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전 부산 초량서 먹던 그 명란젓, 日 최고 식품 되다

입력 2018.03.10 03:06

日 최대 명란젓 회사 '후쿠야'의 70년 1등 비결 6가지

1913년 부산에서 태어난 일본인 가와하라 도시오(川原俊夫)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고향 후쿠오카현 하카타로 돌아갔다. 거기서 식료품 도매상을 하다가 뭔가 새 상품을 선보일 게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부산 초량시장에서 먹었던 매운 '명란 김치' 맛을 떠올렸다. 이를 '멘타이코'(명란젓의 일본 말)란 이름으로 선보였다. 1949년 1월이었다.

처음엔 홋카이도에서 소금에 절인 명란(명태의 알)을 사들인 뒤 소금기를 뺀 다음 고춧가루와 청주로 맛을 냈다. 하지만 매운 탓인지 잘 팔리지 않았다. 그래서 가와하라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다시마와 가쓰오부시, 조미료 등을 섞은 조미액에 담가 대표 상품 '아지노 명란젓(味の明太子)'을 완성했다. 10년이 걸린 역작이었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일본 최대 명란 식품 회사 후쿠야(ふくや)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일본 TV를 통해 '매콤한 명란젓'이란 연속극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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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명란젓 아이스크림. ‘맛으로 외길’이란 구호를 담은 명란젓 요리 광고. 명란젓 선물 세트를 든 직원. 명란젓 위에 소스를 뿌리는 모습.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가와하라 마사타카 후쿠야 회장. 튜브형 명란젓. 후쿠야 명란젓 생산 공장 내부. / 후쿠야

①초기에 제조법 공개해 시장 키워

후쿠야 명란젓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카타 명물로 떠올랐다. 1975년 신칸센 개통으로 도쿄와 하카타 직통선이 생기면서 전국 명물로까지 발돋움했다. 1976년 8억9900만엔이었던 회사 매출액은 1986년 80억엔으로 급증했다. 전국에서 주문이 쇄도하자 항공 배송도 도입했다. 현재 후쿠야는 일본 전역에 42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출액은 149억엔(약 1518억원)에 달한다. 후쿠야를 중심으로 후쿠오카는 명란젓 본산으로 탈바꿈했다.

후쿠오카에만 명란젓 회사가 150여 개 활동하고 있다. 그 저변에는 명란젓 제조법을 특허로 묶지 않고 공개한 창업자 신념이 작용했다. 가와하라는 "제조 특허를 취득해 어디에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명란이 전국적으로 사랑받게 됐을까"라고 말했다. 일본 시장 조사 기관에 따르면 명란젓 일본 국내 생산량은 2만9000t, 시장 규모는 1300억엔에 이른다.

②신선도 유지 위해 직영 고집

후쿠야는 명란젓에 대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판매를 고집한다. 공장도 후쿠오카 시내 한 곳뿐이다. 수산물의 생명인 신선도 유지 때문이다. 홋카이도에서 잡은 명태의 알을 소금으로 절이고 후쿠야만의 고유 조미액과 고춧가루를 가미해 후쿠야 명란젓을 만들어낸다. 하루 명란 8만개가 소요된다. 명태는 직원들이 직접 보고 상태가 좋은 것만 고른다. 조미액과 고춧가루 배합 비율이 맛의 핵심인데 후쿠야가 공개하지 않는 비법이다. 다만 조미액 배합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준다. 최근 저염도 식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자 염도를 12%에서 4%대로 낮췄다. 색깔을 빨간색에서 무색으로 바꾼 명란젓도 있다. 매년 12월 소비자 대상 설문조사를 거쳐 이듬해 2월 맛을 조절한 시제품을 만든다.

③매년 시제품 20종 이상 출시

명란젓은 "일본 주부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조리법을 갖고 있다"고 할 정도로 저변이 넓다. 그러다 보니 이들 입맛을 충족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맛을 개발해야 한다. 후쿠야는 매년 새로운 시제품을 20종류 이상 만들고 있다.

