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X? 블루 오리진? 화성 첫발 딛는 자는 보잉 우주선 타고 갈 것"

입력 2018.04.07 03:00

[Cover Story]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회장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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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런버그 회장은 “우리의 비전은 항공우주 분야에서 혁신을 통해 세상을 연결하고 보호하고 탐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고운호 기자
180㎝가 넘는 키, 짧은 금발 머리, 사이클링으로 다져진 단단하고 호리호리한 몸매…. 지난달 서울 포시즌스 호텔 7층의 비즈니스센터에 인터뷰를 하러 나타난 데니스 뮬런버그(Muilenburg·54) 회장은 마치 출격 준비를 마친 전투기 조종사처럼 보였다. 세계 1위 항공우주기업 보잉을 이끄는 그의 매서운 눈매에는 결단력이 내비쳤고, 말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화성에 처음 발을 내딛는 사람이 누가 될진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는 보잉이 만든 우주선을 타고 갈 겁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 등 화성 정복을 목표로 업계 거물들이 저마다 우주선 개발에 뛰어들고 있지만 결국 승자는 100년 전통(1916년 출범)의 보잉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뮬런버그 회장은 "보잉은 현재 38층 높이의 초대형 우주선을 제작하고 있으며, 내년 시험 발사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연 1만㎞ 달리는 사이클 마니아

보잉은 1996년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 탐사 프로그램인 '아폴로 계획' 등에 깊숙이 참여한 록웰사(社)의 항공우주·방위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우주개발 경험을 축적해왔다. '신(新)우주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뮬런버그 회장의 장담은 허세가 아닌 셈이다.

뮬런버그 회장은 '세계 최고의 비행기를 만드는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1985년 대학생 인턴으로 보잉과 인연을 맺었다. 입사 30년 만에 2015년 보잉 회장에 올랐다. 1주일에 평균 140마일(약 225㎞)을 자전거로 달리는 사이클광(狂)이다. "올해 목표는 7000마일(약 1만1300㎞)인데 무난히 넘길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속도와 끈기의 사이클 정신은 뮬런버그 회장의 추진 동력이다. 그는 2015년 7월 취임 이후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협력사와 하청업체에 맡겼던 항공기 유지·보수 사업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 서비스 사업부를 신설했다. 현재 연간 150억달러 수준인 유지·보수 관련 매출을 10년 내 500억달러 규모로 키울 방침이다. 뮬런버그 회장은 소형 항공기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해 캐나다 소형 항공기 제조사 봉바르디에를 상대로 "정부 보조금을 이용해 시장가 이하로 미국에 항공기를 팔았다"면서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하는 강수를 뒀다. 놀란 봉바르디에가 보잉 맞수인 에어버스와 손잡자, 뮬런버그 회장은 올 초 브라질 소형 항공기 제조사 엠브라에르 인수를 추진하면서 맞대응하고 있다.

한국에 보잉 R&D센터 건립

보잉은 지난해 763대 민항기를 생산·인도했다. 매출액은 934억달러(약 100조2500억원). 올해는 생산 규모를 800대 이상으로 늘리고 2020년엔 900대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항공 운송산업이 매년 성장하면서 미래도 밝다. 뮬런버그 회장은 "아시아에서만 비행기를 처음 타는 인구가 매년 1억명씩 등장하고 있어, 앞으로 20년간 4만1000대의 항공기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비용 항공사(LCC)가 많아지고 자율비행 등 첨단 기술이 항공산업에 들어오고 있는 기류도 낙관의 근거다. 그는 "LCC 시장이 커지면서 노선이 다양해지고 고객층도 세분화됐다"면서 "이런 수요 변화에 맞출 수 있는 새로운 항공기를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세대 비행 기술에 대한 투자도 늘려 지난해 4월 자율비행 스타트업 오로라 플라이트 사이언스(Aurora Flight Sciences)를 인수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자율비행과 인공지능, 항공전자공학 등을 연구하는 대규모 연구개발(R&D) 센터를 세운다는 계획하에 현재 한국 정부와 협의 중이다.

