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ustrie 4.0 韓·美·中·日 4개국 전략

입력 2018.01.27 03:07

미국 "제조업 부활" 애플도 유턴
美, 5억달러 투입 해외로 나간 기업 '리쇼어링' 운동 제조업 복권 노려

중국, 30년후 세계 1위 'IT 굴기'
'중국제조 2025' 3단계로 추진 스마트 제조업에 인터넷 결합까지

일본, 獨 넘을 '소사이어티 5.0 발표
'제조업 4.0' 독일 전략 확대해 '일본 재흥 전략'… 로봇에 승부 걸어

한국 "대응 착수" 1년새 오히려 2%p 줄어
"당장 성과 못 내" 혁신 시작한 기업들 줄줄이 포기 …미래 대비 뒷전

애플이 지난 17일 '첨단 제조업 펀드'를 조성, 50억달러(약 5조3300억원)를 미국 제조업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미국 경제가 들떴다. 이날 투자 발표는 미국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창출을 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 정책 기조에 대한 화답 성격이 강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단지 죽어가는 전통 제조업에 영양제 주사를 놓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제조업 혁신, 말하자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제조업 재편을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맡겠다는 각오가 숨어 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애플의 성공은 애플이 미국에 기반한 기업이었기에 가능했다"라면서 미국 경제 발전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뿐 아니다. 혁신성장 시대를 맞아 중국·일본 등 주요 산업 강국들은 저마다 제조업 부활에 사활을 걸고 있다. 클라우스 슈바브 세계경제포럼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건 2016년이지만, 그전부터 이들은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빅데이터·첨단 센서 등 기술 융합이 만들어내는 '신(新)제조업 시대'로 전환을 꾸준히 준비했다.

미국: 신기술 투자로 리쇼어링 유도

미국
미국은 지난 2012년부터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의 하나로 '첨단 제조 파트너십'을 추진하고 있다.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 확보와 신기술 투자에 초점을 맞췄다. 기업·정부·학계가 협력, 신기술에 투자해 생산시설을 재편하고 이를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제조업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에 역점을 뒀다. 이를 위해 오바마 행정부는 안보·첨단 소재·로봇공학·제조 공정 등 4대 분야를 선정하고, 5억달러가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리쇼어링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민간 기업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 중 하나인 사물인터넷과 클라우드 생태계 선점에 나섰다. 2014년 미국 AT&T, 시스코, GE, IBM, 인텔 등 5개 기업은 산업용 사물인터넷 독자 플랫폼을 구축하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산업인터넷 컨소시엄(IIC)을 만들었다. 현재 25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GE는 2012년 산업인터넷이라는 용어를 처음 소개하면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했다. GE가 개발한 산업인터넷 플랫폼 '프레딕스'는 공장 설비나 항공기 엔진에 센서를 부착해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개념이다.

독일 컨설팅업체 롤랜드버거는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기업,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문 인력, 활발한 민간 투자 생태계, 정부 장려책 등 혁신성장에 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반도체·자율주행차 세계 기업 육성

중국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 'CES 2018'에서 단연 돋보인 건 중국 기업들이었다. 참가 기업 3900여 곳 중 1300여 개가 중국 국적이었다. 주요 외신은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중국 가전쇼(China Electronics Show)가 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바이두·화웨이·DJI 등 주요 중국 기업은 스마트폰·TV·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화한 기술력을 선보이면서 위세를 과시했다.

이런 중국의 IT 굴기(崛起)가 무서운 건 중국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 계획을 통해 30년간 3단계에 걸쳐 세계 1위 제조 강국이 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저가 상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세계의 공장'에서 벗어나 하이테크 제조업을 중심으로 질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산업구조를 부품과 중간재를 개발해 완성품을 만드는 구조로 바꾸고 반도체·로봇·자율주행차·항공 등 10대 전략산업에서 세계 대표 기업을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스마트 제조업에 인터넷을 결합해 유통 혁신까지 이루는 '인터넷 플러스'도 국가 전략으로 채택했다. 이어 작년 7월 중국 국무원은 2030년까지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을 내놓고, 관련 산업에 6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중국 3대 인터넷 기업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는 인공지능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공지능 역량을 높여 바이두는 자율주행차, 알리바바는 스마트 도시, 텐센트는 의료·헬스 관련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일본: 로봇 혁명으로 제조업 부활

일본
제조 강국인 일본은 경쟁 우위를 지닌 로봇산업을 중심으로 혁신성장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의 산업용 로봇 출하 규모는 연간 3400억엔(약 3조3000억원),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약 50%로 세계 1위다. 누적 출하 대수를 기준으로 보면, 세계 상위 10대 로봇 기업 중 8곳이 일본 기업이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국가 성장 전략인 '일본재흥(再興) 전략'에 4차 산업혁명을 반영하고 실천 과제 중 하나로 '로봇 신전략'을 발표했다. 로봇 신전략은 로봇 보급을 확산하고, 로봇을 통해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인공지능 역량까지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로봇산업 육성 관련 프로젝트에 1000억엔(약 96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2015년 6000억엔 규모였던 시장을 2020년까지 2조4000억엔(약 24조원) 규모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

지난해 6월 일본 경제산업성은 '소사이어티 5.0'이라는 새로운 4차 산업혁명 전략을 내놓았다. 소사이어티 5.0은 독일 '제조업 4.0'을 확대한 개념으로, 고령화 등 사회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려는 노력이다.

