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슬럼화된 다운타운에 축제 인파… 쇠락한 부두 개조하자 관광객 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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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2.10 03:06

      [Cover story] City Renaissance

      도시 재생 성공 사례들

      라스베이거스 신발회사 '자포스' 유치한 후 상전벽해

      미국 서부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Las Vegas). 사막 위에 세운 도박과 향락의 도시다. 라스베이거스를 대표하는 곳은 신도심. 스트립(Strip)이라 부르는 거리다. 벨라지오, 시저스팰리스 등 라스베이거스를 대표하는 호텔과 리조트, 카지노가 몰려 있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하지만 9월 말엔 양상이 다르다. 구도심인 다운타운으로 인파가 밀려든다. 이곳에서 매년 음악·미술 축제 '라이프 이즈 뷰티풀(Life is Beautiful)'이 열리기 때문. 팝과 록, 힙합과 재즈가 어우러지는 음악 축제에 실험적인 미술 작품 전시회까지 곁들여 다운타운을 달구는 행사다. 2013년 처음 시작, 지난해 13만명 넘는 입장객을 기록했다. 축제 기간 사흘 동안 경제 효과만 1억2500만달러(약 1350억원)로 집계됐다.

      다운타운은 1930년대 네바다주에 도박이 합법화하면서 개발된 라스베이거스 초기 중심지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스트립 지역에 새로운 개발 붐이 일면서 자연스레 쇠퇴의 길을 걸었다. 오래된 카지노 호텔은 문을 닫고, 슬럼화가 급속화하면서 지구 범죄율마저 치솟았다.

      반등의 계기를 제공한 곳은 온라인 신발 회사 자포스(Zappos). 자포스는 라스베이거스 다운타운에서 사업을 시작, 지금도 본사가 다운타운에 있다. 토니 셰이 자포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2009년 아마존에 12억달러를 받고 회사를 매각하면서 확보한 자금 중 일부인 3억5000만달러(약 3800억원)를 다운타운 재건에 투입하기로 했다. 구도심에 있는 옛 시청 건물을 자포스 새 본사로 개조했고, 폐업한 카지노가 줄지어 있던 구도심 프레몬트 거리 일대 부동산을 사들여 크고 작은 레스토랑과 카페, 공유 사무실을 만들었다.

      주거 환경 개선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셰이는 미국 내에서도 의료·교육 여건이 열악한 라스베이거스 주민을 위해 병원을 세우고, 교회 건물을 학교로 개조하기도 했다. 별도로 5000만달러를 들여 만든 '더 베이거스 테크펀드'를 통해 교육 문화 사업과 스타트업 자금 지원에도 나섰다. 라스베이거스시도 관련 법을 개정하면서 이 다운타운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라이프 이즈 뷰티풀' 축제도 자포스가 후원하는 행사다.

      자포스발(發) 도시 재생이 스타트업 육성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미 전역에서 창업가와 소상공인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2013년 버려진 컨테이너를 다양한 상점과 공연장, 놀이터, 스타트업 업무 공간으로 재구성해 문을 연 '컨테이너 파크'는 이 일대 명물로 자리 잡았다. 이 컨테이너 파크는 지난 2015년 서울 광진구 건대 부근에 생긴 컨테이너 쇼핑몰 '커먼그라운드'의 원형으로 알려진 곳이다.

      숙제는 남아 있다. 2017년 기준 다운타운 프로젝트의 연간 경제 효과 추산액은 2억9200만달러에 달하지만, 그 절반이 일회성 행사에서 나온다. 그래서 도시 재생 성과가 안착하기 위해선 지역에 뿌리내린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이 더 성장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버풀 정부 개발법안에 민간이 문화공간 운영

      영국 리버풀시 중심가에서 1㎞쯤 떨어진 머지강가에 위치한 앨버트 독(Albert Dock). 부둣가에는 유모차를 끈 가족 관광객과 비틀스 관련 상품을 쇼핑백 가득 든 외국인, 푸드 트럭에서 산 감자튀김과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감상하는 연인으로 붐볐다. 영국 밴드 비틀스의 로고와 사진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부두 쪽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소시지 굽는 냄새와 흥겨운 기타 소리가 후각과 청각을 자극했다.

