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의 리더… '틈새 공격'으로 무너진 제국을 일으키다

    • 장대성 전 강릉영동대 총장

입력 2018.01.27 03:07

[장대성의 제왕경영학] <3> 발해 대조영

반신반의하는 고구려 유민들에게 당·신라 군대 힘 못미치는
"동모산 가자" 자신감 불어넣어
천혜의 요새서 게릴라 작전 현대판 '블루오션 전략'
최소자원으로 최대효과 거두는 전투도 '린 경영' 닮아


장대성 전 강릉영동대 총장
장대성 전 강릉영동대 총장

최신 경영학 연구에선 '긍정심리자본(positive psychological capital)'이란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2000년대 초 미국 네브래스카대 경영학과 프레드 루산스(Luthans) 교수가 착안한 개념으로 자신감(self-efficacy), 희망(hope), 낙관적 사고(optimism), 회복력(resiliency) 등 네 가지 요인으로 이뤄진다. 긍정심리자본으로 무장하면 실패와 좌절, 역경을 딛고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긍정심리자본이 절정에 이르렀던 인물은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 우리 역사상 가장 영토가 넓었던 발해를 창업한 대조영이다. 698년 발해를 창건한 그는 719년 사망할 때까지 발해의 기반을 구축했다. 발해는 동으로 연해주, 북은 송화강 유역과 하얼빈과 흑룡강 유역, 서는 요동반도, 남으로는 대동강과 원산만에 이르는 영토를 소유,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 시대를 열었다.

①긍정심리자본

668년 나당 연합군에 고구려가 붕괴된 후 잠시 부흥운동이 있었으나 684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고구려 유민들은 투쟁을 이어갔고, 당의 식민통치기구 안동도호부를 요서로 몰아내어 당이 실제 통제할 수 있는 옛 고구려 지역은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일부 고구려 유민은 동모산을 포함한 백두산 주변 넓은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당은 동북방 전진기지인 영주(현재 요령성 조양시)로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강제 이주시켜 착취했다. 이들의 당에 대한 적개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당시 영주에 끌려 와 있던 고구려 유민 장수 대조영 부자는 유민들이 지닌 당에 대한 적개심과, 당이 옛 고구려 지역을 통제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간파하고 세력을 모았다.

반신반의하는 유민들에게 "당의 세력이 못 미치는 백두산 주변 동모산으로 간다면 고구려를 회복할 수 있다"고 설득하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희망과 낙관적 미래를 꿈꾸게 하는 과정이 반복되자 이들은 고구려 멸망이란 절망감을 회복하고 발해라는 새 좌표를 열 수 있었다.

②틈새 공격 경영

당의 만주 지배력은 고구려 유민들의 투쟁과 670년 신라와 영토 전쟁으로 약해졌다. 이때 당의 식민통치 기구인 영주 도독 조문홰가 패악을 일삼자 거란 추장이 696년 반란을 일으켰다. 대조영 부자와 고구려 유민, 걸사비우의 말갈족도 합세했다.

당은 1년 만에 겨우 진압하긴 했으나 통제력은 약화됐다. 옛 고구려 영토였던 영주 동쪽과 남쪽에 권력 공백이 발생했다. 대조영 부자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대조영 부자는 영주 동쪽 옛 고구려 영토를 빠르게 회복해 가며 군사력이 약해진 당의 안동도호부(현재 조양시 서남쪽 대릉하 하류)에 타격을 줬다. 대조영 부친 걸걸중상과 말갈족 추장 걸사비우는 옛 고구려 영토 요동을 나누어 각각 국가를 세우고 왕이 됐다.

그러나 백두산 쪽에 건국했던 대조영 부친은 죽었고, 걸사비우는 당 토벌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지도자를 잃은 말갈족이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할 때 대조영이 이들을 받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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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은 긍정심리자본, 틈새 경영, 블루오션 전략, 린(lean) 경영 등 경영 전략을 활용해가며 난관을 극복했다. 사진은 KBS드라마‘대조영’에 나오는 장면들. / 사진=KBS, 그래픽=김현국

③블루오션 전략

대조영은 원대한 비전을 가진 뛰어난 경영전략가였다. 패망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은 군사 교육과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음은 물론 변변한 무기도 없었다. 대조영은 이런 상황에서 당시 최강인 당의 군대와 결판을 내는 전쟁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당의 군대는 물론 삼국통일을 한 신라군도 오지 못할 지역으로 가야 새로운 국가를 수월하게 창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말하자면 강한 경쟁자들이 없는 블루오션 지역을 물색한 셈이다.

블루오션 전략은 2005년 김위찬·르네 모보르뉴 교수가 처음 창안했다. "경쟁자가 없는 시장을 창출하거나 찾아내 최후 승자가 되는 전략"이다.

대조영이 고구려를 재건하기 위해 찾아낸 블루오션 지역은 고구려 유민들이 자치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백두산 북쪽 동모산이었다. 지금 중국 길림성 돈화 시에 있는 성산자산이다. 당의 지배 지역에서 멀고 서쪽은 장백산 밀림지대였다. 서북 방향은 거란과 돌궐이 장악하고 있어 성벽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긴 산맥이 있었다. 사방이 방패 지형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라 당은 물론 신라 영향력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④린(Lean) 경영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를 계승하는 국가를 창건하러 동모산으로 출발하자 말갈족 지도자 걸사비우를 죽인 당 군대가 추격해왔다. 당의 군대는 10만명이 넘는 기병대와 보병부대의 대군이었다. 그러나 대조영 군대는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것은 물론, 기병도 별로 없었고 군사훈련도 부족했다. 장비와 군량도 미흡했다. 이런 악조건에서 대조영은 게릴라식 작전을 고안했다.

첫째,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전투하기 위해 움직이기 어려운 천문령(현재 길림성 합달령) 깊은 산속 협곡으로 적 병력을 유인한다. 둘째, 적의 기병대와 보병부대를 분리해 전투력을 분산한다. 셋째, 분리된 적의 보병부대를 격멸한다. 넷째, 소수 날랜 전투병들을 곳곳에서 기습적으로 나타나게 해 수천명 군사처럼 보이게 하여 시선을 분산하는 위장술을 사용한다. 다섯째, 주력 부대는 미리 천문령 위에 가서 매복·대기하고 유인 부대가 적군을 천문령 깊은 협곡까지 쫓기면서 유인한 다음, 적군이 협곡을 빠져나올 때 매복 부대는 산 위에서 공격을 개시한다.

대조영은 이런 전술로 당의 보병부대를 궤멸했다. 그리고 게릴라 부대와 합세, 당의 기병대도 전멸시켰다. 당군 사령관 이해고는 극소수 생존 병사들과 함께 간신히 도주했다.

대조영이 쓴 전술은 린(Lean) 경영 개념에 가깝다. 린 경영은 1990년대 미 MIT대 경영대학원과 항공우주산업에서 도요타의 JIT(Just In Time·적시생산) 전략을 발전시킨 것으로 최소 자원으로 최대 가치를 산출하는 전사적 통합 개념이다.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는 궤적을 추적해 보면 이런 린 경영 전략이 곳곳에서 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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