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KKLY BIZ] "스타벅스는 '이탈리아니타' 아니다" 명품 커피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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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2.24 03:06

      커피의 기본 에스프레소의 탄생지
      '세가프레도' 판매 하루 5000만잔… 스타벅스보다 많아
      하와이 커피 농장 등 M&A 통해 세계 진출


      파스칼 헤리티에 세가프레도자네티 최고경영자(CEO)가 자사 카페에서 사용하는 에스프레소 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보이고 있다.
      파스칼 헤리티에 세가프레도자네티 최고경영자(CEO)가 자사 카페에서 사용하는 에스프레소 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보이고 있다. /김지호 기자
      '커피의 원조'를 자처하는 이탈리아는 유럽 주요국 중 스타벅스가 진출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지금의 스타벅스를 만든 아이디어들을 이탈리아 여행에서 얻어온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의 오랜 염원이 이탈리아 진출일 정도였다.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커피 메뉴인 아메리카노는 이탈리아어로 '미국식 커피(Caffe Americano)'란 뜻.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 파병된 미군들이 커피 양은 늘리고 맛은 부드럽게 하기 위해 진한 이탈리아식 커피인 에스프레소를 뜨거운 물로 희석한 게 시초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탈리아인들은 여전히 작은 잔에 담긴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홀짝인다.

      커피에 관해서라면 콧대 높은 이탈리아의 문을 스타벅스가 마침내 열어젖혔다. 올해 밀라노에 이탈리아 1호점을 연다. 이탈리아 커피업계의 반응은 어떨까. 원두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5대 커피 기업이자 유럽 1위인 이탈리아 세가프레도자네티(Segafredo Zanetti)의 파스칼 헤리티에(Heritier·50) 최고경영자(CEO)를 서울 삼청동 세가프레도 매장에서 만났다. 스타벅스에 대응할 전략이 무엇인지 묻자, "스타벅스를 경쟁자로 보지 않는다"는 예상 밖 답변이 돌아왔다.

      '이탈리아다움'을 판다

      "우리 고객은 스타벅스엔 가지 않습니다. (간편한 테이크아웃 중심인) 스타벅스가 미국식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한다면, 세가프레도는 이탈리아니타(italianita), 즉 '이탈리아다움'과 진짜배기 이탈리아 커피를 팝니다. 이탈리아는 커피의 기본인 에스프레소가 탄생한 나라예요. 모든 커피 체인점이 에스프레소를 활용해 음료를 만듭니다. 우리의 진정한 경쟁자는 라바차나 일리처럼 '이탈리아다움'을 파는 이탈리아 커피 기업들이에요. 스타벅스의 경쟁 상대는 미국의 던킨도너츠죠."

      헤리티에 CEO는 모기업인 마시모자네티베버리지그룹(MZBG)의 최고운영책임자(COO)도 겸하고 있다. 창업자인 마시모 자네티(Zanetti·70)는 회장 겸 그룹 CEO를 맡고 있다. 이탈리아 식품 대기업인 MZBG가 세가프레도란 브랜드로 판매하는 커피 원두는 연간 12만5000t. 일일 커피 판매량으로 환산하면 5000만잔에 달한다. 스타벅스(1100만~2000만잔)보다 훨씬 많다. 세계 각국 커피 판매점에 재료인 원두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헤리티에 CEO는 "일리나 라바차는 여러 가문이 합작해 세운 커피 기업이지만, 우리는 창업자가 지분을 100% 소유한 가족 기업 형태로 성장해왔다"며 "그룹명과 커피 브랜드에 본인의 이름을 내건 이유는 그만큼 품질에 자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MZBG가 1988년 원두 브랜드 이름을 내걸고 시작한 카페 사업의 지향점도 친교와 문화생활의 공간인 이탈리아 전통 커피하우스다. 1720년 문을 열어 현재도 영업 중인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카페인 '카페 플로리안'을 모델로 삼았다.

      M&A로 해외 진출·수직 계열화

      세가프레도 자네티 vs 스타벅스
      "인수·합병(M&A)은 그룹 DNA의 일부입니다." 실제로 세가프레도의 성장기는 그룹의 M&A 역사와 촘촘히 얽혀 있다. 자네티 회장은 1976년, 커피 전문점용 에스프레소 기계와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인 산마르코를 샀다. 지금의 MZBG와 세가프레도의 주춧돌을 놓은 인수 건이었다.

