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기업의 이기적 동기를 세련되게 바꾸라, 조직 에너지가 분출할 것이다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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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4.07 03:00

      '이기적 유전자'로 본 기업 생태계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는 이기적 선택, 이타적 행동, 협력, 배신 등 다양한 생물 행동에 유전자적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그 궁극적 목표는 유전자 복제를 통한 생존과 번식이다. 이를 기업에 적용한다면 생존과 성장이다. 유전적 본능은 하나로 압축되지만 외양·습성이 생물마다 다른 것처럼, 기업도 창업자가 어떤 가치관을 갖느냐, 기술적 토대는 어디 있느냐에 따라 성장해가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HP웨이, 도요타웨이, 애플웨이, 삼성웨이 등으로 기업 경영 전략이 차별화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타적 행동은 이기적 선택의 결과

      유전자는 생존·번식을 위해 개체에게 이기적 본능을 프로그래밍한다. 행복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게 아니라 생존 기회를 높이는 가능성이다. 행복하면 오래 살기 때문이다. 이타적 행동도 실제론 이기적 선택의 연장선상에 있다. 예컨대 일벌들이 침입자를 공격하고 죽는 행위는 이타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여왕벌을 보호하여 자신의 유전자 복제 가능성을 높이려는 동기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유전자의 이기적 선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이타적 행동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호주는 원래 영국 정부가 중죄인 유형지로 활용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들을 배로 실어나르는 과정에서 오랜 항해를 견디지 못해 죄수들이 대거 숨지는 문제가 골칫거리였다. 1790년부터 3년간 죄수 4082명 중 498명(12%)이 항해 도중 숨졌다. 고민 끝에 선장에게 지급하는 운송비를 '죄수 1인당'에서 '살아서 도착한 죄수 1인당'으로 바꾸자 선장들이 죄수 건강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망자가 줄기 시작했다. 1793년엔 호송 죄수 422명 중 사망자는 1명으로 줄었다. 이기심을 인센티브 구조로 제도화하여 이타심을 이끌어내자 선한 결과가 창출된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위) 옥스퍼드 뉴칼리지 명예교수와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개정판 표지(아래).
      ‘이기적 유전자’를 쓴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위) 옥스퍼드 뉴칼리지 명예교수와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개정판 표지(아래)./조선일보DB
      기업도 이기적 동기를 합리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조직 전체 에너지가 분출한다. 인센티브 없이 추상적 이타심만 강조하면 현실과 괴리를 겪는다. 최근 주목받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다르지 않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 사회적 책임만 강조하다 손실이 누적되면 버티지 못한다. 이익 창출은 필수조건이고 사회적 책임 등은 부가 요소다. 사회적 책임 활동은 결국 고객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관계를 잘 이끌어 장기적인 생존력을 높이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발 한 켤레 팔 때마다 한 켤레를 기부하는 것으로 유명한 탐스(TOMS), 환경보호 기업을 표방하며 유기농·친환경 원단에 하도급 업체 복지까지 살피는 의류업체 파타고니아 등도 이기적 동기를 세련된 방식으로 변주한 회사라는 얘기다.

      집단을 이루어 생존성을 높인다

      개체들은 다양한 집단구조를 형성한다. 집단은 통상 같은 종으로 이뤄지지만 예외도 있다. 얼룩말은 종종 누와 무리를 짓고 새들도 혼합 무리를 짓는다. 그래야 전체 이익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하이에나는 무리를 지어 사냥한다. 그래야 더 많은 먹이를 잡을 수 있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집단 규모는 임의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환경과 개체 특성에 따라 최적으로 설정된다. 무리가 커질수록 안전하지만, 대신 이동이 번거롭고 넉넉한 식량 확보가 어렵다. 무리가 작으면 피습 위험성은 높아지지만 유연성이 커진다. 무리의 크기는 위계질서, 의사소통 등 요인에 주변 환경과 개체 특성이 반영되어 적정 규모가 형성되고 본능적으로 유지된다.