360g에 3240엔(약 3만3000원)인 '아지노 명란젓'은 함께 들어가는 특수 소스로 매운맛을 조절할 수 있다. 명란 과자 '멘타이센베'와 각종 명란 칩 등도 꾸준히 팔린다. 명란젓 유통기한을 대폭 늘린 통조림 제품 '멘츠나칸칸'은 상온에서 3년 보존이 가능, 매년 250만개가 팔린다. 이 밖에도 염도를 줄인 명란젓, 일본식 전골 나베용 명란, 각종 염장 식품, 만능 조미료와 면류, 술안주, 명란을 활용한 각종 과자와 차 등 13개 범주에서 다양한 제품 군단을 선보이고 있다. 유자와 참기름, 올리브 등 10가지 맛이 짜는 순간 퍼지는 튜브형 명란젓은 3년 전 시판 이후 78만개가 팔렸다. 겉보기엔 보통 명란젓과 똑같은데 카레 맛이 나는 명란젓도 독특한 신제품이다.

④우동·스파게티 업체와 협업

후쿠야는 인기 빵집이나 대기업 외식 체인과 꾸준히 협업하면서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외식 업체 '웨스트'와 함께 우동에 명란을 넣은 '명란카마우동'을 개발했고, 스파게티 레스토랑 '삐에트로'와도 공동 메뉴를 작업했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관광 명소 다자이후점에 최초로 각종 명란젓 관련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도 마련했다. 밥에 명란을 올리고 특제 소스인 '후구다시(복어로 맛을 낸 국물 소스)'를 얹어 내놓는 756엔(약 7700원)짜리 '명란젓 오차즈케 세트' 등이 인기를 끌며 하루 매출이 최고 90만엔에 이른다. 후쿠오카 공장을 재단장해 마련한 하카타 음식·문화 박물관 하쿠하쿠도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⑤백화점 진출 등 판매망 다양화

명란젓은 아직도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긴 하지만 추세는 주춤하고 있다. 일본 가계 조사 연보에 따르면 명란 제품 연간 소비액이 2002년 2950억엔에서 2016년에는 1860억엔으로 15년간 63.1% 감소했다. 하지만 후쿠야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창업 이후 매출이 주춤한 적은 있었지만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후쿠야가 위축되는 시장 속에서도 계속 1등을 유지하며 흑자를 이어간 것은 시대 흐름에 따라 판매 기법을 바꿔가며 소비자 접점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후쿠야는 20년 전부터 유지한 소비자 직판에 더해 최근에는 백화점 안에 직영점을 설립했다. 본사에 대형 식료품점을 열어 지역 특색이 담긴 식재료를 발굴하고 전국 특산물도 모아 전파하고 있다. 오프라인 점포뿐 아니라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 판매하는 전략도 쓰고 있다. 덕분에 가정용·선물용 고급 식재료였던 명란젓을 젊은 소비자들도 더 간편하고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후쿠야
⑥순이익 20% 지역사회 환원

후쿠야 사원들은 직위와 상관없이 모두 '후쿠야 수첩'을 지니고 다닌다. 여기엔 '강한 회사 좋은 회사'란 경영 이념이 적혀 있다. '강한 회사'는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대명제를 뜻하며 '좋은 회사'는 그 이익을 지역사회에 일부 환원하는 걸 말한다. 후쿠야 내에는 '그물코 커뮤니케이션실'이란 부서가 있어 다양한 지역 문화·스포츠 행사를 후원하거나 돕는다. 연 순이익 중 20%를 이런 사회 환원에 돌리는 게 전통이다. 사원이 지역 봉사 활동에 참가하면 수당(약 5만원)을 지급하기도 한다.

가와하라 창업자는 납세 의무에 엄격한 걸로도 유명하다. 1979년 관할 세무서 고액 납세자 1위에 올랐는데 법인화하기 전이었다. 은행 지점장이었던 형이 "법인화해야 세금도 절약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자 그는 "도로와 교각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 전부 세금이지 않나"라며 납세의 중요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오히려 강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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