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학업 성취도 높은 자사고, 무슨 근거로 폐지하려 하나

    •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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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3.10 03:06

      [WEEKLY BIZ Column]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정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1983년 미국 교육부가 펴낸 '위기의 국가(A Nation at Risk)'라는 교육 실태 보고서는 안팎으로 충격파를 던졌다. 미국 교육은 하향 평준화 수업, 학생에 대한 낮은 기대, 부족한 수업, 그리고 수준 낮은 교사로 인해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비판한 것. 미국은 그 전 10년 동안 19번 벌어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OECD 국가 중 7번이나 꼴찌를 기록했다. SAT(대입시험) 평균 성적은 1963년에서 1980년 사이 계속 하락했고, 17세 학생 중 13%는 실질적으로 문맹에 가까울 정도로 읽고 쓰기 능력이 엉망이었다.

      한국은 자사고… 미국은 차터스쿨

      1988년 당시 전미교원단체 앨버트 섕커(Shanker) 의장은 모든 학생이 호기일적인 방식으로 배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며, 각 학교 여건에 맞는 창의적인 교육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배경 아래 탄생한 게 '차터스쿨(charter school)'로 불리는 자율형 공립학교다. 차터스쿨은 공립학교처럼 학비·예산을 받지만 학교 운영만 사립학교처럼 자율권을 가진다. 1991년 미네소타주에서 처음으로 법이 통과된 이후 빠른 속도로 확산, 이젠 미 전역에서 7000여 개 차터스쿨에 학생 300만명이 다니고 있다.

      이후 경제학계에선 차터스쿨 연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2016년 유력 학술지 경제시각저널(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에 차터스쿨 성과를 평가하는 논문이 실렸다. 113개 차터스쿨에 대한 지난 15년 동안 연구 결과를 종합한 결과, 차터스쿨이 수학·영어 성적을 4~8% 향상시켰다는 것. 2013년 미국경제저널(American Economic Journal)에 실린 매사추세츠주 차터스쿨 연구에서도 차터스쿨은 영어·수학 성적을 20~30% 향상시켰다. 물론 일부는 일반 공립학교보다 뒤처진 곳도 있었다.

      연구자들은 차터스쿨 성패(成敗)를 가른 원인에 대해 엄격한 학교 질서, 성과에 대한 교사의 피드백, 특강 형식 맞춤형 집중 수업 등을 꼽았다. 공립학교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수업 내용이나 방식이 경직적인 반면, 차터스쿨은 자율적 운영을 통해 탄력적인 전개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아직 미국에선 차터스쿨 찬반론이 엇갈리고 있다. 이는 적어도 학생들을 더 잘 교육시키기 위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지에 대해 미국 사회가 계속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징표다.

      자사고 학업성취도 긍정 평가 많아

      차터스쿨 논란은 우리나라에선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공방으로 변형됐다. 그런데 논쟁(論爭)이라기보다는 정쟁(政爭)에 가깝다. 자사고는 2011년 처음 문을 연 이후 올해 8번째 신입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자사고는 왜 폐지해야 하나. 폐지론자들은 자사고가 경쟁을 부추기고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한다. 학교를 서열화하고 불평등과 가난의 대물림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까지 비난한다.

      우리 교육이 지나친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과잉 등 문제가 많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해결될까. 입시 경쟁과 선행학습, 사교육은 자사고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사교육은 30~40년 전에도 존재했고, 과외 금지 위헌 판결이 나온 2000년 4월 이후 오히려 급증했다. 사교육비 통계를 보면 자사고 도입 이후 사교육비가 증가했다고 볼 만한 자료는 없다. 소득 불평등과 계층 이동성 문제는 1990년대 이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는데 자사고가 관련이 있는지는 검증된 바 없다.

      2014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와 2015년 서울특별시교육연구정보원 보고서를 보면 일반고에 비해 자사고 학생 학업성취도는 25~30% 더 높았다.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학생 만족도도 높았다. 이런 효과는 처음부터 좋은 학생을 뽑아서 발생하는 '선발 효과'와 무관했다. 좋은 학생들을 뽑아서가 아니라 자사고가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있다는 얘기다.

      폐지론자들 논리적 근거 부족

      물론 모든 자사고가 다 성공한 건 아니다. 내신 상위 50% 이상 학생을 모아놓은 자사고와 일반고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긴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자사고 폐지론자들은 적어도 아직까진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감정적이고 피상적인 관찰을 통한 즉흥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잘 굴러가는 기존 제도를 없애려면 무슨 근거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자사고 폐지론자들은 학업 성취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가.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정책을 정치적 태도로 접근하면 '국가의 위기'를 낳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