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惡習 바꾸는 '자본시장 핵폭탄'… 투자자도 좋고 기업 가치도 올라"

입력 2018.01.13 03:06

스튜어드십 코드 기업에 藥일까 毒일까…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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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15년 7월 제일모직 주주총회장의 모습./조선일보 DB
정부는 새해 경제정책 방향에서 연기금 등의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대주주 전횡 방지'와 '투자자 이익 보호'를 명분으로 내걸었다. 올 하반기에 국민연금에 우선 도입하고 내년에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주요 연기금에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행동 지침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기관투자자들이 금융회사 경영진의 잘못된 위험 관리를 견제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에서 도입됐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을 이용해 대기업 경영에 개입하고 간섭하려는 의도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정권의 의도에 맞춰 기업 지배 구조를 바꾸고, 기업을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둘러싼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을 만났다.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인 조 원장은 2016년 부임 이후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기업 지배 구조와 관련한 여러 이슈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반성에서 탄생

―스튜어드십 코드가 뭔가.

"스튜어드는 우리말로 집사다. 스튜어드십은 집사 정신, 청지기 정신을 뜻한다. 주인의 재산을 맡아서 잘 운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이 이런 정신을 받아들여 투자자들이 맡긴 수탁 자산을 자기 돈처럼 책임감을 가지고 운용하도록 하기 위한 지침이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돼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미국 등 세계 20여 개국이 도입했다. 나라별로 조금씩 다른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데 굉장히 자율적인 규제, 연성 규제다."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기업 경영에 간섭하고 기업을 길들이려 한다는 비판을 비롯해 많은 오해가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핵심은 투자한 회사의 중장기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진과 심도 있게 대화한다는 것이다. 배당에 대한 요구나 오너 일가 소유 기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지적 등은 주주 입장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이야기다.

깊이 있는 대화는 기업 입장에서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내년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에 현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회사 사정과 애로를 설명하며 기관투자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기관들은 아주 온화하고 순한 행동주의를 추구한다. 기업들이 대화와 설득을 통해 얼마든지 기관투자자를 우군으로 확보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파트너십 코드'다."

조 원장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기본 원칙도 한국 실정에 맞게 순화시켰다고 강조했다. 영국에서 기관투자자들이 공동으로 주주 행동주의를 추구할 수 있도록 권장한 조항 같은 것을 뺐다는 것이다.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착되면 대부분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인 한국 기업들의 주주총회 모습이 확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가능

―"스튜어드십 코드가 자본시장의 핵폭탄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무슨 의미인가.

"나쁜 의미에서의 핵폭탄이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 주주총회를 보면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 초등학교 학예회 수준이다. '1호 의안 상정합니다'라고 하면 누군가 손을 들고 '의장, 이미 충분히 고지됐으니 찬성합니다'라고 한다. 옆에서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그러면 '동의와 재청이 있었으니 통과합니다'라며 의사봉을 두드린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대로 시행되면 이런 부끄러운 모습들이 사라질 것이다. 기관투자자들이 주주총회에 가서 물어보고 따져보고 설명도 듣고 할 것이다. 이제까지의 안일한 행태, 나쁜 관행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는 의미에서 핵폭탄이다."

―이미 현행법이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별 소용이 없다. 법적 강제성이 없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효과가 있을까.

"법은 기업이 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만 정한 것이다. 자본시장법에 수탁자 책임 원칙에 대한 조항이 한 줄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본 원칙이 7개 있고,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 행동 규범이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침이 있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조 원장은 오랫동안 2000~2200선의 박스권에 머물러 있던 코스피지수가 최근 2500선까지 상승한 것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한국 기업들의 지배 구조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저평가)가 해소되는 과정으로 본다"고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국민연금이다. 정치적 독립성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데 대해서는 절대 반대한다. 투자한 회사의 중장기적 가치를 높이는 게 국민연금이 추구해야 할 지고지순의 지향점이다. 이를 위해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당초 거론됐던 것처럼 기금운용본부를 떼어내 공사화하는 게 바람직한데 이뤄지지 않았다.

좀더 현실적인 대안도 있다. 국민연금이 주식 운용을 100% 민간 자산운용사들에 위탁하고, 의결권도 자산운용사에 완전히 일임하는 것이다. 자산운용사들은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라 투자한 회사의 중장기 기업 가치를 어떻게 높일 것인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 의결권을 행사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연금 사회주의라는 논란의 소지를 없앨 수 있다. 일본이 이렇게 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자산운용사들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판단할 능력이 있나.

"그런 측면에서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해 의견을 제시하는 의결권 자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 국내 의결권 자문 시장 규모는 연 5억~6억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여의도에서 가장 큰 치킨맥줏집 1년 매출이 10억원 가까이 되는 것과 비교하면 창피한 수준이다. 의결권 자문 서비스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자문사들이 제대로 인력을 갖추지 못하고, 분석 능력도 떨어진다.

ISS 같은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사들은 가격이 싸더라도 전 세계 많은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장사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토종 자문사들은 시장 자체가 너무 작아서 유지하기 힘들다. 여기서도 국민연금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는 조달청을 통해 공개 입찰을 하면서 가격을 후려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제값을 쳐줘서 의결권 자문 서비스 시장을 키워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업 가치 높여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하나.

"국민연금이 올 하반기에 가입하면 기관투자자들이 줄줄이 가입해 200개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3년 정도 지난 뒤 이행 점검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문제가 벌써부터 뜨거운 감자다.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우선 영국처럼 금융 감독 당국이 점검을 하는 방식이 있다. 우리는 금융감독원이 하면 되는데 먼저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자율 규범에 정부가 개입하는 데 대한 논란이 있지만 많은 나라가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일본은 형식적으로는 금융청이 감독하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공적연금(GPIF)이 자산운용사를 점검하는 방식이다. GPIF가 이행 점검을 제대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부가 감독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시장 친화적인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기관투자가협의회에서 자율적으로 점검하는 방식이 있다. 어느 방식으로 할지는 앞으로 더 검토해야 한다."

조 원장은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 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제고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반기업적 기관이 절대 아니다"며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부 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란과 얽혀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실에 큰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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