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빠르지 않다… 싸지도 않다… 그러나 정확하다

입력 2018.01.13 03:06

옷 골라 배달해주는 회사… 스티치픽스 CEO 카트리나 레이크

4년만에 매출 12배 작년 상장 성공해 화제
천체 물리학자부터 신경과학자까지 데이터 전문가 80명

인터넷 검색창에 '청바지'를 넣으면 검색 결과가 수백만 건 나온다. 가격과 브랜드는 물론, 입어본 사람의 후기와 별점까지 찾아볼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청바지 한 벌인데, 수천 가지 제품 정보 속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라야 한다. 바쁜 현대인으로서는 번거로운 일이다.

옷 골라 배달해주는 회사… 스티치픽스 CEO 카트리나 레이크
스티치픽스
2011년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을 다니던 한 학생은 쇼핑에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줄일 방법을 찾다가 소비자 대신 옷을 골라 배달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유통업계의 넷플릭스'라고 하는 의류업체 스티치픽스(Stitch Fix)다. 넷플릭스가 사용자의 시청 기록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영화와 드라마를 추천하듯, 스티치픽스는 고객의 구매 기록과 취향을 파악해 옷을 추천한다. 스티치픽스를 창업한 카트리나 레이크(Lake·35)는 "소비자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청바지 단 한 벌을 찾고 싶어 하지, 수많은 선택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스턴의 원룸에서 직원 2명으로 시작한 스티치픽스는 이제 직원 5800명이 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작년 매출 9억7710만달러(약 1조원), 4년 만에 12배 이상 늘었다. 작년 11월엔 기업공개(IPO)에도 성공했다. 주당 15.1달러에 상장한 스티치픽스 주가는 이달 8일 주당 26.5달러로 약 75% 올랐다. 미 IT 전문 매체 리코드(Recode)는 레이크 CEO를 '2017년 가장 영향력 있는 CEO 100인' 중 9위에 선정하면서 "유통업계도 혁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은 레이크 CEO를 2017년 '40세 이하 젊은 경영인 4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면서 스티치픽스를 "패션 회사로 위장한 데이터 회사"라고 설명했다.

바쁜 직장 여성 쇼핑 돕기 위해 창업

옷 골라 배달해주는 회사… 스티치픽스 CEO 카트리나 레이크
원래 레이크 CEO는 아버지 뒤를 이어 의사가 되려고 2001년 스탠퍼드대 의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의학에는 관심이 없었고 경제와 통계에 빠져 경제학과로 전공을 바꿨다. 졸업 후 파르테논 그룹이라는 컨설팅 회사에서 레스토랑과 유통 회사의 컨설팅을 담당하면서 유통업에 눈떴다. 이 과정에서 레이크 CEO는 유통 회사들이 매일 쌓이는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아쉬움을 느끼고, 직접 창업하기로 했다. 그는 창업 아이템을 구체화하고 인맥을 쌓기 위해 2009년 하버드 MBA에 진학했다.

레이크 CEO는 하버드 MBA 지원서에 이렇게 썼다. "남성 엔지니어들은 포커와 야구, 전자제품 가격 비교를 손쉽게 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다양한 분야에 적용해 왔다. 상대적으로 여성 엔지니어가 적기 때문에 '여성 영역'으로 여겨지는 취미와 산업은 이런 기술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기술과 혁신을 주도하는 첨단 유통 회사의 CEO가 되는 게 목표다."

직장 생활을 하고 MBA 과정을 밟으면서 옷 살 시간이 부족했던 레이크 CEO는 쇼핑이 유독 힘들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는 당시 남성 대상으로 옷을 추천하고 배달해 주는 '트렁크 클럽'이라는 스타트업이 연달아 투자를 유치했다는 뉴스를 주목했다. '남성은 (여성과 달리) 쇼핑을 싫어하지만, 멋을 내고 싶어 한다'는 게 트렁크 클럽의 기본 전제였다. 레이크 CEO는 사회 통념과 달리 직장 여성들도 쇼핑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싶어 한다고 판단, 여성 옷 골라주는 사업인 '랙 해빗'을 2011년 시작했다. 수작업으로 하는 옷 추천 서비스는 느렸지만, 서서히 고객이 늘었다. 잠재력을 알아본 벤처캐피털(VC) 베이스라인벤처가 같은 해 75만달러를 투자했고 레이크 CEO는 사명을 스티치픽스로 바꾸고 본사를 보스턴에서 샌프랜시스코로 옮겼다.

알고리즘에 전문가 감각 결합

옷 골라 배달해주는 회사… 스티치픽스 CEO 카트리나 레이크

레이크 CEO는 투자금을 인력에 투자했다. 월마트닷컴 출신 유통 전문가 마이크 스미스를 영입했고, 넷플릭스에서 알고리즘 개발 작업에 참여했던 에릭 콜슨을 최고알고리즘책임자(CAO·Chief Algorithm Officer)로 임명했다. 스티치픽스에는 천체 물리학자부터 신경과학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들이 정교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고객 취향과 행동을 분석하는 데이터 과학자만 80여 명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직접 옷을 고르는 것보다 알고리즘과 전문가가 골라주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게 레이크 CEO의 주장이다.

고객은 스티치픽스 홈페이지에서 간단한 설문조사를 마치고 20달러의 스타일링 비용을 내면 옷 다섯 벌이 담긴 박스를 무료로 배송받는다. 스티치픽스의 알고리즘은 고객의 체형 등 신상 정보, 구매와 반품 기록, 소셜미디어 계정, 사는 곳(춥거나 더운 지역인지 비가 자주 오는지 등)을 포함한 100~150여 가지 정보를 토대로 고객이 좋아할 만한 옷을 추천한다. 옷은 스티치픽스와 협력을 맺은 600여 브랜드에서 공급받는다. 이후 3400명의 스타일리스트가 알고리즘의 추천을 참고해 개별 고객에게 배송할 옷 다섯 벌을 최종 선별한다. 고객은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무료로 반송할 수 있다. 스티치픽스가 보내 준 옷 중 한 벌이라도 구매하면 스타일링 비용 20달러는 돌려받는다.

콜슨 CAO는 "우리는 배송이 특별히 빠르지도 않고 다른 데보다 싸게 옷을 제공하지도 않지만, 정확도가 더 높다"고 말했다. 스티치픽스에 따르면 한 번 옷을 주문한 고객의 재구매율은 85%에 육박한다. 레이크 CEO는 "콜슨이 이끄는 팀은 앞으로 잘 팔릴 만한 제품의 모형을 곧바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작년에는 자체 알고리즘이 디자인한 옷으로 구성된 자체 브랜드도 출시했다.

남성복·고가 제품군으로 사업 확대

스티치픽스는 작년부터 남성복 시장에도 진출했다. 매출 성장세가 2016년 113%에서 작년에 30%로 주춤하자, 사업 확장에 나선 측면도 있다. 여성복에서는 20~50달러대 저가 제품군을 강화하는 동시에 100달러 이상 고가 제품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작년 8월부터 토리 버치, 케이트 스페이드 등 명품 브랜드의 판매를 시작했다. 레이크 CEO는 "당분간 신사업에 투자해 고객층을 넓혀나가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면서 "운동복이나 자체 브랜드 등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실험도 지속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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