사물과 사물, 사람과 기계, 다양한 업종 기업, 제조업자와 소비자 등이 연결된 '초연결 사회'에서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로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로봇이 아픈 환자를 간병하고, 센서로 도시를 점검해 도로 수리, 빌딩 건설 등에 로봇을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한국: 데이터·네트워크·AI 혁신 시도

한국
한국에서는 슈바브 회장이 다보스 포럼에서 4차 산업혁명 화두를 던진 2016년 이후부터 국가 차원에서의 논의가 이뤄졌다. 지난해 8월에 대통령 직속기구인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발족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2일 열린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혁신성장을 선도할 기술로 DNA(데이터·네트워크·AI)를 선정했다.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 등이 관련 연구 개발과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김기남 사장은 신년 목표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기술력 확보를 꼽았다.

그는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산업"이라면서 고성능 메모리 역량 강화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현대로보틱스 등 로봇업체들도 세계 로봇산업의 혁신 물결에 맞추어 뛰고 있다. 그러나 산업 신경망을 구성하는 소프트웨어 업체는 마땅히 내세울 만한 기업이 없는 상태이다.

국가적 규제 개혁과 빅테이터 수립으로 기업 뒷받침 시급

최근 제조업 분야 4차 산업혁명 대응 실태를 설문 조사하면서 깜짝 놀랐다. 2016년 11월 조사에서 4차 산업혁명 대응에 착수했다는 기업이 전체 24%였는데, 2017년 10월엔 그 비율이 22%로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다. 2년 연속 4차 산업혁명에 대해 투자와 연구 개발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는 기업은 12%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기업도 동일했고, 대부분 매출액 1000억원 이상 중견·대기업이라는 점에서 충격은 컸다.

이유를 알아보니 대응에 착수했다가 중단한 기업이 많았다. 많은 기업이 신기술이 어렵고 아직 완성되지 않아 서둘러 대응해도 당장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얼핏 합리적인 듯하지만 위험하다.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은 제품이나 공정을 개선하는 단품 혁신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주도 혁신을 특징으로 하는 시스템과 비즈니스 모델 재편이 골자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번 시스템을 구축하면 경쟁 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몰 수 있다. 아마존이 대표적이다. 위협을 체감하고 대응하면 이미 늦다.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에 중국과 일본 기업의 대응이 적극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중국은 올해 CES(국제가전전시회)에서 나타났듯 AI(인공지능) 등 신기술 개발에 민첩하고 혁신 창업도 활발하다.

4차 산업혁명 전장엔 민관이 따로 없다. 정부는 신기술 선도 기업과 인재들이 자유롭게 신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에 출시할 수 있는 혁신적 시장 여건을 조성하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현행 법령하에선 신제품이나 신서비스를 개발해도 관련 규정이 없으면 출시가 불가능하다. 최근 한국GM이 외국 공장에서 쓰는 협동 로봇을 들여왔는데 허용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결국 투입하지 못했다.

기업 혁신력을 제고하기 위해 지원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신기술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혁신 시대에는 기술 안정기인 추격 시대처럼 특정 기업, 특정 기술을 골라 직접 지원하는 체계로는 앞서갈 수 없다. 혁신 인프라 구축, 수요 견인 전략, 협업 시스템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 수요 견인은 방위산업을 포함한 정부 조달에 4차 산업혁명 신기술 비중을 대폭 늘리는 것이다. 협업 시스템은 신기술 지원을 개별 기업 단위가 아닌 미국 산업인터넷 컨소시엄(IIC)처럼 산학연이 모두 참여하는 컨소시엄 방식으로 전환하는 내용이다.

데이터 수집·유통부터 보장해야

정부는 뭘 해야 할까. 첫째, 규제 개혁이 급선무다. 규제 개혁이 표류하여 혁신시장이 활성화하지 못한다면 4차 산업혁명에 성공할 수 없다. 이는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규제 개혁 과제 중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 수집과 유통을 보장하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 앞장서는 일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범국가 차원에서 빅데이터 전략을 종합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국가 데이터 체계 정립, 국가 기간 데이터 분석과 데이터 자원화 지원, 플랫폼 정부 구축 등이다.

셋째, 정부 조달과 정책 사업을 활용한 수요 견인 전략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혁신 시대에 기업들에 가장 필요한 건 시장이다. 정부가 먼저 시장을 창출해서 기업들에 초반 운신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

넷째, 산학연 컨소시엄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개방형으로 하면서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참여 기업들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며 지원하는 독일식 모델을 본받아야 한다.

다섯째, 정부와 시장의 관계, 정부 내 협력 방식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정부 주도에서 정부 후원으로 바꾸고, 정부 내 협력을 위해 4차 산업혁명 위원회에 정책 조정 권한을 강력하게 부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독일 ‘제조업 4.0’ 정책이 그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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