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잘 나가다 밉보여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중국 부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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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3.10 03:06

      뉴욕서 호텔 인수한 자본금 1위 보험사 창업 12년만에 당국에 경영권 뺏겨
      완다·HNA·푸싱 등 정부에 찍히면 순식간에 몰락의 길… 부패 혐의 쇠고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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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 Images Bank. 그래픽=김하경
      미 복합영화관 체인 AMC와 카마이크를 잇따라 인수, 세계 최대 영화체인업체로 등극한 중국 부동산재벌 완다(萬達)는 지난해부터 보유자산을 '폭탄 세일' 중이다. 왕젠린(王健林) 완다 회장은 지난해 700억위안(약 11조9000억원) 규모의 호텔과 테마파크를 매각한 데 이어, 올 1월에도 "해외 자산 중 절반가량을 정리하겠다"고 선언했다. 과거 세 차례 중국 부호 1위에 올랐던 왕 회장은 지난해 재산이 600억위안 줄면서 5위로 밀렸다.

      2014년 뉴욕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을 인수하면서 해외 인수·합병(M&A) 시장의 총아로 떠오른 안방(安邦)보험 우샤오후이(吳小暉) 회장은 최근 불법 자금모집 혐의 등으로 기소되면서 경영권을 당국에 넘겨야 했다. 창업 12년 만에 자본금 1위, 자산 3위 중국 보험사를 일군 신화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셈이다. 중국 정부는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를 상대로 신종 보험의 일종인 유니버설 보험상품을 팔아 끌어들인 돈으로 위험이 큰 해외투자에 나서면서 기업 경영이 위태로워졌다"고 설명했다.

      왕젠린·우샤오후이 등 한때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부호(富豪) 기업인들의 부침(浮沈)이 극심하다. 그 배경에는 정경유착과 일관성 없는 중국 정부의 정책변경이 놓여 있다.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관치경제의 틀을 놓지 않고 간섭한다. 말을 듣지 않는 기업인들에게 부패 혐의를 씌워 감옥에 보낸다. 정부 지원 덕에 급성장한 기업들은 지원의 끈이 끊어지거나 정책 가이드라인이 변하면 순식간에 처지가 바뀌어 몰락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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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 세션에 참여한 왕젠린 다롄완다 회장. /블룸버그
      정부 규제에 성장 멈추고 철퇴 맞아

      항공업체인 하이항(海航·HNA)은 지난해 도이체방크의 최대주주가 되면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정반대 처지가 됐다. HNA는 작년 5월 9.92%까지 늘렸던 도이체방크 지분을 올 2월 8.8%로 줄였다. HNA는 올 상반기 1000억위안에 달하는 자산을 처분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HNA를 포함, 완다·안방보험·푸싱(復星) 등을 은행 신규대출 금지 대상으로 지목했다. 과도한 부채로 해외 투자에 나선다는 게 이유다. 이 4개사가 작년 상반기까지 5년간 해외 M&A에 들인 자금은 410억달러(약 44조원)였다.

      푸싱은 2015년 프랑스 리조트업체 클럽메드, 지난 2월 프랑스 명품 브랜드 랑방을 인수하면서 개가를 올렸다. 하지만 지난해 호주 오피스빌딩 지분 등 300억위안이 넘는 자산을 매각했다.

      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2016년 자본유출 심화로 금융시장 리스크(위험)가 커졌다고 판단한 당국이 본격 규제에 나섰기 때문이다. 관타오 중국 금융 40인 포럼 수석연구원은 "중국 기업이 해외서 자금을 조달해 투자한 경우도 국내 자산을 담보로 하고 있어서, 1997년 한국 외환위기처럼 해외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외채가 국내 부채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중국 당국이 2016년 12월 '비이성적' 해외 투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해외 투자 억제 분야를 부동산, 극장·엔터테인먼트, 스포츠클럽으로 적시한 배경이다.

