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에 숨어있는 복병 다섯… 한국은 과연 안전한가

입력 2018.02.24 03:06

[Cover Story]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현재를 진단한다

복병

1. 세계 금리 인상

지난해부터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속속 올리고 있다. 이달 초 나온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올해 1월 사이 정책금리를 올린 곳은 한국, 미국, 영국, 캐나다, 체코, 멕시코 등 6곳이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지난해 3차례 금리를 인상했는데, 올해도 3~4차례가량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도 작년 11월 정책금리를 0.25%에서 0.50%로 0.25%포인트 올렸다. 2007년 7월 이후 첫 인상이다. 체코와 멕시코, 캐나다 중앙은행도 정책금리를 각각 0.25%포인트씩 올렸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11월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는 판단에 따라 6년 5개월 만에 1.25%이던 기준금리를 1.50%로 올렸다.

일반적으로 금리 인상이 시작되는 시기에는 경기가 호황이기 때문에 당장 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한금융투자 양기인 리서치센터장은 "금리 상승 초기는 현 경제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에 주가는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하지만 금리 인상이 계속되면, 각국의 경제 위축은 불가피하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 금리가 올라가면서, 기업의 자금줄이 막힌다. 가계·기업·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의 빚이 늘어나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 앤 페티포 영국 거시경제정책연구소 공동소장은 "지난 10년 동안 기업과 가계의 부채가 많이 늘어났는데, 이는 약한 세계경제에 위협"이라며 "특히 상대적으로 부채가 많은 일본과 이탈리아가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은 신흥국 경제에도 타격을 입힐 우려가 크다. 저금리 시대에 브라질과 터키 등 신흥국의 높은 이자를 쫓아다녔던 자금이 다시 미국 등 선진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리처드 쿠퍼 하버드대 교수는 "금리 인상의 여파로 각국의 부채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경우 세계적으로 경기가 다시 침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 트럼프 정책 리스크

미국의 재정 적자가 악화되는 상황도 올해 글로벌 금융시장에 존재하는 큰 위험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의 재정수지 적자와 무역수지 적자는 미국이 오래전부터 안고 있는 문제이지만 트럼프 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미국의 재정 적자는 2012년부터 미국 GDP 규모를 넘어선 상황이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7년 3분기까지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 누적액은 20조2449억달러로, 2016년 3분기(19조5734억달러)보다 3.4% 늘었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규모 감세 정책을 내놓았다. 35%였던 법인세율을 20%로 낮추고, 개인 소득세 최고 세율도 39.6%에서 38.5%로 인하하는 내용을 담은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규모 감세안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법인세 감세 덕분에) 수많은 기업에서 거대하고 아름다운 임금 인상의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다"고 자평했다. 세금을 크게 깎으면 해외로 나갔던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오고, 더 많은 외국 기업을 미국으로 유치할 수 있다. 이는 일자리 증가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감세 폭이 너무 커 미국의 재정 적자 상황이 악화되면서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감세가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미국 재정수지가 악화되고 미국 경제성장과 주식시장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서 세계 채권 시장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

트럼프가 세계 각국을 상대로 좌충우돌식으로 벌이고 있는 무역 전쟁도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줄곧 미국 무역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충동적인 정책을 펴 왔다.

3. 유럽 국가 추가 부도

"유럽 국가 중 한 곳에서 부도가 나면 경제 위기가 다른 유럽 국가를 덮칠 수 있다. 그리스가 가장 취약하다."

