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세계 금리 주무르는 '경제 대통령' 트럼프 규제완화 선봉에 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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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4.07 03:00

      도드-프랭크 법안 등 규제 많이 한 오바마
      트럼프 집권하자 옐런 갈아치우며 규제 완화에 착수

      지난해 나란히 정권 교체로 취임한 한국과 미국 대통령은 올해 초 중앙은행 수장 자리를 놓고 엇갈리는 선택을 했다. 보수 정부를 무너뜨린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 적폐로 몰아세웠던 전임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다시 총재로 지명했다.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화정책의 연속성보다는 자신들의 입에 맞는 인사를 한국은행 총재에 앉혀 왔던 관례를 깬 선택이었다.

      미국은 반대 결정을 내렸다. 민주당으로부터 8년 만에 정권을 되찾아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해 미국 중앙은행 수장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을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낙점을 받은 인물이 바로 제롬 파월(65·Powell)이다.

      미 연준의 이사 임기는 무려 14년이다. 이에 비해 수장인 의장의 임기는 4년으로 짧지만, 대부분 최소 한 차례는 연임했다. 통화정책의 연속성을 중요하게 여긴 미국의 관례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가 임명했던 재닛 옐런(72·Yellen) 의장이 4년 임기를 마치자 곧바로 교체했다.

      한국과 미국은 관례를 깨고 왜 이런 반대의 길을 갔을까. 한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의 능력 등도 작용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현 정권이 집권 초기부터 남북 관계, 개헌 등에 우선순위를 매겨놓고 금융 분야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점도 (재지명에) 영향을 끼쳤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금융 규제 완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재빠르게 중앙은행 수장을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파월 의장은 규제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

      오바마의 금융 규제 풀겠다는 트럼프

      2000년대 이후 미국은 대체로 공화당 집권 시기에 금융 분야 규제를 풀었다. 반대로 민주당 집권기에는 금융회사나 금융 대출에 대한 옥죄기가 진행됐다. 가장 가깝게 금융 규제가 있었던 시기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직후다. 대형 금융회사의 욕심과 이를 방조한 금융감독기구가 위기 주범으로 거론되자, 2009년 정권을 잡은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는 금융 분야에 각종 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 영역을 분리하고, 금융회사의 자기자본을 확충토록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도드-프랭크 법안(Dodd-Frank Act)을 통과시켰다. 연방소비자보호국(CFPB)을 신설해 금융 소비자 보호를 위한 시행령을 자체적으로 만들고, 규정을 위반하는 금융회사들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10여 년이 지나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미국 경제는 높은 고용률을 기록하고,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찍는 등 호황을 맞았다. 변호사·상원의원 출신의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이 물러나고, 기업인 출신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과 동시에 각 분야에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향후 10년 동안 1조5000억달러의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안을 밀어붙였고,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70여 개의 규제를 없애는 한편 새로운 규제는 단 3개만 만들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10년간 금융회사를 조여왔던 각종 금융 규제를 풀어낼 여건을 맞은 것이다.

      민간 경험 많아 규제 완화 적임인 파월

      이런 맥락 속에서 연준 수장을 맡은 파월은 대학(프린스턴)에서는 정치학을 전공하고, 이어 로스쿨에서 법학을 전공한 인물이다. 1990년부터 3년간 미국 재무부에서 일한 적도 있다. 이후 15년 동안은 대형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에서 이사로 일하는 등 민간 금융회사에서 일하다 2012년 연준 이사로 임명됐다. 하지만 그는 연준 이사 대부분이 가진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다. 민간 영역 경험이 풍부한 그가 금융회사들이 원하는 규제 완화에는 적임자일지 몰라도,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의장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그는 2012년 연준 이사로 재직한 이후 연준의 통화량 축소나 완화 결정 당시 단 한 번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통화정책에 관한 한 자기 색깔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비중을 두거나 통화정책의 일관성을 최우선 고려 대상으로 삼았다면 4년간 무난하게 업무를 수행한 전임 옐런 의장이 더 적임자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하지만 옐런 전 의장은 지난 40년 동안 연준 의장이 연임했던 관례에서 벗어나 단임에 그쳤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을 연준 의장으로 낙점한 것은 통화정책보다는 규제 완화에 대한 고려가 더 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옐런 전 의장이 평소 금융 관련 규칙을 바꾸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의회에 요구한 반면, 파월은 월스트리트를 대변해 (의회에) 로비를 할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며 "평소 규제는 가볍게 해야 한다는 파월의 소신이 트럼프 대통령의 호감을 산 것"이라고 분석했다.

      점진적 단계적 완화 택할 듯

      하지만 파월의 앞날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게 많은 전문가의 진단이다. 규제를 제대로 완화하려면 결국 관련 법을 바꿔야 하는데, 여전히 미국에는 금융 위기를 가져온 금융회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성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파월이 규제 완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은 연준 내 규제를 담당하는 조직이나 예산, 인사 등을 통제해서 규제를 느슨하게 해주는 것 정도일 것인데, 이를 갖고 가시적인 규제 완화 효과를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 파월이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의 주택 담보대출에 가해진 규제를 완화하러 나섰다가 거센 후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에서 계량투자전략가로 일했던 양임석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대통령은 주택 관련 대출에 가해진 상당한 규제를 풀기 원할 것이고, 결국 파월은 이 규제들을 풀어내려고 각종 수단을 쓸 것"이라며 "잘되면 좋겠지만, 규제 완화로 인해 부실 대출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상당한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파월이 급격한 규제 완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취임 후 그는 예상과는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의회 정책 증언에서 금리 인상 횟수를 당초 예상보다 높일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고, 취임 행사에서는 "연준은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금융회사를 규제·감독하는 막중한 책임도 갖고 있다"며 당분간은 금융 규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외국계 투자은행 CIMB 강민구 상무는 "파월은 중립적이고 신중한 인물이기 때문에 급격하게 규제를 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맞춰 규제를 풀더라도 서서히 점진적으로 실행할 것이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