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ustrie 4.0 미래의 전쟁… 독일 '3각 편대'가 일어선다

입력 2018.01.27 03:07

[Cover Story]
지멘스가 제작한 두뇌 'PLC'를 쿠카 로봇에 장착하고 SAP 신경망으로 연결하자 마치 사람처럼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州) 뮌헨에 자리 잡은 유럽 최대 전기·전자 기업 지멘스(Siemens) 본사. 육중한 빌딩 숲 사이 연구동 한쪽에서 연구원들과 로봇이 새로 개발 중인 공장 자동화용 컨트롤러 기능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 컨트롤러를 장착한 양팔 로봇은 작업대에서 작은 부품들을 옮기다 갑자기 멈췄다. 연구원 하나가 부품을 일부러 약간 옆으로 밀친 뒤 뒤집어 놓은 것. 그대로 집어가면 부품이 제품에 거꾸로 잘못 박힐 판이었다.

그러자 이 로봇은 카메라로 부품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제자리에 놓고 똑바로 뒤집은 다음, 다시 작업을 이어갔다. 연구원 한 명이 소요 시간과 로봇 팔 동작 각도 등을 상세히 기록한 뒤 잠시 로봇을 멈추고 토의에 들어갔다. 이 과정은 지멘스가 개발한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 즉 기계를 제어하고 모니터링하는 장치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작업이다. PLC는 지능형 산업 로봇의 '두뇌'에 해당한다. 지멘스는 PLC를 비롯, 로봇을 구성하는 운영체제와 부품을 쿠카(KUKA)로보틱스 등 전 세계 주요 산업용 로봇 제조사에 공급한다.

뮌헨에서 서북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남짓 달리면 아우크스부르크가 나온다. 이곳에 글로벌 로봇 제조회사 쿠카그룹 본사가 있다. 쿠카는 그동안 전통적으로 진한 주황색을 대표 색으로 정했다. 건물도 주황색, 기업 로고도 주황색, 제품도 주황색을 입혔다. 직원들이 "혈관엔 주황색 피가 흐른다"고 농담할 정도다. 그런데 신축한 연구동은 회색과 흰색으로 칠했다. 덕분에 주황색 건물을 찾던 기자는 건물을 한 바퀴 더 돌아야 했다. 스테판 람파(Lampa) 쿠카로보틱스 최고경영자(CEO)는 "사실 주황색이 좋아서 그랬다기보다 로봇이 생산 현장에서 주황색같이 눈에 확 띄지 않으면 안전사고가 생길 수 있어서 그랬던 것"이라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로봇은 인간과 어울리고 섞이면서 한 몸처럼 작동하기 때문에 주황색이 가진 의미가 퇴색됐다"고 말했다. 쿠카는 무채색 계열로 회사 상징 색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작업장에 들어서자 '플랫폼'이라 불리는 무인 운송기가 부품을 곳곳으로 나르고 있었다. 센서가 달려 누군가 접근하면 스스로 멈추거나 속도를 늦춘다. 한쪽에선 직원들이 양팔 로봇 도움을 받아가며 차분하게 제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혁신 성장 제1 키워드는 '연결성'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다시 차로 2시간만 가면 발도르프에 도달한다. 인구가 1만5000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이지만 여기엔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 공급사인 SAP 본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SAP는 미래형 공장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를 움직이는 시스템을 담당한다. 지멘스가 두뇌, 쿠카가 팔다리라면 SAP는 신경망인 셈이다. 스마트 팩토리에선 로봇에 장착된 카메라와 각종 센서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 분석 등 소프트웨어 힘을 빌려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작업 현장 구석구석의 재고와 생산 과정 정보를 100% 수집하고, 소프트웨어로 분석하고 공유한다. 마치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원주민들처럼 서로 신경을 연결해 에너지를 모으면 죽은 생명도 부활시킬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효과를 내는 셈이다. 독일 산업계에선 "스마트 팩토리는 과거 시점에서 보면 '마법'"이라고 말한다.

현장에서 만난 독일 경영자들은 하나같이 '연결성(connectivity)'을 강조했다. 생산 시설과 가상현실(관리 시스템)의 연결, 대기업·중소기업·스타트업의 연결을 혁신 성장의 핵심으로 꼽았다.

독일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혁신 성장 붐의 발원지이다. 지난 2011년 독일 최대 산업박람회인 하노버메세에서 정부와 학계,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내놓은 '제조업 4.0(Industrie 4.0)' 로드맵을 하나씩 실현하고 있다. '제조업 4.0'을 위한 산학 연구위원회를 발족하고 기업·노동계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독일의 미래 먹거리와 산업별 혁신 계획을 추진 중이다. 독일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나가자 주변국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영국과 오스트리아 정부가 자국판 '제조업 4.0' 로드맵을 허겁지겁 작성하고 있고, 프랑스 정부는 '미래 제조업(Industrie du Futur)'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한국 경제의 지난해 화두는 소득 주도 성장이었다. 이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자 문재인 정부는 혁신 성장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혁신 성장을 반복해 말하지만 구체적 실행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어떤 방향을 따라가야 할까. 지멘스, 쿠카로보틱스, SAP 등 독일의 혁신 성장을 주도하는 '3각 편대' 경영자를 직접 만나 한국 경제의 갈 길을 WEEKLY BIZ가 탐색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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