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6500만달러 나간다는 이 그림…상속세 한 푼 안 냈다, 어떻게 ?

    •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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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1.27 03:07

      [이규현의 Art Market] (6)

      박제한 독수리 미국법서 매매 금지
      처음 2900만달러 세금 물렸으나
      유족이 미술관 기증 세금 안 내게 돼

      작년 말 한국 근대화의 대가 김흥수(1919~2014) 화백 유족이 유작(遺作)을 한 재단에 기부한 것과 관련한 소송이 언론에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유족 측은 작품 70여 점을 한올재단에 기부했고, 이에 따라 그 작품에 대한 상속세를 면제받았다. 하지만 유족은 한올재단이 기부 조건으로 김흥수미술관을 건립해주기로 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사기와 횡령 혐의 등으로 재단을 고소했다.

      한올재단은 거액의 상속세를 물어야 할 형편에 처한 유족이 조건 없이 기증한 것이라면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명 화가 작품 상속세가 다시 화제에 올랐다. 국세청은 김흥수 화백 유작 70여 점 가치를 110억원으로 추산하고 유족에게 상속세 48억원을 매겼다. 유족이 작품을 다 팔아 현찰을 쥐지 않는 한 세금을 내긴 어려운 처지다.

      유명 화가나 컬렉터가 세상을 떠나면 상속세 논란은 흔한 일이다. 미술 작품에 전시 가격, 공정 가격, 매매 가격 등 가격이 따로따로 존재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수시로 변하는 미술품 가격

      '전시 가격'은 화랑에서 전시를 할 때 가격표에 적힌 가격이다. 같은 작가의 비슷한 스타일과 크기 작품이면 대개 같고 고정적인 편이다. '매매 가격(selling value)'은 실제로 각 작품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팔리는 가격으로 전시 가격과 다를 수 있으며 변동적이다.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팔 수 없는 작품도 있다. 이런 경우 매매 가격은 '0원'이다.

      상속세나 증여세 등을 물릴 때 국가 기관에서 기준으로 하는 가격은 보통 '공정 가격(fair market value)'이다. 감정 기관의 평가와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종합해 "이 정도면 합리적이다"고 추산하는 가격이다.

      문제는 매매 가격이 0원인 작품도 공정 가격은 나오기 때문에 세금이 책정된다는 데 있다. 가장 유명했던 일은 2012년 미국에서 있었던 '라우센버그 독수리 사건'이다.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를 이어주는 시기에 있었던 중요한 작가다.

      미국 유명한 화상(畵商)인 일레나 소나벤드는 2007년 사망 당시 자식들에게 많은 그림을 남겼는데, 그중 라우센버그의 1959년 작품 '협곡(Canyon)'이 있었다. 미국 국세청인 IRS는 이 그림에 6500만달러 공정 가격을 매기고 이에 대해 세금 등으로 2900만달러를 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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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수리 튀어나오는 ‘협곡’ 매매 금지된 독수리가 붙어 있어서 매매 가격이 0달러였지만, 공정 가격이 6500만달러(약 696억원)로 매겨져 상속세 소송까지 갔던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작품 〈협곡〉(1959). 유족이 작품을 모마(MoMA·뉴욕현대미술관)에 기증해 상속세를 내지 않는 것으로 합의됐다./모마(MoMA)
      라우센버그는 기성 물건들을 캔버스에 붙여 그림과 함께 표현하는 '콤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으로 미술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 작품에는 박제한 독수리를 붙였는데, 하필 미국법에서 매매를 금지한 흰머리독수리(bold eagle)였다. 그래서 유족은 이 작품을 판매하는 게 제도적으로 불가능했고, IRS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매매 가격이 0달러인 유산에 대해 상속세를 매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유족은 이 작품을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 기증하고, IRS는 상속세를 물리지 않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공정 가격은 실제 작품이 팔리기 전에 매기는 '예측 금액'이다. 환금성이 높아 매매 가격이 더 올라가는 작가의 유족에게는 유리하겠지만, 잘 안 팔리는데 가치만 높게 매겨진 그림을 상속받은 상속자들은 황당하다.

      작품 안 팔려도 세금은 내야

      한 원로 화가는 주변 미술인들에게 "자식이 엉뚱한 세금 폭탄을 맞을 수 있으니, 내가 죽으면 내 작품들을 다 쓰레기라고 해달라"는 농을 던지고 다닌다. 유족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작품을 미술관이나 재단에 기부하거나 스스로 재단을 만들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매매 가격을 가지고 세금을 매기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세금을 현물로 납부하는 등 정책의 유연성이 늘 논의되는 게 이런 배경 때문이다.


      [Knowledge Keyword]  미술품의 세 가지 가격

      ①전시 가격(replacement value): 화랑에서 전시할 때 가격표에 붙어있는 가격. 작가 지명도, 작품 크기와 인기, 제작 시 사용한 재료 등을 고려해 화랑과 작가가 합의한다.

      ②매매 가격(selling value): 실제 시장에서 팔리는 가격. 전시 가격과 다를 수 있다. 전시 가격이 1억원이라 해도 2억원에 팔리면 그게 매매 가격이다.

      ③공정 가격(fair market value): 감정 기관 평가와 전문가 의견 등을 종합, ‘합리적’이라고 추산하는 가격. 팔 수 없는 작품이라 매매 가격이 0원이라도 공정 가격은 매기기 때문에 세금을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