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영화 '빅쇼트' 주인공 스티브 아이스먼 펀드매니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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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2.24 03:06

      [Cover Story]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1조원 번 사나이 직격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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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주택시장 붕괴에 베팅해 성공을 거둔 스티브 아이스먼 누버거버먼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하락장에 베팅하는 건 일생에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블룸버그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는 위기를 기회 삼아 큰돈을 번 투자가를 다룬 영화다. 2000년대 초중반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기 전까지 금융시장엔 부동산 대출 관련 파생 상품이 만연했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누구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 그런데 '빅쇼트'의 주인공들은 남다른 눈으로 주택시장을 살폈다. 그들은 부실 대출에 낀 거품이 꺼져 시장에 큰 위기가 온다고 예측했고, 역(逆)으로 베팅해 성공했다. 그 주인공 중 하나가 헤지펀드 매니저 마크 바움이다. 영화 속에서 바움은 세상만사에 불만을 품고 사는 인물로,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스티브 카렐이 역할을 맡았다.

      바움의 실제 모델은 미국 자산운용사 누버거버먼의 펀드매니저 스티브 아이스먼(Eisman·55)이다. 아이스먼이 금융위기를 예건한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말 투자회사 오펜하이머의 애널리스트로 일하던 시절에도 소규모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들 위험을 경고한 보고서를 잇달아 발표해 주목받았다. 이후 모건스탠리 산하 헤지펀드 '프런트포인트'에서 일하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유명세를 탔다. 그는 2011년 프런트포인트에서 나와 직접 헤지펀드를 운영하다가 2014년부터 누버거버먼에서 일하고 있다.

      누버거버먼 본사에서 만난 그는 먼저 악수를 청하며 살짝 미소를 보였다. 영화 속 바움은 침울하지만 실제 아이스먼은 유쾌했다. 그는 "난 (바움처럼) '투덜이'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질문에 빠르게 대답했고 기억력이 비상했다. 농담도 자주 구사했다. 금융위기를 예측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선 "남들보다 많이 읽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많이 읽고 관찰했더니 위기가 보였다

      ―남들보다 먼저 위기를 예측할 수 있었던 비결은.

      "비결이라고 할 건 없고, 아주 많이 읽는다. 뭐든 가리지 않는다. 눈을 뜨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를 차례로 읽고, 다음으로 허핑턴포스트, 슬레이트와 살롱(온라인 경제·시사 매거진)을 살펴보며 새로운 소식을 살핀다. 뉴스도 수시로 체크한다. 격주로 나오는 뉴욕리뷰오브북스에서 신간을 찾고 매주 만화책도 챙긴다. 아이패드에 만화책 7500권이 저장되어 있다. 책으론 안 보고 아이패드로만 본다."

      ―보통 사람은 따라 하기 힘들 것 같다.

      "다행인 건 남보다 빨리, 매우 빨리 읽는 능력을 타고 났다. 열두 살 때부터 이렇게 읽기 시작했다. 덕분에 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사실 좀 매사에 부정적인 편인데 세상을 동화처럼 바라보는 걸 싫어한다."

      ―주택금융 시장의 위험을 어떻게 발견했나.

      "주택담보대출(모기지) 회사들은 개인에게 대출해준 뒤, 분기에 한 번꼴로 그 채권을 자산유동화회사에 팔았다. 만기가 20~30년인 장기 대출채권을 다른 금융회사로 매각해 한 번에 대출자금을 회수한 셈이다. 2004년부터 이런 방법이 일반화됐다. 30일·60일·90일 단위로 연체율을 고려해 신용도를 평가해보니 상당히 세분화된 자료가 축적됐다. 그러자 2006년부터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2006년에 시작된 대출들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여러 곳을 방문해 부동산 대출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조사해보니 확인할 수 있었다. 저신용자가 대출을 신청하고 승인받는 속도와, 그 대출채권이 자산유동화 회사를 거쳐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바뀌어 팔려나가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소득도 직업도 없는 사람이 신청하는 대출은 물론, 강아지 이름을 적어넣고 신청한 대출도 하루 만에 승인됐으니 부실 정도는 안 봐도 뻔했다."