      헤리티에 CEO는 "이탈리아 커피 로스팅 업체가 커피 기계 업체를 산 첫 사례였는데, 당시엔 모두가 마시모에게 미쳤다고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라바차 같은 경쟁 원두업체와 스타벅스까지 MZBG의 고객"이라며 웃었다.

      세가프레도의 해외 진출 전략 역시 현지 업체 M&A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1991년 네덜란드의 커피 브랜드 틱탁, 1997년 세계 최대 커피 생산지인 브라질의 원두가공업체 카페노바수이사를 각각 인수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프랑스의 카페코르시카, 핀란드의 커피·향신료업체인 메이라, 폴란드의 카페맥 등을 줄줄이 인수했다. 미국 보스턴에 설립된 커피업체 체이스앤드샌본을 2005년 인수하면서 북미 진출의 신호탄도 쏘아 올렸다. 그 덕분에 현재 그룹 매출의 90%가 해외 시장에서 나온다.

      세가프레도는 M&A를 통해 커피 사업의 전 과정을 수직 계열화했다. 지난 2011년 '코나 커피'의 산지로 유명한 미국 하와이의 카우아이커피를 사들여, 커피 농장을 운영한다. 헤리티에 CEO는 "커피 열매를 키우는 것부터 원두 가공과 로스팅, 유통, 커피 제조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하는 커피업체는 전 세계에서 세가프레도가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로스팅 공장을 한두 곳 운영하는 여느 커피 업체들과 달리, 세가프레도는 이탈리아를 포함해 프랑스, 핀란드, 미국 등 전 세계 20여 공장에서 원두를 볶는다. 현지인의 취향을 반영한 방식으로 더 신선한 원두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이 같은 수직 통합 구조가 비용 면에서는 불리하지 않으냐는 질문에도 헤리티에 CEO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1㎏짜리 커피콩 한 봉지의 원가에서 생두 비용이 80%를 차지합니다. 수직 계열화를 통해 생두 비용을 제외한 생산·가공에 드는 비용을 최소한으로 낮췄습니다. 더구나 세가프레도는 에스프레소 기계도 자체 생산합니다. 커피 생산·판매와 관련의 일련의 과정을 그룹 내에서 모두 소화하는 것이죠. 네슬레나 일리, 라바차 같은 대형 커피 업체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입니다."

      한국 등 아시아 시장 적극 공략

      가족 기업이던 MZBG는 지난 2015년 이탈리아 증권시장에서 기업공개(IPO)를 단행했다. 아직 현역이던 자네티 회장은 창업자인 자신이 살아 있을 때 경영 승계가 이뤄져야 그룹의 장기적인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고 판단, 2009년부터 다양한 방식을 고려한 끝에 공모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결정했다.

      마시모자네티베버리지그룹(MZBG)

      헤리티에 CEO는 "이전에는 자네티 회장이 그룹의 유일한 최종 결정권자였지만, 지금은 나를 포함한 최고경영진 8명이 자네티 회장과 함께 결정을 내린다"며 "최고경영진 절반은 이탈리아인, 나머지 절반은 외국인 임원들"이라고 설명했다. 헤리티에 CEO는 스위스 출신이다.

      MZBG와 세가프레도의 새로운 목표는 커피 소비량이 급증하는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2014년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에 기반을 둔 본카페를 인수했다. 헤리티에 CEO는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 같은 신생 산업에서는 스타트업이라도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단기간에 수배로 성장할 수 있지만, 수 세기 동안 성장해 성숙기에 접어든 커피 산업에선 사세를 확장하려면 M&A가 필수"라고 말했다. 카페 운영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레스토랑과 호텔을 대상으로도 원두 판매망을 늘리고 있다.

      한국에선 YG엔터테인먼트와 합작해 2015년 서울 잠실에 첫 세가프레도 매장을 냈다. 아시아에서 K팝 등 한류의 영향력을 감안해 협력사를 선정했다고 헤리티에 CEO는 설명했다. "포화 상태라고 하는 한국 커피 시장도 해마다 2%씩 성장 중이고, 아시아 시장 전체 평균 성장률은 연 6%에 달합니다. 연평균 1%도 안 되는 유럽 커피 시장과 비교하면 성장 잠재력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