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1000명 자르고… 대장암 수술받고… 시련 뒤에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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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8.01.13 03:06

      곤도 사장이 넘은 다섯 번의 위기

      1944년 도쿄에서 태어난 곤도 사장은 1968년 게이오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전자현미경 엔지니어로 일본전자에 입사했다. 일본전자는 전자현미경 분야 선두 업체였다. 이후 그는 인생이 걸린 위기를 다섯 차례나 겪었다. WEEKLY BIZ 인터뷰에서 곤도 사장은 시련에서 얻은 깨달음을 강조했다.

      1. 1000명의 동료를 내 손으로 자르다

      입사 4년째, 28세에 그는 노조위원장이 됐다. 일본전자엔 두 노조가 있었는데 한쪽을 맡게 됐다. 당시 다른 한쪽 노조의 주도로 분규가 계속됐지만 그는 노사 화합을 위해 밤낮으로 뛰었다. 안정을 찾을 무렵, 오일쇼크가 터져 회사가 도산 위기에 몰렸다. 직원 3분의 1에 해당하는 1000여 명을 '희망퇴직'시켜야 했고 그는 퇴직자 상담을 맡았다. 노조가 회사를 지키려 아무리 노력해 봐야 경영이 흔들리면 고용 보장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2. 생후 사흘 만에 세상 떠난 쌍둥이 아들

      대량 퇴직 당시 그는 쌍둥이 아들의 아빠가 됐다. 그러나 생후 사흘째 심각한 황달 증세로 둘 다 숨지고 말았다. 그는 깊은 상실감을 안고 노사 대립의 전쟁터에 몸을 던졌다. 곤도 사장 부부는 이후 영영 아이를 갖지 못했다.

      3. 美법인 구조조정 중 대장암 판정 받다

      11년간 노조위원장을 맡은 후 그는 미국법인 부법인장에 임명됐다. 미 국방 예산이 줄면서 군납이 급감한 탓에 미국 직원들을 대량으로 감원해야 했다. 그 기간 위궤양이 반복됐고 대장암 판정까지 받았다. 수술로 현재 완치됐지만, 동료를 내보내는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겼다.

      4. 도산 직전의 '일본레이저' 재건 임무

      일본으로 돌아온 그에게 1994년 회사는 도산 직전의 자회사인 일본레이저 재건을 맡겼다. 회사에는 불량 재고, 불량 설비, 불량 채권, 불량 인재 등 네 가지 '불량'이 심각했다. 허위보고·배임·횡령도 만연했다. 그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직원 동기 부여, 매출 총이익 중심 경영, 인사·평가제 개선, 능력·노력·성과 기반 처우에 힘썼다. 그 결과 취임 첫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5. 모(母)회사에서 독립하기

      자회사인 일본레이저 출신은 모회사인 일본전자 '낙하산'에 밀려 사장은커녕 임원 승진도 어려웠다. 곤도 사장은 이 구조를 끊어야만 직원의 열의를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2007년 일본레이저를 MEBO(Management and Employment Buy Out·경영진과 직원의 자사주 매입) 방식으로 독립시켰고 전 직원이 주주인 회사가 탄생했다. 현재 일본레이저 지분은 일본전자가 14.9%, 곤도 사장이 14.9%, 그 외 경영진이 38.2%, 직원들이 32%를 보유하고 있다.

      독립한 뒤 세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첫째, 모회사가 사라지면서 수직적 조직 구조가 수평적으로 바뀌었다. 둘째, 돈·시장 대신 사람을 중시하며 이익을 내는 기업으로 변모했다. 셋째, 직원이 곧 주주이므로 직원의 책임감·주인의식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