      ―당시 그걸 깨달은 사람이 왜 적었을까.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성적으로 시장을 들여다봤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주택금융 시장에는 결함이 많았다. 그걸 무시하고 계속해서 주택대출을 일으켜 상품으로 만들고 판매한 사람들의 탐욕이 문제였다. 당시 금융회사들은 대출을 통해 자산 규모를 키우면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었다. 인센티브에 눈이 먼 매니저들은 부실 위험이 커도 이를 안 보이게 포장한 다음, 다른 곳으로 떠넘기기 바빴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당장 인센티브와 수수료는 챙길 수 있었으니. 위험을 경고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뭔 소리야, 그걸로 작년에 5000만달러를 벌었는데.'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월스트리트 최고경영자(CEO)들이 천재라 뭐든 할 수 있다고 보고 방치했다. 그는 연준 역사상 최악의 의장이었다."

      위기후 규제 강화로 금융 시스템 안정

      ―위기 이후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금융시장은 어떻게 바뀌었나.

      "다행히 금융 규제 당국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위기 전까지 금융가에서는 '규제'라는 말은 아주 생소한 개념이었다. 금융 당국 역할은 두 가지다. 첫째는 금융산업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 둘째는 소비자 피해를 막는 것. 당국자들은 두 가지 모두 관심이 없었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금융기관을 감싸려고만 했다.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2010년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금융감독을 강화한) '도드-프랭크법'이 도입되면서 금융사 규제 업무는 연준으로, 소비자 보호 업무는 신설된 금융소비자보호국(CFPB)으로 분산됐다. 이는 훌륭한 조치다. 도드-프랭크법으로 연준에 금융감독 부의장 자리가 처음 생긴 것도 의미가 있다. 연준은 이제 은행을 믿지 않는다. 그건 큰 변화다. 시티그룹을 보자. 2001년 투자금 중 차입(leverage) 비중은 22대1이었다. 2007년 이 비중은 33대1까지 치솟았다. 지금은 10대 1까지 내려갔다. 규제를 의식해 차입 의존도를 줄인 것이다. 별거 아닌 수치 같겠지만 말하자면 명왕성에서 수성 거리만큼 아득한 차이다."

      ―지금 금융시장은 안전하다고 보나.

      "문제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전처럼 시스템 문제(systemic issues)는 아니다. 최근 서브프라임 자동차 담보 대출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시스템 전체를 무너뜨릴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PE(private equity) 시장에서 거품이 좀 있긴 하지만 과도하게 차입을 일으켜 투자하는 관행이 사그라들면서 위험도 감소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2의 '빅 쇼트'는 없을 것이다. 금융기관들이 차입 규모를 전보다 대폭 줄여 수익이 덜 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솔직히 미 금융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전하다고 판단한다. 적어도 우리 세대에 그런 대규모 금융위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본다."

      금융·IT·소비재 기업에 주목

      ―요즘엔 주로 어디에 투자하나.

      "과거 이력 때문에 요즘도 하락장에 베팅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하락장에 베팅해 돈을 버는 건 평생 한 번이면 충분하다(웃음). 지금은 아마존처럼 잘나가는 기업은 매수(long)하고 변변치 못한 기업은 매도(short)하는 '롱-쇼트 전략(펀드 내 매입 자산과 매도 자산을 비슷하게 유지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일단 금융, IT, 소비재 산업이 3대 관심사다. 금융산업은 트럼프 정부에서 규제 완화 기조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이 좋아질 것으로 본다. IT 분야는 투자 관점에서 매력적이다. 금융과 비교하자면, 금융은 종목 간 상호 관련성이 높지만 IT는 서로 아무 상관없는 투자 대상 분야만 30여 개가 넘는다.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좋다. 연준이 금리를 올리는 것도 금융사엔 호재다. 투자는 결국 테마를 잘 봐야 한다. 금융에서 규제 완화, IT에서 파괴적 혁신, 이런 걸 기본 시각으로 깔고 있어야 한다."

      누버거버먼에서 아이스먼이 펀드매니저로 일하는 부서에는 '아이스먼 그룹'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스티브 아이스먼의 이름을 기린 게 아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과 매제 등 아이스먼 일가가 함께 펀드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은 일가 중 가장 늦은 2014년 이 그룹에 합류했다. 아이스먼 그룹의 투자 방향은 온 가족이 토론을 한 뒤에 결정된다.

      일치된 의견이 나올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두 사람의 의견이 항상 같으면, 둘 중 한 명만 생각을 깊이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생각이 많다. 매일 의견이 달라 다툰다. 그게 공동 노력(group effort)이고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