딘 베이커 미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 소장은 WEEKLY BIZ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가 직면한 위험 중 하나로 유로존 국가의 후속 부도 위기를 꼽았다. 미국발 금융 위기 여파로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은 유로존 경제는 최근 회복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빚이 많은 그리스, 이탈리아 등을 중심으로 다시 위기가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공식 통계 기구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그리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80%로, EU 회원국 중 가장 높다. 2010년 시작된 재정 위기는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스가 해왔던 긴축 노력은 최근 들어서야 조금씩 효과를 보고 있기는 하다. 지난달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그리스 국가 신용등급을 'B-'에서 'B'로 한 등급 올렸다. 적자였던 재정은 2016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 그리스 정부는 오는 8월 구제금융을 졸업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하지만, EU 내에서는 올해 졸업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외신들은 "그리스가 회생 단계에 들어섰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20%를 웃돌고 경제를 이끌어갈 산업 기반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2차 부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시장에서 주시하는 또 다른 국가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경제 규모가 EU에서 셋째로 크지만, 부채가 2조3000억유로(약 3044조원)에 육박한다. GDP 대비 부채 비율도 132%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전문가들은 오는 3월 총선을 앞두고 이탈리아 주요 정당이 세금은 줄이고 복지를 늘리는 등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내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탈리아의 GDP는 약 1조9000만달러로, 10년 전보다 6% 정도 낮다. 경제 분석 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은 "선거가 이탈리아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4. 자산 시장 거품

지난 5일 미국 뉴욕 증시가 급락했다. 다우지수와 S&P 500지수가 각각 4% 넘게 내렸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도 하루 사이 3.8% 떨어졌다. 표면적으로는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날 하락은 최근 1년 넘게 상승세를 이어온 증시에 낀 거품이 언제든 꺼질 수 있다는 공포감을 일으켰고, 투자자들이 잔뜩 긴장하는 계기가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년, 세계 증시는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다. 이달 기준으로 다우지수는 금융 위기 여파로 최저점을 찍었던 2009년 2월에 비해 257%(월평균치 기준) 올랐다. 이를 두고 제프리 프랑켈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의 주식 가격과 채권 가격은 실제 경제 상황에 비해서 지나치게 높다"며 "금융시장에 위험이라곤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위험이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1990년대 말 닷컴 버블과 2008년 미국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 예측으로 명성을 얻었던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도 "최근 투자자 설문조사를 보면 '이미 고평가된 시장에서 버티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지금 증시에 거품이 가득 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사실상 현재 모든 자산에 거품이 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 예는 가상 화폐 등 투기성 자산 가격이 폭등한 것에서 목격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풀었는데, 돈을 손에 쥔 투자자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가상 화폐와 같은 불투명한 자산에까지 손을 대면서 거품이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의 딘 베이커 공동 소장은 "거품이 꺼지더라도 가상 화폐나 부실 채권처럼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자산에 투자한 규모가 크지 않아 과거 금융 위기 때처럼 위기가 크게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5. 중국 부채

눈덩이처럼 불어난 중국 부채는 세계 금융시장의 뇌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부채는 30조달러(약 3경 1700조원)에 육박한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지난 2011년 195%에서 지난해 260% 수준으로 올랐다. IMF는 "중국이 부채를 줄이지 않으면 2022년 부채 규모는 GDP의 3배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중국이 빚에 의존한 성장을 계속 추구하면 또 다른 금융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빚은 중국 정부가 2008년 금융 위기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시중에 풀면서 크게 증가했다. 중국 정부가 뒤늦게 은행 대출을 제한했지만, 중앙은행의 규제와 감독을 받지 않는 비은행 금융회사를 통한 대출이 그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상반기 중국의 비은행 금융회사 대출 규모는 GDP의 약 80%인 64조7000억위안(약 1702조원)을 기록했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과 국영기업뿐 아니라 부실기업과 재정 위기에 몰린 지방정부에도 자금이 꾸준히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IMF에 따르면 중국 기업 부채의 9%는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 16%는 철강 등 공급 과잉 분야의 기업에 각각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년간 중국 정부는 부채 억제를 주요 과제로 내세웠지만,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국영 기업과 지방정부는 차입을 늘렸다.

전문가들은 주로 선진국의 고민이었던 민간 부채 문제가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으로 옮아가면서 세계 경제가 더욱 취약해졌다고 지적한다. 영국 경제학자 앤 페티포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저축이 줄고, 민간 부채는 늘어나는 현상이 미국과 중국에서 함께 일어나고 있다"며 "기업의 갑작스러운 연쇄 디폴트(채무 불이행)는 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고, 양국 주요 은행 중 한 곳이라도 파산하면 전 세계가 타격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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