하지만 뮬런버그 회장 앞에 난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보잉은 미·중 무역전쟁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국 판매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뮬런버그 회장은 "앞으로 20년간 중국은 7000대 이상 항공기를 사갈 전망"이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양국이 생산적인 무역 관계를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잉은 올해로 창립 102주년을 맞았다.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창사 이후 10번째 CEO. 보잉 인턴으로 사회생활을 시작, 31년간 보잉에서만 일한 뼛속까지 ‘보잉맨’이다. 그는 “항공기, 방위, 서비스 세 가지 분야를 다 운영하는 기업은 보잉밖에 없다”면서 “신제품과 첨단 기술, 공정, 인력에 집중하는 성장 전략으로 100년 넘게 최고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넘게 재직한 회사의 리더가 됐다. 각오가 어떤가.

[Cover Story]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회장 단독 인터뷰
고운호 기자
“여행객부터 군인까지, 보잉이 만드는 제품은 다른 기업과 달리 개인의 생명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안전하고 우수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탁월함(excellence)과 진실성(integrity), 이 두 가지 가치를 머릿속에 새긴다. 아이오와주 농부였던 아버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 두 가지 덕목을 항상 강조하셨다. 항공우주산업은 어렵고 까다로운 분야다. 오랜 준비와 연구가 필요한, 호흡이 긴 산업이다. 난관에 부딪혀도 묵묵히 나아가는 뚝심이 필요하다.”

―존경하는 CEO는.

“전임자인 제임스 맥너니 CEO로부터 많이 배웠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게 사실 CEO의 일이다. 그래서 폭넓은 CEO 관계망을 구축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 CEO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조언을 구한다. 리더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와 의견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항공기 유지·보수 사업 키울 계획

―현재 보잉이 주력하고 있는 제품군은.

[Cover Story] 데니스 뮬런버그 보잉 회장 단독 인터뷰
“민항기에선 최근 싱가포르항공에 인도한 (탄소복합 소재) 787-10기, 2020년 출시 예정인 차세대 장거리 항공기 777X기 등이 있다. 방위 사업에서는 탱커, 치누크 헬기 같은 회전 날개 항공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일감이 쌓여) 보잉 현재 수주 잔량은 5000억달러에 육박한다.”

―항공기 유지·보수를 포함한 서비스 분야를 확장하기로 했는데.

“연간 150억달러 규모인 서비스 사업을 5~10년 후 500억달러 규모로 키울 계획이다. 성장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전체 항공기 유지·보수를 포함한 서비스 시장은 10년 후 2조6000억달러 규모에 육박할 전망이다. 전 세계에서 운항되는 상업용 항공기의 약 50%가 보잉 항공기다. 현재 이 가운데 7~8%의 항공기에만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한다. 엄청난 성장 기회가 있는 셈이다. 다양한 부품과 기능을 고객에게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과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디지털 설루션, 파일럿 교육, 보완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비행기가 똑똑해질수록 디지털 정보를 기반으로 설루션을 제공할 일이 많아질 것이다. 비행 최적화, 연료 절감, 효과적인 운항 설루션 등 정보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보잉은 2012년부터 부품사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일의 60~70%는 협력사를 통해 이뤄진다. 협력사가 수천 곳에 이른다. 지난해 한국 주요 48개 협력사에도 4억달러를 투자했다. 한국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본부(KAL-ASD)와도 주기적으로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한다.”

자율비행·스마트 제조방식에도 투자

―보잉은 지난해 4월 벤처캐피털 ‘허라이즌X’를 설립하는 등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이다. 최근에는 브라질 항공기 제작업체인 엠브라에르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주로 기존 보잉 사업 역량을 보완해주는 곳이 대상이다. 유지·보수사업 역량을 강화할 기업이나 자율비행, 항공전자공학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눈여겨보고 있다. 최근 인수한 자율비행 스타트업 오로라 플라이트 사이언스가 대표적이다. 앞으로 인수·합병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것이다. 엠브라에르는 (대형기 위주) 보잉 제품군을 보완할 수 있는 소형 민항기 제품을 갖추고 있다. 서비스 사업을 지원할 항공전자공학 기술도 강하다. 조만간 마무리할 예정이다.”