      앨버트 독은 리버풀의 쇠락한 낡은 부두에서 영국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로 변신한 곳이다. 앨버트 독의 흥망은 항구도시 리버풀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846년 문을 연 앨버트 독은 당시로서는 최신식 부두였다. 솜, 차, 브랜디, 설탕, 담배 등 영국의 주요 무역품이 이곳으로 드나들었다. 호시절은 길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대형 증기선이 이용하기에는 부두 시설이 작았다. 1920년대 들어서는 상선 출입이 끊겼고, 이용률이 점차 낮아져 1972년 완전히 폐쇄됐다.

      흉물 취급을 받던 앨버트 독과 주변 조선소, 창고 등 항만 시설들을 현대적으로 개조하는 머지사이드(Merseyside) 개발 사업이 시작된 때는 리버풀 경제가 진창에서 구르던 1981년. 산업 기반이 무너진 도시의 인구수는 정점의 반으로 줄었고, 실업률은 20%를 웃돌던 시기다. 경제난은 시민들을 폭도로 만들었다. 영국 정부가 머지사이드 개발 법인을 설립해 도시 재생 계획에 시동을 걸었다. 1983년 재개발 사업을 진행할 앨버트 독 컴퍼니가 설립됐다.

      정부 차원에서 마중물을 부었지만, '민간이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에 무게를 뒀기 때문에 앨버트 독 재개발 사업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머지사이드해양박물관이 1986년 앨버트 독의 창고 시설로 전시관을 확장했고, 영국 근현대미술관을 운영하는 테이트재단이 1988년 런던 외 지역으로는 처음 이곳에 테이트리버풀(Tate Liverpool)을 열었다. 리버풀 출신 록밴드인 비틀스의 박물관 비틀스스토리도 1990년 개장했다. 이후 2003년까지 앨버트 독과 인근 옛 부두시설을 재단장했다. 앨버트 독을 포함한 항만 시설은 '리버풀-해양무역도시'란 이름으로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연간 600만명 넘는 관광객이 모여드는 앨버트 독의 경제적 효과는 연 1300만파운드(2016년 기준·약 200억원), 1983년 개발 이후 경제적 누적 가치는 40억파운드로 추산된다. 관광사업 관련 일자리만 5만개 이상(2017년 기준)이다. 마이클 파킨슨 리버풀대 교수는 "앨버트 독의 건축적·역사적 자산을 보존하면서도, 이 공간을 민간이 운영하는 공공 문화·상업 복합 시설로 바꾼 점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요코하마 '미라토미라이21' 조선소 이전이 계기

      인구수 기준으로 도쿄 다음이면서 오사카를 앞선 일본 제2 도시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木黃浜). 수도 도쿄에서 남쪽으로 40여㎞ 떨어진 이곳은 19세기 일본 개항으로 번성한 무역도시였다. 20세기 들어서는 간척사업으로 확보된 토지와 공장을 기반으로 공업도시로 성장했다. 식품가공·제철·조선·자동차·기계 등이 요코하마 경제를 지탱한 주요 산업이었다.

      요코하마 역시 급성장한 수도권 도시에 잇따르는 문제들과 맞닥뜨렸다. 2차 대전 이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이 6·25전쟁 중 요코하마항(港)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도시 재정비가 늦어진 데다, 이후 일본 경제가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빠르게 베드타운(주거 기능만 있는 위성도시)으로 전락했다. 인구 급증으로 인한 주택, 교육 시설 등 사회 기반 시설 부족으로 몸살을 앓았다. 1965년 요코하마는 이 같은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자립 도시'를 목표로 6개 도시 재생 사업을 발표했지만, 사업 타당성 평가와 정부 인가, 세부 계획 수립 등 후속 절차는 10년 넘게 지지부진했다. 사그라들었던 요코하마 도시 재생 사업에 불을 댕긴 건 미쓰비시중공업이 1980년에 '미나토미라이21(みなとみらい21)'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호응해 요코하마조선소를 이전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요코하마 경제를 지탱해 온 조선·제철 등 중후장대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자 도시를 현대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던 와중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미나토미라이21'은 이전에 발표된 6대 사업 중 요코하마항 인근을 현대적으로 재단장하는 도심 기능 강화 계획을 가리킨다. 간나이(�內)·이세자키초(伊勢佐木町)지구와 요코하마역 주변 지구로 양분됐던 요코하마 도심을 하나로 연결하고, 낡은 항구 부지를 변신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붉은 벽돌 창고와 석조 부두 등 요코하마 항구의 역사가 담긴 건축물은 최대한 보존하면서, 바다 풍경과 주변 공원이 어우러지도록 환경 친화적으로 설계했다. 미나토미라이지구로 명명된 이곳에 박람회장인 파시피코요코하마를 중심으로 국제사무지구, 요코하마항구박물관과 요코하마미술관 등 문화 시설 등이 잇따라 설립됐다. 건설 관련 투자액만 1983년부터 2012년까지 2조6590억엔(약 26조4000억원)이 투입됐다. 이 도시 재생 사업은 아직 진행 중이다.

