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도탄에 빠진 건강보험 구하자" 미국판 도원결의

    • 0

    입력 2018.03.10 03:06

      [이철민의 Global Prism] (1) 베이조스·버핏·다이먼 '폭탄 선언'

      이미지 크게보기
      왼쪽부터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억만장자’라는 것 외에 공통점이 거의 없는 이 세 사람은 지난 1월 “힘을 합쳐 미국 근로자들의 의료비를 절감하겠다”고 선언했다. / 이명원 기자·AP·블룸버그

      미국 헬스케어(의료·건강관리) 산업 공룡들이 노는 '앞마당'에 테크놀로지 공룡을 앞세워 미 업계 거물 3인이 뛰어들었다. '전자상거래와 유통의 천재'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투자의 현인(賢人)'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미국 자산 규모 1위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이 3인이 지난 1월 30일 오전 "새로운 헬스케어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하자, 초대형 건강보험사들과 제약사들, 약제비(藥劑費) 관리회사들의 주식 시가총액이 이날 하루 수십억달러어치 날아갔다.

      [이철민의 Global Prism]
      이철민 선임기자
      '억만장자'라는 것 외에 이 3인은 서로 공통점도 없고, 주력 사업도 헬스케어 분야에선 한 발씩 떨어져 있다. 연합해서 뭘 어떻게 구체적으로 할지도 전혀 밝히지 않았다. 버핏은 다만 "불어나는 헬스케어 비용이 굶주린 촌충처럼 미국 경제를 삼키고 있다"고만 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7.9%(2016년)나 차지하는 헬스케어 비용을 '3인 연합'의 타깃으로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인 2월 26일 버핏은 미국 CNBC 방송 인터뷰에서 "1년 내에 새 회사의 대표를 뽑고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겠다"며 "(헬스케어 비용을) 그저 (전년 대비) 3~4%포인트 깎는 것은 쉬운 일이고, 그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세 사람이 어떻게 헬스케어 '공략'에 의기투합했는지도 이날 소개됐다. 버핏은 "해서웨이의 투자전략가인 타드 캄스와 의료비 상승이 미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얘기했는데, 마침 캄스가 JP모건체이스의 이사여서 다이먼과도 이런 우려를 나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베이조스는 작년 10월 미국 12개 주에서 의약품 유통 허가를 받으면서 헬스케어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다. 세 기업의 실무진은 작년 하반기 수시로 만나 미 헬스케어 현황과 문제점들을 짚었다고 한다.

      '가성비' 형편없는 미국 의료비

      [이철민의 Global Prism]
      미국의 헬스케어 비용이 어떠하길래, '굶주린 촌충'에 비유되는 걸까. 미국 정부와 기업, 개인은 2016년에 3조3000억달러(약 3573조원)를 이 분야에 쏟아부었다. 2026년에 이 비용은 5조7000억달러로, GDP의 19.7%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1인당 1만348달러(약 1120만원)를 쓴 셈인데, 이런 GDP 비중은 스위스(12.4%)·일본(10.9%)·한국(7.7%) 등 다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과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미국인의 기대수명은 78.8세로, 한국(82.1세)은 물론 OECD 35개국 평균(80.6세)보다도 낮다. 미국의 살인율은 다른 나라보다 높지 않다. 결국 헬스케어 '가성비'가 형편없다는 얘기다.

      미 기업들엔 이 고(高)비용이 특히 부담스럽다. 미국은 65세 이상 인구에 적용되는 연방정부의 '메디케어'나 영세민·아동에 적용되는 주 정부의 '메디케이드' 등을 빼면, 전 국민에게 적용하는 공적 보험제도가 없다. 따라서 기업마다 민간 건강보험사와 계약을 하거나, 대기업들은 자가(自家)보험으로 보험료의 70%를 적립한다. 미국인 중 1억5100만명이 이런 직장 보험에 들어 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기업들이 근로자 1인을 위해 적립하는 가족 보험료가 2007년 8824달러에서 작년엔 1만3049달러로 치솟았다. 그러고도 작년 말 현재 전체 성인의 12.2%는 경제적 형편 탓에 '무(無)보험자'이다.

