계 아웃소싱 비율은 63%로 경쟁사 에어버스의 2배가 넘는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린(Lean) 생산 방식을 결합했다. 생산 공정상에서 초기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려보내는 게 아니라 고객 요구와 개선 필요성을 반영하면서 탄력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