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또 다른 정보이자 피드백"… 새 사업 실험, 1년에 8만건

입력 2018.01.27 03:07

24년 만에 11억달러 자산가 된 리처드 페어뱅크 '캐피털원' 회장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상품 기획자 함께 근무
끝없는 실험 거쳐 혁신적인 상품들 나와

자동차 금융·은행업…
M&A 통해 영역 확장, 핀테크 시대에도 주목

이미지 크게보기
캐피털원은 최근 은행 지점 방문에 익숙지 않은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플래그십 스토어 ‘캐피털원 카페’를 확장하고 있다. 캐피털원 고객이 아니라도 누구든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마시며 공짜 와이파이를 활용해 일할 수 있는 카페다. 카페에 근무하는 ‘홍보대사’들은 고객이 요청할 경우에만 자산관리법과 상품을 소개한다. / 캐피털원

미국 금융그룹 캐피털원(Capital One)을 이끄는 리처드 페어뱅크(Fairbank·67) 창업자 겸 회장·CEO(최고경영자).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 들어 페어뱅크 회장의 자산 가치는 11억달러(1조1750억원)를 넘어섰다. 미국 금융계에서 개인 보유 자산 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CEO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 밥 윌머 M&T뱅콥 CEO에 이어 페어뱅크 회장이 네 번째다. 창업한 지 24년 만에 억만장자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페어뱅크 회장은 사실 1997년부터 급여를 받지 않고 있다. 실적에 따라 보통주와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 등만 챙긴다. 일부 주식을 팔고 현재 보유한 지분은 전체 0.5% 정도. 이 모든 걸 합친 규모가 10억달러를 넘어선 셈이다. 페어뱅크 회장 자산이 '10억 달러' 허들을 넘은 건 캐피털원 주가 상승 덕이다. 캐피털원 주가는 지난 23일 105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1994년 11월 상장 직후(5.5달러)와 비교하면 약 19배 뛰었다.

고객별 맞춤 카드 처음 고안


스탠퍼드대에서 학사(경제학)·석사(경영학)를 받고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던 페어뱅크 회장은 동료 나이젤 모리스(현 QED 인베스터 파트너)와 함께 1980년대 말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카드사들은 천편일률적으로 고객들에게 연회비 20달러, 대출 금리 19.8%를 적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소비자 특성에 따라 신용도를 달리 책정하고, 다른 혜택과 다른 연회비·대출금리를 부과하면 폭발적으로 회원 수를 확장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시중 은행에 신사업 전략으로 제안하고 다녔다. 지금은 보편화한 영업 방식이지만 당시 은행들은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년 동안 20여 곳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실패. 거의 마지막에 찾아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작은 은행 시그넷만 둘이 직접 회사로 들어와 해보라는 조건으로 계획을 수용했다. 이들은 1988년 컨설턴트에서 은행 카드사업부 직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고전하다 저금리 카드로 대박

캐피털원
페어뱅크와 모리스는 초반엔 고전했다. 이들이 합류한 1988년 말 2700만달러였던 시그넷은행 카드 사업부 수익은 1989년 2500만달러로 줄었다. 1992년엔 제로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그러나 고진감래(苦盡甘來). 1991년 출시한 '채무 이전 카드'가 대박을 터뜨렸다. 이 카드는 이자율이 연 19.8%에 이르는 타사 카드 채무를 대신 갚아주고, 자사 카드는 9.8% 이율을 물리는 상품이다. 첫해엔 0%로 부과하는 '미끼 금리'까지 적용하면서 가입자가 선풍적으로 늘었다. 1992년 말 22억달러였던 시그넷은행 카드 사업부 자산 규모는 1994년 말 73억8000만달러까지 커졌고, 모기업(은행) 수익의 3분의 2를 카드 사업부가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그넷은행은 1994년 카드사업부를 '오크스톤파이낸셜코퍼레이션'이란 이름으로 분사한 다음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오크스톤 CEO는 페어뱅크,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모리스가 맡았다. 오크스톤은 이듬해 이름을 '캐피털원'으로 바꿨다.

연 8만건씩 새 사업 실험

페어뱅크는 카드사업부를 운영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했다. 예를 들어 카드 홍보 우편물을 제작하던 마케팅팀이 봉투 색깔을 파란색으로 할지, 흰색으로 할지 고민할 때 토론을 거쳐 하나로 정하기보단 아예 10만개 우편물 중 5만개는 파란색 봉투, 5만개는 흰색에 담아 보내봤다. 그 뒤 무작위로 선정한 가구에 어떤 색 봉투가 반응이 좋은지를 물어본 뒤 결론을 내리는 식이다.

이런 실험 중심 문화는 캐피털원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지금도 상품과 서비스 설계, 교차 판매 전략, 콜센터 고객 응대용 멘트까지 실험과 피드백을 거쳐 전술을 개발하고 개선한다. 1989년 연간 335건이던 사내 실험은 1992년 1130건, 1994년 4355건, 1995년에는 6000건으로 늘었고, 현재는 연평균 8만 건에 이른다고 한다.

실험이 잦은 만큼 실패를 받아들이고 재빨리 수정하는 문화도 뿌리내렸다. 페어뱅크 회장은 "실패는 또 다른 정보이자 피드백"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사내 대출 업무 담당자를 위한 교육 과정은 그동안 겪은 실패 경험담을 토대로 구성하고,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상품 기획자·디자이너가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설계부터 수정까지 함께 하도록 하고 있다. 이중 결제 등 이상 거래가 감지되면 카드 주인에게 곧장 이메일과 알림 메시지를 보내주는 '세컨드룩(Second Look)' 서비스, 문자 메시지 대화로 계좌 정보와 카드 사용 내역을 관리하는 챗봇 서비스 '이노(Eno)' 등이 모두 이런 실험 과정을 거쳐 선보였다. 페어뱅크 회장은 "비즈니스 전체를 갖가지 과학적 실험이 벌어지는 연구실로 바꿔놓은 게 성공 비결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광범위한 M&A로 영토 확장

페어뱅크 회장은 끊임없는 인수·합병(M&A)으로 카드 회사이던 캐피털원을 자동차 금융, 은행업 등으로 확장했다. 2004년 공동 창업자였던 모리스 COO가 회사를 떠나자 그는 M&A에 박차를 가했다. 이전까진 3개에 불과했던 M&A를 2004년 이후 총 19개까지 늘렸다. 2011년까지는 중소 규모 할부금융사와 지역은행(체비체이스), ING그룹 인터넷 전문은행 ING다이렉트를 인수하며 은행업에 집중했고, 이후엔 데이터 분석(번들), 핀테크(레벨머니, 파리부스), 소프트웨어 개발(몬순컴퍼니), 보안기술(크리티컬스택), 사용자 환경 디자인(어댑티브패스) 등을 흡수하며 첨단 기술을 접목했다. 은행과 첨단 기술이 융합하자 플래그십 점포 '캐피털원 카페'가 탄생했다. 전통 은행 지점 영업 방식 대신 무선 인터넷과 무료 커피를 제공하는 카페를 운영하며 소비자 의견을 수집하고 은행 프로그램을 개선하거나 개발, 브랜드와 상품을 강화해 나가는 내용이다. 캐피털원이 '핀테크 시대'에도 금융업계 총아로 주목받은 이유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CEO in the News

더보기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