      베이조스·버핏·다이먼 '3인 연합'은 미 기업을 위기로 몰고 있는 헬스케어 비용의 난제(難題)를 풀어서, 그 해답을 기업과 대중에게 알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3인이 '새 헬스케어 회사'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 제목은 "베이조스씨, 헬스케어 정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였다. 그만큼 미국 헬스케어 업계의 기득권을 쥔 거대 기업들이 서로 뒷거래와 리베이트를 통해 외부의 '교란'을 막아내며 똬리를 틀고 있다는 얘기다.

      '처방약' 개선부터 시작할 듯

      [이철민의 Global Prism]
      미 언론과 금융가에선 이들 3인이 우선 헬스케어 비용의 10%(3286억달러)를 차지하는 '처방 약(prescription drugs)' 시장을 시작으로 해결책을 찾아 나설 것으로 본다. 처방약 시장은 2014년과 2015년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비용과 C형 간염 특허약의 폭등으로 인해 전년 대비 12.4%, 8.9%씩 뛰었다. 일반 대중에겐 병원 입원 치료(전체 시장의 32%)나 병·의원 외래진료(20%) 서비스도 불만스럽지만, 고가의 처방약은 '약가(藥價) 산정' 과정이 매우 불투명해 미국인이 매우 불신하는 시장이다.

      미 제약사들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신약 개발을 주도하지만 그만큼 약값도 비싸다. 또 의사가 값비싼 '특허약(brand-name drug)'을 처방해도, 웬만한 지식이 없는 환자는 이 약 외에 저렴한 '복제약(generic)'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같은 약이라도 약국마다, 환자가 가입한 보험 계약에 따라 가격이 제각각이다.

      이는 미국의 경우, 약값 산정이나 본인 부담 비율을 정부가 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약제비 관리회사(PBM·pharmacy benefit management)'다. 처방 의약품이 갈수록 고가(高價)·전문·다양화하자, 보험사나 자가보험 기업들엔 약제의 적정성과 가격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PBM의 도움이 필수적이 됐다. PBM은 보험사·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제약사·대형 약국 체인과 가격을 협상하지만, 또 제약사로부터는 리베이트를 받는다. 계약을 맺은 보험사가 많은 PBM일수록 '구매력'을 무기로 제약사와의 약값 흥정에서 유리한 것은 물론이다. 실제로 미국 보험 가입자의 73%가 CVS와 익스프레스 스크립츠(Express Scripts) 같은 3대 PBM의 서비스를 받는다.

      PBM이 약값 상승을 억제해 온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대형 PBM은 각기 처방의약품 권장목록을 정한다. 제약사로서는 거액의 리베이트를 주고라도, 자사의 값비싼 특허약이 이 의약품 목록에 들어가길 원한다. PBM은 미 정부기구의 엄격한 평가를 받지만, 이익을 극대화할 '유혹'에 늘 노출돼 있다.

      2016년 한 컨설팅 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제약사가 '표시 가격' 300달러짜리 약을 내놓아도 PBM의 협상을 거쳐 보험사와 환자가 내는 약값은 220달러였다. 그런데 제약사가 받는 돈은 137달러였다. PBM(18달러)·약국(16달러)·의약품 도매상(3달러) 등 수많은 중개인이 끼어들기 때문이었다. 제약사는 '깎일 것을 예상해서' 처음부터 표시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여 부르면 된다.

      그래서 이미 일부 기업은 연합해 규모의 경제를 이뤄, 직접 병원 및 제약회사와 협상한다. 2016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존슨앤드존슨·IBM 등이 참여한 '의료비 개혁 연대(HTA)'는 현재 44개사·600여만명의 직원이 가입했다. 이에 비하면, 베이조스·버핏·다이먼 연합의 직원 수는 다 합쳐야 115만명에 불과하다. '구매력'을 갖출 수 없는 숫자라는 평가다.

