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에 연 138조원… 글로벌 반도체업계, 몸집 불리기 死活

입력 2018.01.13 03:06 | 수정 2018.01.15 11:12

반도체 업계 합종연횡

기술개발보다 리스크 적게 핵심 역량 수혈
불발에 그쳤지만 브로드컴은 퀄컴 인수 위해 138조원 제시하기도

세계 6위 반도체 회사 싱가포르 브로드컴은 지난해 11월 경쟁사이자 세계 5위 반도체 회사인 미국 퀄컴 인수를 위해 1300억달러(약 138조원)를 제시했다. 퀄컴 이사회는 "모바일 기술과 미래 성장 측면에서 퀄컴의 리더십을 상당히 과소평가했다"며 브로드컴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퀄컴 공동 창업자인 어윈 제이콥스 박사는 이사회 결정을 지지하며 "퀄컴은 멋진 미래를 갖고 있다"고 했다. 비록 불발에 그쳤으나 브로드컴이 퀄컴에 제시한 인수 금액은 글로벌 IT(정보기술)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다. 브로드컴이 아직 퀄컴 인수를 포기하지 않은 상황이라 향후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에 나설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최대 이슈는 M&A다. 인텔, 브로드컴, 퀄컴,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 반도체 공룡들의 움직임을 보면 M&A에 사활(死活)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 확보 전쟁이 벌어지면서 자체 기술 개발보단 M&A가 핵심 역량을 수혈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래 반도체 전쟁: 몸집을 키워라

반도체 업계 합종연횡
미 시장 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 M&A 규모는 2014년 380억달러(약 40조4500억원), 2015년 1090억달러(약 116조원), 2016년 1300억달러(약 138조원) 등으로 급증했다. 반도체 산업에서 합종연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인텔은 2015년과 지난해 각각 미 FPGA(프로그램이 가능한 반도체) 기업 알테라(167억달러)와 이스라엘 자율주행 스타트업 모빌아이(153억달러)를 인수했다. 퀄컴에 인수를 제안한 브로드컴은 싱가포르 반도체 회사인 아바고 테크놀로지스가 지난 2016년 미 브로드컴을 370억달러(약 39조5000억원)에 사들여 탄생한 회사다. 브로드컴은 최근 M&A로 사세가 급격히 커졌는데, 지난 5년간 5개 기업을 인수했다. 혹 탄 브로드컴 CEO는 "지속 가능하며 강력한 제품을 가진 회사를 사들여 (인수 전보다) 더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퀄컴은 지난 2016년 네덜란드 자동차용 반도체 회사 NXP를 470억달러(약 50조1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유럽연합(EU) 등의 승인 절차가 진행 중이다. 스티브 몰런코프 퀄컴 CEO는 "(반도체 산업 내 경쟁에서) 기업 규모가 매우 중요하다"며 "다양한 시장과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도 (반도체 기업 간) M&A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검증된 사업 확보하고 개발비도 아껴

반도체 업계 합종연횡
반도체 회사들이 M&A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사업적 리스크가 작다는 이유가 크다.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을 손에 넣어 단시간에 핵심 전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링컨 클락 KPMG 파트너는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면 칩 설계에 자금을 낭비하지 않고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기업의 주요 고객인 컴퓨터 제조업체가 M&A로 숫자가 줄어들자,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 업체도 M&A로 숫자 줄이기에 나선 측면도 있다. 전자제품 제조 회사인 플렉트로닉스의 마이클 마크스 전 CEO는 "30년 전에는 주요 컴퓨터 제조 회사가 200곳이나 있었는데, 지금은 3곳밖에 없다"며 "이에 따라 반도체 회사도 재편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M&A 경쟁에서 승리할 경우 경쟁사보다 시장 공략에 훨씬 유리하다. 자동차용 반도체 회사 미 온세미컨덕터는 지난 2016년 독일 인피니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제치고 24억달러(약 2조5600억원)에 미 페어차일드를 인수하면서 전력 반도체 사업을 강화했다. 온세미컨덕터의 키스 잭슨 CEO는 "인수를 통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추가하는 것이 (자체 개발보다) 훨씬 쉽다"고 했다.

독과점화로 가격 오르고 혁신에 부정적

반도체 업계 합종연횡
휴대전화, PC, 자동차 등 완제품 회사들은 현재 진행 중인 반도체 산업 재편이 달갑지 않다. 기존에 반도체를 공급하던 회사가 대형 반도체 기업에 넘어갈 경우 협상에서 불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반도체 기업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부품 가격을 올리게 되고 결국 이 부담은 완제품 회사들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장의 흐름이 여러 기업의 경쟁에서 특정 기업의 독주로 바뀔 경우 IT 산업 성장을 이끌었던 혁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기업의 M&A 규모가 커지면서 세계 각국의 규제 당국 심사도 까다로워지고 있다. 소수 기업의 지배력 확대가 시장 독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자, 이를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해리 퍼스트 뉴욕대 로스쿨 교수는 "미 규제 당국의 경우 개별 기업이 (지배력을 앞세워) 규모가 작은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윈도 운영체제(OS)에 인터넷 브라우저(접속 프로그램)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았다는 이유로 미 규제 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시장 지배력을 무기로 경쟁사인 넷스케이프의 사업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중국이 향후 M&A 시장에서 '와일드 카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중국이 최근 메모리 반도체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사업 강화에 나서면서 해외 기업 M&A에도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M&A로) 반도체 산업에서 챔피언이 될 순 없어도 상당수 경쟁자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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