      '중국의 칼 아이컨'에 비유되는 야오전화(姚振華) 바오넝(寶能) 회장은 보험 판매로 확보한 자금을 적대적 M&A에 쓰는 식으로 자산을 불렸다. 중국 부호 순위상 204위(2015년)에서 4위(2016년)로 껑충 뛰었지만 2015년 여름 중국 증시 붕괴 이후 투기자본 척결이 강화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야오 회장은 10년간 보험업 금지라는 철퇴를 맞고 지난해 부호 순위에서 14위로 떨어졌다.

      중국 정부의 이러한 정책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왕젠린 회장은 "중국 정부 가이드에 호응하겠다"면서도 "기업에 투자 자유권이 없다면 그 사회는 자유와 공정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루이(劉瑞) 인민대 경제학원 부원장은 "과다한 부채를 줄이는 건 필요하지만 급격한 축소는 되레 금융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권력투쟁에 희생

      황광위 궈메이 회장 /블룸버그
      기업인들이 정치인이나 당 간부들과 유착하는 바람에 반대파의 공격을 받고 물러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른바 권력투쟁의 희생양이라는 분석이다. HNA의 경우 왕치산(王岐山) 당 기율위원회 서기 가문과 유착했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우샤오후이 회장은 덩샤오핑(鄧小平) 외손녀 사위라는 혼맥을 이용해 태자당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궈광창(郭廣昌) 푸싱그룹 회장은 2015년 말 당국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잠시 대중 시야에서 사라졌는데 "상하이방 포위 작전의 신호탄" "장쩌민(江澤民)에 대한 압력"이란 분석이 나왔다.

      샤오젠화(肖建華) 밍톈(明天)그룹 회장은 투자회사를 만들어 중국 부호 75위(2015년)까지 올랐다가 작년 2월 홍콩에서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시 주석 견제 세력의 핵심인 장쩌민 전 주석과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과 교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 주석이 검거를 지시했다는 관측이 돌았다. 부동산 재벌 궈원구이(郭文貴) 정취안홀딩스 회장은 반부패 조사망에 걸려 2015년 미국으로 도피했다. 지난해 4월 샹쥔보(項俊波) 보험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의 낙마는 궈 회장과 연루된 탓이라고 전해졌다. 궈 회장은 "나는 권력투쟁의 희생양"이면서 HNA와 왕치산 가족 유착설을 주장했다.

      정부 보조금 줄자 우수수…

      중국은 개혁·개방 40년 동안 태양광 산업에서 중국 최고 부호 2명을 만들어냈다. 창업 5년 만에 2006년 포브스 선정 중국 최고 부호에 오른 스정룽(施正榮) 선텍 창업자와 2015년 초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 중국 부호 1위에 오른 리허쥔(李河君) 한넝(漢能) 회장이다.

      선텍은 해귀파(海歸派·해외 유학파 출신)의 창업성공 모델, 뉴욕증시 상장 1호 중국 민영기업(2005년 12월), 세계 최대 태양광 패널업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 축소, 수요 감소, 패널 가격 하락 등 악재가 겹쳐 2013년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리허쥔 회장은 지난해 재산이 전년의 4분 1인 400억위안으로 급감하면서 순위도 48위로 밀렸다. 한넝의 주가가 30분도 안 돼 47% 폭락하자 이후 1년간 거래 정지라는 암흑의 터널에 진입했다. 실적 부진으로 2015년 직원 2000명을 구조조정했고, 핵심 인재들이 이탈했다. 결국 리 회장은 2017년 9월 직무유기 등을 이유로 8년간 홍콩 상장기업 이사를 맡거나 경영에 참여할 자격을 박탈당했다.

      두 회사는 정부 보조금에 기댄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를 보여준다. 중국에선 의류와 염색업체까지 지방 정부와 손잡고 태양광 산업에 뛰어들었다. 유럽 태양광 업계는 "중국 정부가 태양광 업체들에 초저금리 대출을 해주고 갚지 못한 대출은 탕감해 주거나 상환 일자를 무기한 연기해준 탓에 공급 과잉이 심화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양광뿐 아니라 풍력발전, 로봇, 전기자동차 등 다른 중국 산업체도 보조금이 줄면 몰락하는 부호들이 잇따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