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미국이 15년 만에 휘두른 칼에, 한국은 영문도 모른 채 당하고 있다

    • 허윤 서강대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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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2.24 03:06

      [WEEKLY BIZ Column]

      세이프가드 발동 2003년 이후 처음
      현실과 달리가는 트럼프 통상정책 혼자 맞설 순 없어
      'TPP 11' 등 다자체제 주목해야

      미국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2016년 가을,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참모였던 피터 나바로(현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와 윌버 로스(현 상무장관)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500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 적자를 집권 후 1년이나 2년 이내에 메울 계획"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집권 후 1년, 상품과 서비스 무역 적자 폭은 전년도에 비해 12.1% 증가한 5660억달러,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2월 초 로스 상무장관은 "적자를 메울 정확한 날짜를 못 박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다"면서 말을 바꿨다.

      트럼프는 기존의 통상 정책을 뒤엎으면 무역 적자가 사라질 것으로 믿는 모양이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법인세 인하와 재정 지출 확대로 올해 미국의 무역수지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탄탄한 성장세에 이자율 인상에 따른 달러화 강세까지 겹치면 무역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대미 무역 흑자국을 아무리 때려봐야 무역수지는 결국 소득과 지출의 차이, 즉 씀씀이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중국을 정조준하는 미국

      올 1월 말 미국은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에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 조치)를 발동했다. 2003년 이후 미국에서는 세이프가드 조사조차 단 한 건도 없었다. 1994년 이후 총 6건 세이프가드를 발동했지만 WTO에서 모두 패소했기 때문이다. 최근 로스 상무장관은 한술 더 떠 철강과 알루미늄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트럼프에게 초강력 수입 규제안을 제시했다. 법적 근거는 미국의 '1962 무역확장법' 232조이다. 1962년 이후 조사 총건수는 26건이고, 이 중 실제 규제 조치로 이어진 것은 단 2건에 불과했다. 1979년 이란산 원유와 1982년 리비아산 원유에 대한 수입 금지였다.

      미국의 십자선은 중국을 정조준하고 있다. 2017년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기록적인 3752억달러였다. 트럼프는 '세이프가드'와 '안보 232조'라는 재래식 기관단총을 들고나와 중국에 십자포화를 날리고 있다. 중국의 '지재권(IPR) 탈취' '기술 이전 강요' '사이버 간첩 행위' 등을 때릴 요격기도 출격을 준비 중이다. 상호세(reciprocal tax)라는 정체불명 미사일도 날릴 태세다. 우려했던 미·중 무역 전쟁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은 미국산 대두(大豆)와 보잉 항공기 구매 취소라는 보복 작전을 준비 중이다. 작년에 중국이 수입한 미국산 대두는 139억달러. 하지만 이는 서막에 불과하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은 롯데와 현대차가 겪은 사드 보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차별적 각종 규제와 감사 그리고 반독점 조사의 표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떨고 있다. 1조2000억달러의 미국 국채를 손에 쥔 중국 정부는 미국에 가는 중국 유학생 수까지 줄일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카토 연구소의 댄 아이켄슨 박사는 "시진핑이 트럼프와 벌일 무역 전쟁을 반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부패와 환경 오염, 그리고 인터넷 검열에 중국인들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G2 무역 전쟁을 통해 시진핑은 따가운 내부 시선을 미국으로 돌릴지도 모른다. 뮬러 특검의 칼끝이 턱밑까지 다가온 트럼프 또한 11월 중간선거 승리에 올인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중국 때리기'로 재미 좀 본 트럼프는 이제 중국과 한판 무역 전쟁으로 지지층 재규합에 나섰다.

      피터슨국제연구소 채드 바운 박사는 트럼프가 1월 세이프가드 발동에 이어 오는 4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를 취한다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나라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영문도 모르는 한국이 중국과 함께 미국 관세 폭탄의 메인 타깃이 돼버린 셈이다. 서막이 오른 미·중 무역 전쟁 시대,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일본과 손잡고 G2 협상력 키워야

      우선은 일본과 획기적으로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식 압박이나 미국의 트럼프식 공세에 혼자 맞서기란 역부족이다. '자유와 인권 그리고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선진국 일본과 협력하고 공동 대응해 G2에 대한 우리의 협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빠진 'TPP 11(CPTPP)'이나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구상' 또한 '규범에 의한 다자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울러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과 안보 232조 제안, 한국산 철강·섬유·기계·화학 제품에 대한 무차별적 반덤핑 조사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도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강구했으면 좋겠다. 물론 그 최종 시행 여부는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에 달려 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은 2019년도 방위비 분담금 증액 협의 건과 연 6조~7조원에 이르는 미국산 무기 구매 등의 카드와 연계하여 큰 틀에서 전략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끝으로 '동맹'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미국에 대해 느끼는 서운함만큼 미국이 우리에게 쌓아온 아쉬움은 없었는지, '동맹국'의 의무와 예의, 그리고 예우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서로 깊이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