―자율비행기 미래는 어떻게 보나.

“극복해야 할 규제와 인증 절차가 많지만 조만간 화물 운송 수단이나 자율주행 택시 등 자율비행기가 등장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방위 산업에서는 이미 자율비행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 보잉 자회사 인시투(Insitu)가 만든 무인항공기 스캔이글은 전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다.”

―항공기 제조에서 어떤 기술을 적용하고 있는가.

[Cover Story] 보잉 프로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생산 라인에는 자동화 기술과 로봇공학이 도입되면서 인간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스마트 공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실시간 주문제작을 수행할 수 있는 3D 프린팅이나 적층 가공(additive manufacturing) 기술에도 투자하고 있다. 민항기에 독특한 인테리어를 입히고 싶어 하는 고객이 있다면 3D 프린터를 사용해 공장에서 곧바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더 효율적으로 조립할 수 있는 부품과 디지털화에도 투자하고 있다. 항공기 디자인부터 제작을 완성하기까지 과정을 담은 가상 모형, 또는 항공기의 ‘디지털 쌍둥이(digital twin)’가 있다면 항공기 제작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앞으로 10년간 일어날 제조 혁신은 신제품 혁신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장거리 날아가는 중소형 항공기 유망

―초대형 항공기가 실패작으로 판명나고 있다. 여객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왜 초대형 항공기가 실패했을까.

“지난 5~10년 사이 여행의 성격이 바뀌었다. 20년 전에는 작은 공항에서 중소형 비행기를 타고 허브 공항으로 승객을 끌어모은 뒤 대형 항공기로 승객을 다른 허브 공항으로 나르는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가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허브에서 환승하지 않고 출발지와 목적지를 곧바로 잇는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가 대세다. 네트워크로 전 세계가 연결돼 있기 때문에 굳이 허브를 통해 이동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우린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중형 항공기 개발에 집중했다. 전 세계가 개별 도시로 이어져 있다는 인식은 항공사의 항공기 구매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높은 연료 효율로 장거리를 갈 수 있는 항공기가 앞으로도 유망하다.”

―화성 우주선 사업 경쟁이 치열하다.

“우주 사업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세 가지 핵심 분야에 투자한다. 첫째 위성 사업이다. 위성으로 전 세계에 통신을 제공한다. 보잉은 그 어떤 회사보다 많은 위성을 궤도에 띄웠고 차세대 인공위성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 둘째는 저궤도(300~1325 km) 우주 여행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공동으로 국제 우주정거장 우주 비행사를 태울 우주 택시 ‘CST-100 스타라이너’를 개발 중이다. 조만간 저궤도에 우주 공장과 우주 호텔도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우주 관광 사업도 꽃피울 것이다. 마지막은 깊은 우주 탐사다. 현재 NASA와 화성에 보낼 첫 우주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내년에 첫 시험 발사에 나선다. 화성으로 갈 우주선은 약 38층 높이이며, 지금까지 만들어진 우주선 중 가장 강력할 것이다. 화성 땅을 밟은 첫 지구인은 보잉 우주선을 타고 갈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 ‘10대 성장 시장’ 중 하나

―보호무역주의를 지지하는 듯한 트럼프 정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와 기업 간 대화가 열려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기업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최근 미국의 법인세 개혁은 아주 큰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미래에 투자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국에 R&D 센터를 설립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보잉은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미래 기술과 인력에 투자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10대 성장 시장’을 선별했는데, 한국이 그중 하나다. 시장 성장세와 고객, 기술이 모두 강한 시장이 투자 대상인데, 한국은 그 교차점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시장이다. 한국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다. 한국의 R&D 센터는 자율비행, 인공지능, 항공전자공학, 스마트 팩토리 등의 연구에 주력할 계획이다. 보잉은 1950년부터 한국과 협력해왔다. 이 관계를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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