      인간 집단 크기는 '던바의 숫자'가 유명하다. 집단이 커질수록 갈등이 늘고 권력 투쟁도 심화된다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인간 집단 최적 규모가 150명이라는 이론이다. 실제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산업혁명 전까지 영국 농촌 표준 집단 규모는 150명이었다. 로마군단 기초 단위인 백인대(켄투리아)는 120명, 현대 육군 중대 병력도 120명 내외다. 수백만 년 동안 축적한 진화적 본능이 수만 년 역사의 문명과 제도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 창업한 교세라는 '아메바 경영'으로 유명하다.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기반으로 조직 규모를 결정하고 리더십과 의사소통을 책정한 개념이다.

      이기적 유전자
      착한 개체가 생존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폭력, 속임수, 배신, 협력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임을 펼친다. 그런데 게임이 반복되다보면 신뢰에 기반한 협력을 통해 집단 생존성을 높여주는 진화적 안정점으로 수렴해간다. 원숭이 무리가 있다. 서로 털 속 이를 잡아주면서 협력하면 생존성이 높아진다. A와 B가 서로 이를 잡아주면 협력이고, 모두 무시하면 방관이다. 만약 A가 B의 이를 잡아주었는데, B는 그대로 도망가면 배신이다. 단기적으로 배신자 B는 이익을 얻을 수 있으나 반복될 순 없다. B는 끊임없이 다른 원숭이를 찾아 배신하려 하고, A는 다른 협력자를 찾아다닌다. 이 게임이 반복되면 배신자 B는 생존 가능성이 낮아져서 후손이 줄어들고 협력자 A는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고 후손이 늘어난다. 흡혈박쥐도 먹잇감을 만나서 충분히 피를 마시는 날과 운이 나빠 굶주리는 날이 교차하는데 반복되는 게임에서 협력하여 상호이익을 확대하는 개체가 지배군이 된다.

      다만 게임에 참여하는 개체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TFT·Tit for Tat)'이다. 먼저 협력을 제안하고 상대방이 협력하면 계속 협력하고, 배신하면 단호히 응징하는 것이다. 이런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반복되면서 배신자가 줄고 협력자가 증가하는 선택을 'ESS(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로 부른다. 인간 사회도 만만하게 보이면 잡아먹히고, 마음만 좋으면 배신당한다. 이러한 게임에서 배신자에게는 채찍, 협력자에게는 당근을 주는 방식이 상호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점점 중요해지는 문화적 DNA

      고등동물로 진화하면 학습과 문화 전달 패턴이 생겨난다. 어떤 원숭이가 흙 묻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는 혁신적 방법을 터득하면 학습을 통해 무리 전체로 전파된다. 인간은 유전되는 DNA의 생물학적 특성과 더불어 문화적 DNA '밈(Meme)'도 갖추게 된다. 밈은 도킨스가 만든 신조어이다. 밈은 언어·텍스트 등을 매개체로 사회적 관계를 통하여 복제되고 전파된다. 밈의 영향으로 인간은 언어·문화·세계관·종교가 다르면 행동양식과 지적 역량에서 차이가 난다. 빌 게이츠와 부시맨은 큰 격차가 있다. 이는 생물학적·육체적 능력이 아니라 문화적·지적 능력에서 나온다. 빌 게이츠 아이를 부시맨 가정에 입양시켜 키운다면 문화·행동 양식은 부시맨을 닮을 것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개인 간 격차는 원시시대에는 주로 선천적 육체 능력에 기인했으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후천적 문화적 요인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생물학적 유전자 변이에 따른 진화보다 문화적 유전자 진화 속도가 빠르다. 기업 발전 역사에서도 토지·노동·자본 등 유형 자산이 중심축을 이루다가 점차 기술·특허·아이디어 등 무형 자산으로 중심이 이동했다. 기업의 진화·혁신에서도 문화적 유전자 밈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용할 필요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