      미나토미라이21은 쇠락한 도쿄 근교 도시였던 요코하마를 경제적 기반과 문화 예술 시설을 갖춘 도시로 탈바꿈시킨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종합적으로 도시 재생의 밑그림을 그려, 뉴타운·지하철·고속도로 건설과 상하수도 시설·쓰레기 처리장 정비 등 다른 5대 사업들과 연계한 점이 성공 비결로 분석된다. 성공적인 도시 재생 효과는 늘어난 일자리와 기업 수로 나타났다. 2009년 닛산자동차 본사가 옮겨왔고, 이듬해 후지제록스 연구소가 자리를 잡았다. 2016년 기준으로 미나토미라이지구의 고용자 수는 10만3000명, 기업 수는 1760개를 기록했다.

      요하네스버그 범죄 넘친 금광도시 소상공인들이 바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는 19세기 금광 사업으로 급성장한 곳이다. 광역 기준 인구가 400만명을 넘고 요하네스버그 도심 지구(the Inner City)는 거주자 40만명, 1일 유동 인구 100만명에 달하는 시(市) 전체 경제 중심지다.

      그런데 1950년대 잇따른 정책 실패가 도심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분산 행정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시 의회를 도심 지구 밖으로 옮기고, 시내 혼잡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주차 제한 등 규제를 도입했다. 공공시설과 서비스, 교통 인프라는 개선하지 않은 채 규제가 늘자 도심에 있던 기업들이 시 외곽으로 빠지고, 도심은 높은 범죄율과 투자 부족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도심 재건 시도는 정당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번번이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전기가 마련된 건 1990년대 들어서다. 1991년 공공·민간 기업·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3자 기관을 설립, 도심 재개발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1995년 남아공이 민주화하면서 통합 분위기를 타고 정쟁이 잦아들자 요하네스버그의 도시 재생도 급물살을 탔다. 사업을 운영할 요하네스버그개발사업단(JDA)이 설립된 지 3년째인 2001년, 1차 도심 재생 사업에 착수했다. 도심 지구에 신규 투자를 유치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녹지와 보행로, 가로등 같은 기반시설을 정비하는 등 도시 기능을 강화했다. 지역 소상공인들과 협력해 범죄 근절 캠페인을 시행하고, 도시개발특구를 지정해 부동산 투자에 세제 혜택을 부여했다. 2차 사업은 2007년부터 5년 동안,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준비와 다방면에서 연계해 시행됐다.

      효과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와 기업 유치로 나타났다. 40%에 육박했던 도심 지구 부동산 공실률은 1차 사업이 마무리된 2008년 17%로 하락했다. 범죄는 사업 시행 전과 비교해 85% 감소했다. 세계은행은 민간 기업과 지역민들이 주도적으로 도시재생에 참여하고, 민간 투자 유치에 집중한 점이 요하네스버그의 최대 성공 요인이었다고 분석했다. 도심지구기업연맹과 부동산 단체 등이 참여해 경제적 이해관계를 정리했고, 거주민 대표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2000년 이후 민간 기업들이 각종 재건축 사업과 부동산 신축에 투자한 금액은 110억랜드(약 9900억원)에 달한다.

      요하네스버그의 도시재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11년 '요버그 2040(Joburg 2040)'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3차 사업은 근 30년에 걸친 장기적인 도시 계획이다. 부동산 시장 활황에 따른 부작용도 드러났다. 빈민가 거주민에 대한 이전 대책이 미흡했던 탓에 이들 상당수가 삶의 터전을 잃었고, 이 중 10% 정도가 불법적인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