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단원도 나이 든 단원도 흠뻑 빠진 젊은 거장 '유쾌한 소통'의 힘

입력 2017.12.30 03:07

[오케스트라 리더십] <3> 구스타보 두다멜

2009년 28세의 나이로 LA 필하모닉 음악감독이 된 구스타보 두다멜은 열정적인 지휘 스타일과 해석으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은 두다멜에게 ‘지휘하기 위해 태어난 동물(conducting animal)’이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2009년 28세의 나이로 LA 필하모닉 음악감독이 된 구스타보 두다멜은 열정적인 지휘 스타일과 해석으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은 두다멜에게 ‘지휘하기 위해 태어난 동물(conducting animal)’이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LA필하모닉
2017년 1월 1일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어라인 황금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신년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인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이 홀을 가득 채웠다. 관객과 연주자가 함께 어깨춤을 추며 즐기는 가운데 지휘자는 쉼 없이 단원과 눈을 맞추고 관객의 박수를 지휘하며 신나게 양팔을 휘두른다. 연주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진다. 지휘자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단상에서 내려와 단원들 곁에서 함께 관객과 인사한다. 175년의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역사상 최연소 지휘자로 선정된 젊은 거장 구스타보 두다멜(Dudamel)의 연주 장면이다. 연주 때마다 록스타 공연장 못지않은 열광과 환호를 끌어내는 에너지로 유명한 두다멜은 정작 연주를 마치면 한 번도 단상에 올라가지 않는 수줍음 많은 지휘자다. 오케스트라 단원 사이를 누비며 관객의 박수를 단원들에게 돌릴 뿐이다.

두다멜은 베네수엘라의 빈민층 유소년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가 길러낸 최고의 스타 음악가다. 1999년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 출신이 모인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또래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던 두다멜은 2004년 말러 지휘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지휘자로 부상했다. 지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필하모닉의 최연소 음악감독으로 재직 중이면서 모국(母國)의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다.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결성 당시 청소년이던 단원들이 모두 성인이 되면서 이름을 바꿨다. 20대에 이미 스타덤에 오른 이 젊은 지휘자가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의 악단과 연주하면서도 늘 환영받는 비결은 젊은 단원이든 나이 든 단원이든 가리지 않고 화합을 이뤄내는 소통의 리더십에 있다.

"지휘자 아닌 단원이 소리를 낸다"

구스타보 두다멜

두다멜이 2009년 LA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스물여덟 살이었다. 그의 전임자였던 에사 페카 살로넨 역시 30대에 취임해 17년 동안 LA 필을 이끌었지만, 나이뿐 아니라 미국과 적대 관계에 있던 베네수엘라 출신 지휘자인 두다멜이 발탁된 것은 파격이었다. 그는 "당시 단원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두다멜의 발탁 소식에 LA 필 단원들의 반응은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2005년부터 객원 지휘자로 LA 필과 두 차례 리허설·공연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겪은 존경심과 열정의 힘이었다. 더블베이스 주자인 데이비드 앨런 무어는 "단순히 단상 위에서 지휘자의 의지로만 모든 것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두다멜은 단원들과 협력하는 분위기를 확실하게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는 스페인 억양이 강하게 섞인 영어를 쓰지만 단원들과 유쾌하게 소통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LA 필 단원들과 진행하는 여러 리허설 영상을 보면 단원들을 북돋우면서도 연기자에 가까울 정도로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동작을 총동원해 원하는 음악적 표현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지적할 때도 명령조를 쓰지 않는다. 그 대신 "한 번만 처음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딱 한 가지만 추가해보면 어떨까요?"라는 식의 화법을 쓴다.

자신의 해석을 설명할 때는 모든 단원이 알아듣기 쉽도록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 가령 베르디의 레퀴엠에서 좀 더 무게감 실린 '마르카토(marcato·음 하나하나를 명확하게)'와 '소스테누토(sostenuto·음을 약간 끌면서 억누르듯)'를 함께 표현할 소절을 설명할 때는 자신의 얼굴을 만화 속 괴물처럼 잔뜩 일그러뜨린 채 "이렇게 노래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진지하게 지휘자를 바라보던 단원들은 그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낸다.

구스타보 두다멜 추천 음반·영상
구스타보 두다멜 추천 음반·영상
그렇다고 두다멜이 모든 오케스트라를 대할 때마다 늘 같은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청소년기부터 함께 자란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는 좀 더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두다멜이 2007년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을 연주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음악의 약속(the promise of music)'을 보면 그가 단원들과 치열하게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두다멜은 친동생을 이끄는 엄격한 장남처럼 강한 눈빛과 손짓으로 "한순간도 연주가 평범해선 안 된다", "음악은 에너지다"고 말하며 단원들을 강하게 채찍질한다.

두다멜은 다양한 연령대의 단원을 이끌어야 하는 지휘자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젊은 지휘자들은 오케스트라 단원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단원들의 경험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소리를 내는 사람은 지휘자가 아니라 단원이다. 그러므로 단원들이 하는 일에 존경심을 보여주지 않으면 결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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