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 많았습니다… 제가 싹 바꿀게요" 골드만삭스, 12년 만에 '별종'이 맡다

입력 2018.03.24 03:07

차기 회장 놓고 투자은행·트레이딩
두 부문 COO 경합
투자은행 사장이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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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골드만삭스 회장에 내정된 데이비드 솔로몬 사장은 평일 낮에는 전문 금융인으로, 밤과 주말에는 파티에서 DJ로 활약하는 예술가로 유명하다. 지난달 13일 골드만삭스 주최의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한 솔로몬 사장이 토론 도중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모습. /블룸버그
2월 21일 골드만삭스 그룹 이사들이 속속 뉴욕 맨해튼 웨스트스트리트 200번지에 자리한 본사 건물로 들어섰다. 2006년부터 12년째 그룹을 이끌어 온 로이드 블랭크파인(Blankfein·63) 현 회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가려지는 날이었다. 그 후보는 골드만삭스 투자은행(IB) 부문을 이끄는 데이비드 솔로몬(Solomon·56) 사장 겸 공동 최고운영책임자(COO), 트레이딩 부문을 이끄는 하비 슈워츠(Schwartz·54) 사장 겸 공동 COO. 두 사람은 2016년 12월부터 공동 사장 자리에 올라 골드만삭스 그룹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여왔다.

일벌레들 속에서 여가 챙기는 '별종'

블랭크파인 회장은 이사회가 끝난 직후 결과를 밝히지 않은 채 출장길에 올랐다. 그 덕분에 20여일 동안 조용했던 월스트리트는 3월 중순 들어 들썩이기 시작했다. 12일 슈워츠 사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4월 20일 슈워츠 사장이 회사를 떠나면 솔로몬 사장이 단독 COO로 지명되고, 블랭크파인 회장이 퇴임하면 곧장 회장직을 물려받는다. 블랭크파인 회장은 연말쯤 물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골드만삭스 직원들에게 전달된 이메일의 발신자 항목엔 블랭크파인 회장과 솔로몬 사장의 이름이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

말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스타일과 단정한 정장 차림은 거액의 거래를 주선하는 월스트리트 금융인의 상징 중 하나다. 2007년 4월 어느 날. 캐나다 요가 브랜드 룰루레몬 애슬래티카의 상장 주간사 선정을 놓고 투자은행들이 맞서는 자리였다. 잔뜩 긴장한 채 앉아 있던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문 쪽으로 향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당당하게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방으로 들어선 것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룰루레몬' 브랜드 의류로 무장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들은 골드만삭스의 IB 부문을 이끄는 솔로몬 사장과 그 동료들이었다. 그는 그해 최대 규모 IPO로 기록된 룰루레몬의 상장 주간사 자리를 따냈다.

솔로몬 사장은 골드만삭스 내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타입의 '별종'으로 평가받는다. 업계 최고 수준의 업무 강도로 악명 높던 골드만삭스에서 꼬박꼬박 취미 활동을 위한 시간과 주말을 챙기고, 매년 한 차례씩은 집에서 사교 파티를 여는 여유를 잃지 않아서다. 골드만삭스 임원들의 '업무 스트레스 해소법'을 소개한 블로그 글을 보면, 솔로몬 사장은 평소 두 딸과 다양한 운동을 즐기며 매주 일요일이면 한 시간씩 요가를 함께 하며 월요일을 준비한다. 공공연하게 알려진 또 다른 취미는 EDM(일렉트로닉 댄스음악) 디제잉. 밤이면 'DJ-D.Sol'이란 예명으로 파티를 누빈다. 그러면서도 수퍼볼 경기장에서 우연히 만난 기업가와 대화하며 IPO 주간사 자리를 따낼 정도로 영업에 능하다.

6개월 전까지 이런 솔로몬 사장을 골드만삭스의 차기 회장이 될 것으로 점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와 1년 4개월 동안 치열한 경쟁을 펼친 트레이더 출신의 슈워츠 사장이 워낙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슈워츠 사장은 일본 격투기 가라데 유단자로, 매주 일요일 오후부터 출근해 일하는 것이 몸에 밴 일벌레로 유명하다. 직원 한 사람을 혼내기 전에는 48시간 동안 심사숙고할 만큼 신중한 성격이다. 블랭크파인 현 회장과 같은 트레이더 출신이라는 점도 강점으로 꼽혔다. 지난해 9월 뉴욕에서 열린 바클레이즈 글로벌 금융서비스 콘퍼런스에서 "개인대출과 온라인 은행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확장해 향후 3년 동안 매출을 50억달러, 그룹 자기자본수익률(ROE)은 30%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한 사람도 슈워츠 사장이었다.

하지만 주식·채권·외환·선물·옵션 등 트레이딩 사업부의 수익이 정점을 찍었던 2009년(약 330억달러)에 비해 6분의 1(약 53억달러) 정도로 쪼그라들 만큼 업황이 나빠진 것이 악재였다. 골드만삭스 이사진의 마음은 최근 몇 년 동안 수익이 크게 늘어난 투자은행 사업부로 기울었고, 결국 슈워츠 사장이 발표했던 '골드만삭스 개조 계획'은 경쟁자 솔로몬 사장이 달성해야 할 목표가 됐다.

개인·기업 대출 업무 늘릴 듯

솔로몬 사장이 이끄는 골드만삭스는 트레이딩 부문을 핵심으로 성장해 온 과거의 색채를 벗고 다양한 신사업, 특히 상업은행 부문을 강화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시작한 개인·소규모 기업 대상 온라인 대출사업 '마커스', 온라인 예금 'GS뱅크' 사업 등에 박차를 가해 본격적으로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할부금융, 보험 등으로 저변을 넓힐 수 있다는 얘기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과거 콧대 높던 트레이더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만한 사업 계획들이지만, 골드만삭스의 미래는 트레이딩 거래로 맺어지는 단기적인 관계의 고객들보다 오랜 기간 신뢰를 갖고 거래하는 고객을 최대한 많이 키워나가는 데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골드만삭스의 '별종'으로 불리는 솔로몬 사장의 성품이 조직 문화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한다. 솔로몬 사장은 2013년부터 골드만삭스 주니어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도입된 '주말 보장' 시스템 도입에 앞장선 인물이다. 주말 추가 근무를 금지해 충분한 자유시간을 보장하고, 사원들에게 금융업 이외에도 흥미 있는 분야를 발굴할 시간을 주자는 취지에서다. 그는 당시 "사원들이 회사에서 꾸준히 일하고 싶게 만들고,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에 임하듯 오랜 기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히도록 회사 차원에서 노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월가에 변화 몰고올지 주목

최근 솔로몬 사장은 회사 내 여성 인력 비율 높이기에 목소리를 높여 주목받고 있다. 작년 6월에도 골드만삭스 이사회에 회사 내 여성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냈던 솔로몬 사장은 후계 구도가 확정된 지난 15일에도 블랭크파인 회장과 함께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이런 방침을 알렸다. 두 사람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 회사에서는 비슷한 성과를 내는 여성 직원들이 남성 직원과 같은 연봉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여전히 회사 전체 여성의 직급 등을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2021년까지 대졸 채용 직원의 남녀 성비를 동일하게 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 지사의 여성 인력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기준 골드만삭스 그룹의 미국 내 여성 직원비율은 전체 직원의 38%를 기록했다.

입사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골드만삭스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중에서도 핵심 은행으로 손꼽힌다.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금융업계 흐름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10여 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수장의 전략과 행동을 월스트리트와 세계 금융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솔로몬 회장 내정자는 올해 취임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함께 세계 금융계의 뉴스 메이커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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