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7000명 왕자들의 잔치는 끝났다… '기름 의존 경제'도 끝낸다

    •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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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1.27 03:07

      '왕자의 난' 사우디 경제, 어디로 가나

      "우리는 더이상 부자 나라 아니다" 취업난 2030세대 개혁 전폭 지원
      비석유 부문 경제 6배 늘리고 여성도 생산 참여케

      "7000명 왕자들만의 잔치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지난해 말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만난 카흐탄(24)씨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우디는 더 이상 부자가 아닙니다. 이제 가난합니다. 많은 게 바뀌어야 합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학을 마쳤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이날도 할 일이 없어 시내 파이살리야 쇼핑센터를 서성이고 있었다. 특별한 물건을 사러 온 게 아니었다. 집에 있자니 부모 눈치가 보여서 그냥 나왔다는 것이다.

      젊은 층 전폭 지지받는 개혁

      사우디는 요즘 요동치고 있다. 30대 초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경제 개혁 '비전 2030'이 나라 곳곳을 들썩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4월 발표한 '비전 2030'은 카흐탄씨 같은 신세대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석유에 '올인'하던 경제 구조를 개혁하고, 정부가 아닌 민간 중심 경제성장을 촉진하면서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뒷받침할 투자 여력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 최대 석유기업 아람코를 상장(IPO)하겠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5% 지분만 공개하겠다는 내용이지만 그 규모가 2조달러(약 2140조원)에 달한다.

      '비전 2030'은 단순한 탈(脫)석유 선언이 아니다. 사우디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위협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마련한 대응책이다. 정치적으로는 복잡한 가계도로 인해 발생하는 왕실 승계 작업의 불확실성과 점증하는 반정부 세력의 도전이 상존한다. 경제적으로는 장기화하는 저유가가 초래한 재정 압박과 이에 따른 민심 이반이 고민거리다. 미국 '셰일(shale) 오일 혁명'으로 원유 생산 규모가 팽창하면서 사우디가 독점하던 세계 에너지업계 주도권도 약해지고 있다. 외교적으론 역내 패권 경쟁국 이란이 개방 물결과 더불어 점차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종파(宗派) 갈등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대대적 숙청에도 민심은 왕세자편

      이런 흐름에서 미국 트럼프 정부 출범은 사우디 왕족에겐 희소식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이란을 봉쇄하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작년 5월 사우디를 방문, 경제와 군사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작년 10월에는 이란 핵 협상을 거부하면서 사실상 사우디에 힘을 실어줬다. 이런 미국 지지를 발판으로 빈 살만 왕세자는 경제 개혁에 정치 질서 재편까지 밀어붙였다. 트럼프 방문 한 달 후인 작년 6월 왕세자에 올라 사촌 형을 몰아내고 부자 계승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작년 11월엔 왕족 내 도전 세력에 결정타를 날렸다. 부패척결위원회를 설립하자마자 왕자 11명과 전·현직 장관, 경제계 인사 30여 명을 체포했다. 전 국왕의 아들이자 국가방위군 사령관인 무타입 왕자가 여기 포함됐다는 게 충격을 줬다. '사막의 워런 버핏'으로 불렸던 알왈리드 왕자도 비슷한 수모를 겪고 있다.

      현 국왕과 왕세자는 이런 식으로 물리력과 경제력을 모두 장악했다. 왕위를 형제가 계승하는 체제하에서 사우디 권력은 여러 가문에 나뉘어 있었지만, 지금은 현 국왕과 왕세자에게 집중됐다. 그럼에도 특별한 도전 세력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 침체에 염증이 난 젊은 층이 부패한 왕족에 대한 숙청과 기강 확립에 환영을 보내고 있는 게 큰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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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아라비아가 수도 리야드 북쪽에 사업비 100억달러를 들여 조성하는 ‘킹 압둘라 금융지구(KAFD)’. 두바이와 더불어 ‘사막의 마천루 숲’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블룸버그

      경제 개혁 본격화 기반 마련

      '비전 2030'은 사우디 경제에서 '큰손'으로 꼽히던 알왈리드 왕자까지 제압하면서 탄력을 받고 있다. 올해부터 예정된 부가가치세 5% 징수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체포한 왕자와 기업인들에게 석방을 조건으로 수십억달러 합의금을 받아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 자금을 젊은 층 복지와 창업 지원을 위해 활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우디 왕실은 지난 5일 대대적인 복지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공무원과 군인에게 최대 142만원 생활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게 골자다.

      동시에 재정 확충을 위한 개혁 조치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국민에게 지급하는 에너지 보조금을 크게 줄였다. 올해 들어서만 기름값을 두 배 인상했다. 전기요금도 3배 올렸다. 2014년 말 시작된 저유가 이후 매년 1000억달러에 달하는 정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반면 추가적인 세수를 산업 발전과 투자에 투입하기 위해 2018년 예산을 전년 대비 9.9% 늘렸다. 사상 최대 규모 예산 편성이다.

      산업 다각화가 '비전 2030' 핵심

      대규모 예산을 편성하는 가장 큰 목표는 석유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비전 2030'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현재 석유 부문은 사우디 정부 세입(歲入)의 87%, 수출의 90%, 국내총생산(GDP)의 42%를 차지한다. 유가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면 사우디 경제는 근본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비전 2030'에서 빈 살만 왕세자는 비(非)석유 부문 규모를 지금보다 6배로 확대한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스타트업 창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여성 노동시장 참여율도 지금 22%에서 30%로 늘리겠다고 언급했다. 최근 사우디 내에서 여성 운전이나 스포츠 경기 관람을 허용하는 등 개방 물결은 이와 연관된 조치들이다.

      산업 다각화가 중요한 이유는 실업률 때문이다. 사우디 정부가 발표하는 공식 실업률은 현재 12.7%다. 그러나 이는 실제보다 훨씬 축소된 것이란 지적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해 사우디 청년 실업률(15~25세)이 36.2%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최근 청년층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실업률이라는 걸 왕실은 파악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고용을 창출하던 공공 부문이 이미 포화 상태라 일자리 추가 창출 여력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결국 산업 다각화와 투자·창업만이 국내 최대 정치 불안 요소인 실업률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게 왕실 판단이다.

      근로 의욕 재건과 왕권 안정도 과제

      사실 사우디 경제 다각화 정책은 30여 년 전인 1970년대에도 시도된 적이 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석유 부문이 국영이다 보니 그 과정은 국가주도형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고, 정부가 주도하다 보니 민간 부문 발전이 더뎠다. 더 중요한 건 국민들 근로 의식이었다.

      정부가 챙겨주는 고용과 지원에 의존하다 보니 국민들 근로 의욕은 개선되지 않았다. 돈을 쉽게 벌려 하고 땀 흘려 일하는 풍토를 꺼려하는 건 사우디뿐 아니라 중동 산유국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사회적 고질병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비전 2030'도 결실을 보기 쉽지 않다.

      왕권 안정도 또 다른 중대한 포인트다. 왕위 부자 계승을 추진하고, 개혁 작업을 펼치면서 현 왕실은 정적을 양산하고 있다. 군부와 부족 세력, 왕족, 이슬람 보수주의자 등이 등을 돌리면서 암살과 정변이라는 돌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우디 내 정변 발생은 곧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이어진다. 안정화를 향해 달려가는 세계 경제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반면 왕실 안정과 경제 개혁이 순조롭게 추진되면 유가 급변이란 리스크가 해소된다. 이에 따라 건설·플랜트 등 각종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안정적으로 쏟아지면서 세계 경제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