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스튜어드십 코드, 국민연금 앞세워 기업 길들이기 우려

    •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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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1.27 03:07

      [WEEKLY BIZ를 읽고]

      美서 본격 도입 30년
      좋아졌다는 증거보다 고용·분배 악화 등
      부정적 결과 더 많아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
      WEEKLY BIZ 1월 13일 자 3면에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권 행사 지침, 즉 '스튜어드십 코드'와 관련해 이 문제를 관장하는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조 원장은 인터뷰에서 스튜어드십 코드가 주식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인프라'에 해당하는 민간의 자율 규제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필자의 의견은 다르다. 여러 경로를 통해 나오는 정부의 발표를 보면 스튜어드십 코드가 조 원장이 설명하는 원래 취지와는 다른 형태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경제' 실현 수단? 본말이 전도

      정부의 '2018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는 대기업 개혁을 통해 '공정경제'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들어가 있다. 대선 당시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재벌 개혁 수단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재차 강조했다. 주식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공정경제 실현 간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정부가 이렇게 강력하게 추진하는데 어떻게 '자율 규제'인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이다.

      실제로 스튜어드십 코드는 영국에서 탄생할 때부터 크게 왜곡됐다. 그리고 한국에는 변질되어 도입되고 있다. 단어의 원래 뜻부터 보자. 스튜어드십 코드는 '집사 준칙(執事準則)'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집사는 기관투자자이고 고객은 돈 맡긴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스튜어드십 코드는 고객의 뜻에 맞게 기관투자자들이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도록 만드는 준칙이어야 한다. 고객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투자 수익이다. 연금의 경우는 수십 년 후에 쓸 수 있도록 안정적·장기적 수익을 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스튜어드십 코드의 핵심은 '기관투자자 행동주의'가 되어 있다. 기관이 기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투자 성과가 좋아지고 따라서 고객들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기관투자자 행동주의에 경도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다음과 같은 근본적 질문들을 던지게 만든다.

      첫째, 고객이 원하는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에서 기업 관여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수익 달성의 주요 수단은 주식 매매이다. 외부 관여가 있을 경우, 중장기적 가치 상승효과가 날 때까지 인내심 있게 주식을 들고 기다리는 기관투자자는 별로 없다. 왜 수익 올리는 수단으로 관여를 그렇게 중시하는가.

      둘째, 기관투자자들이 집사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 보는 척도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기업 관여가 얼마나 중요한가. 고객과 기관투자자 사이에서 종종 문제 되는 것은 수수료이다. 표면 수수료는 낮지만 뒤에서 받는 수수료가 높을 경우 기관투자자들은 고객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금융 상품을 권하는 경우도 있다. 수많은 펀드를 운용하면서 몰래 내부 거래하는 사례도 있다. 숨긴 수수료 공개나 내부 거래 투명화도 중요한 사항인데 왜 전혀 언급되지 않는가.

      셋째, 기관투자자 행동주의가 실제로 기업 가치를 상승시켰는가. 기관투자자 행동주의가 1980년대에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중장기적으로 수익을 높였다는 증거는 확립된 것이 없다. 오히려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고용 불안, 분배 악화라는 부정적 결과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왜 실증되지 않은 효과에 매달리는가.

      넷째, 영국과 미국이 정말 고객에게 충실하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는가. 실제로는 정부의 직접 규제가 들어오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한 '대안적 선택'인 측면이 많다. 국내 정책 담당자나 학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가, 아니면 알더라도 애써 무시하며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왜곡하는가.

      국민연금 앞세워 기업 길들이기 우려

      다섯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자율 규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정말 필요하면 정부가 직접 규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율 규제'라면 민간에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책임지지 않고 중요한 일을 벌이려는 것은 아닌가.

      여섯째, 한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을 전위대로 세우려고 한다. 정부가 '5% 룰'과 같은 자본시장 질서 규제를 국민연금에만 예외적으로 허물어주고,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는 금융사에 국민연금의 위탁 자산 배분 시 가산점을 주겠다고 한다. 국민연금은 30대 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을 평균 9%가량 보유하고 있는 대기업 단일 최대 주주이다. 국민연금의 힘을 활용하고 전체 금융사를 '줄 세워서' 대기업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얘기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한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정직성과 전문성이 모두 결여된 정책이다. 자율 규제라는 가식을 벗고 국제금융시장과 한국 경제의 현실을 반영한 균형 잡히고 포괄적인 '기관·기업 관계 규준'을 민관이 함께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소중한 노후 대비 자산인 국민연금은 장기적 안정적 수익률이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춰서 운용해야 한다. 본말을 전도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