      아마존, AI '알렉사' 이용할 가능성

      그런데도, 기존 헬스케어 공룡들이 긴장하는 것은 아마존의 가공(可恐)할 시장 교란·장악 능력과 테크놀로지 때문이다. 베이조스도 "비용을 낮추기 위한 기술적 해법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아마존은 서점·소매 유통업·클라우드 컴퓨팅·건강식품 체인 등 뛰어드는 시장마다 기존 업체들을 굴복시켰다. 시장을 장악할 때까지, 이익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작년 4분기 애플이 883억달러 매출에 201억달러의 순이익을 내는 동안, 605억달러 매출을 낸 아마존의 순이익은 간신히 10억달러를 넘겼다. 그것도 트럼프 정부의 세금 감면 혜택(7억8900만달러) 덕분이었다.

      아마존은 일단 약값을 내리기 위한 PBM 사업과 의약품 배달 서비스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의사에게 받은 처방전을 인공지능(AI) 비서인 '알렉사'에게 불러주면, 1~2일 뒤 의약품이 드론이나 트럭으로 배달된다는 얘기다. 또 아마존이 지금까지 보여준 빅데이터 활용 능력을 무기로, 권장 의약품 리스트 관리 등 헬스케어에서 어떠한 부가가치를 창출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버핏은 CNBC 인터뷰에서 "우리 3인은 '완벽한 파트너십'을 이루고 있다"면서도 "기적을 기대하지는 말라"고 말을 아꼈다.

      [키워드로 본 美 건강보험]

      메디케어(Medicare)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를 표방하며, 공적(公的) 건강보험 제도를 시작했다. 이 중 연방 정부가 65세 이상 인구와 일부 장애를 지닌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보험이 메디케어다. 평균적으로 의료비의 절반을 보험이 지급하며, 전체 헬스케어 비용 중 민간 보험(34%)에 이어 둘째(20%)로 높다. 2015년 현재, 노년층 4630만명을 비롯해 5530만명이 가입했다.

      메디케이드(Medicaid)

      65세 미만의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위한 건강보험으로, 연방정부의 법령과 지침에 따라 주 정부가 운영한다. 임신부·자녀가 딸린 가정, 영아, 노령자, 장애인 등 여러 유형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되, 가족 규모에 따라 가입 자격 소득 한도를 세분했다. 미국 인구의 31%가 메디케이드(16%)와 메디케어(15%)의 혜택을 받는다.

      오바마 케어(Obama Care)

      2010년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사진>이 제정한 연방법으로, 정식 명칭은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법(ACA)'이다. 공적 보험과 민간 보험의 적용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인구의 15%)에게도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다. 젊은 층을 포함한 국민 전체를 가입 대상으로 해 보험사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의료 서비스의 폭을 넓혔다. 이후 보험 미가입자는 전체 인구의 10%로 줄었다.

      블루크로스·블루실드 협회(BCBS)

      1920년대 미국에선 기업 중심의 건강보험과 함께, 병원이 주도해 지역 내 기업들과 의료 서비스 계약을 맺는 블루크로스와, 의사들이 기업 또는 지역사회와 계약을 맺는 형태의 블루실드 보험이 시작됐다. 블루크로스와 블루실드는 1982년 합병해 BCBS가 됐다. 미국 내에는 모두 39개의 이런 보험사·기업·병원들 간 의료 서비스 연합이 존재한다.

      HMO

      HMO(Health Management Organization)는 가입자가 1차 진료 의사(내과·소아과)를 지정하고 응급 상황·출산 등의 예외적 경우가 아닌 한 1차 진료 의사를 찾아가야 하는 미국 보험 플랜 가운데 하나를 뜻한다. HMO 플랜은 의사 방문 때 일정 금액 내에선 환자 돈으로만 부담하는 공제액(deductible)이나 환자 부담액(co-pay)이 없거나 낮다.

      PPO

      PPO(Preferred Provider Organization)는보험회사와 계약이 체결된 병·의원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플랜이다. HMO든 PPO든 일단 보험회사와 연결된 병원으로 가야 한다. 물론 보험료가 가장 비싼 플랜에선 미 전역의 아무 병원에 아무 때 가도 보험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