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리 인상, 신흥국엔 폭탄… 내년 중반 이후 대비해야

입력 2017.12.30 03:07

[Cover Story] 2018 경제·경영 5대 키워드

글로벌 거품 빼기

2002년 미국 연준의 이사였던 벤 버냉키는 한 연설에서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수단으로 헬리콥터 머니를 언급했다.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리듯 중앙은행이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을 단행하면 불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본업은 돈의 가치가 희석되는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금융계 인사들은 그의 언급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대형 은행의 잇따른 파산으로 금융시장이 공포에 휩싸인 2008년, 버냉키는 자신의 발언을 현실화했다. 2007년까지만 해도 5.25%였던 기준금리를 2008년 말 제로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금리를 아무리 낮춰도 시장 공포가 사그라들지 않자 3차례에 걸쳐 양적 완화를 단행했다. 돈을 찍어내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대거 매입한 것이다. 시중에는 대신 돈이 풀려 나간다. 2014년까지 양적 완화로 연준이 시장에 직접 투하한 돈이 3조5000억달러를 넘는다. 미국이 간 길을 다른 선진국도 그대로 따랐다. 일본은 2013년부터 국채뿐 아니라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간접 투자하는 '양적·질적 완화'를 실시하고 있다. 유럽도 2015년부터 양적 완화를 도입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전 세계 통화 공급량이 2016년 기준 88조달러(약 9경530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2016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합보다 16% 많은 돈이다.

초저금리 환경에서 풀린 돈은 가계나 기업 또는 정부의 빚으로 이어졌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전 세계 GDP 대비 부채비율은 금융 위기 이전 200% 수준에서 최근 235%로 35%포인트가량 높아졌다. 부채비율을 끌어올린 동력은 주로 중국 등 신흥국이었다. 107% 정도였던 신흥국 부채비율은 위기 이후 10여년 만인 지난해 말 184%로 수직 상승했다. 선진국은 정부 부문 부채비율이, 신흥국은 가계·기업 부문 부채비율이 주로 높아졌다. 거대한 빚더미는 선진국, 신흥국을 막론하고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격을 끌어올렸다.

터진 후라야 거품이 얼마나 끼어 있었는지 알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선진국 중앙은행의 손에 버블(거품) 붕괴의 방아쇠가 걸려 있다는 점이다. 내년 2월 연준 의장이 되는 제롬 파월은 최근 인준 청문회에서 "기준금리를 정상화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연쇄적으로 다른 나라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을 유도한다. 미국이 돈을 빨아들이기 시작하면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고 국외에 있던 달러 자산은 미국으로 돌아간다. 미국 외 국가, 특히 신흥국은 달러 자산 이탈에 따른 시장 충격을 방어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 중앙은행은 지난달 10년 만에 금리를 0.5%로 인상했고, 캐나다 중앙은행도 올해 2차례 금리를 올렸다. 유럽 중앙은행은 내년부터 채권 매입 규모를 월 600억유로에서 300억유로(약 38조원)로 반 토막 내기로 했다. 유로존 경기회복 속도가 미국에는 못 미치지만 양적 완화 규모 축소에 나설 시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겉으로는 양적 완화 지속을 외치고 있는 일본 역시 통화 공급량 목표치를 달성하지 않으면서 점진적인 유동성 회수로 방향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 중반부터 환율 변동 대비해야"

역대 선진국의 금리 인상은 특히 신흥국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1994년 미국은 예고 없이 금리를 2배 올렸다. 물가 상승 우려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전 세계에 스며들어 있던 달러 자금이 금리가 오른 미국으로 되돌아가면서 신흥국에는 폭탄이 떨어졌다. 1994년에는 멕시코 외환 위기가, 1997년에는 아시아 외환 위기가 발생했다. 1999년에도 미국은 물가 불안을 이유로 금리를 올렸다. 1999년 5월 연 4.75%였던 미국 기준금리는 2000년 5월 연 6.5%가 됐다. 이 여파로 저금리 시대에 부풀어 있었던 전 세계 IT 버블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2004~2006년 미국의 17차례에 걸친 금리 인상은 미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와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이어졌다.

토니 푸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시장 참가자들이 리스크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지만, 2018년 중반부터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며 "일단 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신흥국 정부는 단기 외채 비중을 줄이고 환율 변동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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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돌파(1월 25일)→2만4000 돌파(11월 30일).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다우존스지수는 올해 사상 최초 기록을 연거푸 갈아치웠고, 이에 따라 거품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사진은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블룸버그

거품 1. 선진국 주가

美주가 올 초보다 20% 올라… 대공황 이전 연상

미국의 S&P 500지수는 27일 현재 올 초보다 20% 올랐다. 같은 기간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사나흘에 한 번꼴로 최고치를 경신하며 32% 올랐다. 미국 기술주를 대표하는 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FANG) 주가는 올 초에 비해 각각 53%, 57%, 52%, 35% 상승했다. 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던 올해 중반부터 미국 주가에 거품이 끼었다는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책으로 2000년 닷컴버블을 예측한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미국 증시가 1929년 대공황 이전처럼 고평가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논란의 불을 댕겼다. 그는 "1929년 증시가 고점에서 바닥으로 80% 폭락했는데 당시의 계절조정 주가수익비율(CAPE)이 현재보다 그리 크게 높지 않았다"며 "앞으로 대규모 시가총액이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CAPE는 쉴러 교수가 고안한 주가수익비율(PER) 지표다. CAPE가 높다는 것은 기업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주가가 높아, 주가가 고(高)평가되어 있다는 뜻이다. 쉴러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 의견도 적지 않다. 미국 기업들이 과거에 비해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돈을 더 쓰는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 대비 주가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으며, 예전처럼 단순히 수익과 주가를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흔히 '공포지수'라고 불리는 주가변동성지수(VIX)는 10 정도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서 횡보하고 있다. 시장이 급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심할 때 VIX는 상승하는데, 최근에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시장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위험을 감수하고 증시에 돈을 넣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가장 두려운 건 미 연준의 공격적인 움직임"이라며 "연준이 자산 축소를 과도하게 진행하면 증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넘치는 유동성이 증시 활황의 버팀목이 됐듯, 중앙은행발 통화 정책 정상화가 주가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에도 파티가 계속될지는 의견이 나뉜다. 모건스탠리는 2700선 턱밑에 있는 S&P 500주가지수가 내년에 2700에 도달한 뒤 급격히 조정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반면 골드만삭스는 미국 정부의 감세 정책 등을 호재로 내년 S&P 500지수가 2850에 닿을 것으로 본다.

거품 2. 중국 부채

中 부채 증가 속도 GDP 증가율 보다 20~25%p 높아

중국의 대표적인 건설 공기업인 중국도시건설공사는 지난달 초 일부 채권의 이자 지급에 실패했다. 부채가 수조위안에 달해 매번 빚을 빚으로 돌려 막다 자금난을 겪은 것이다. 도시 지역의 상·하수관 등 인프라 건설에 특화된 이 회사는 오랜 기간 중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우량 회사로 여겨졌던 터라 갑작스러운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은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중국 정부는 올해 초에도 부채 삭감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이달 초에도 내년도 경제 계획을 짜면서 부채 위기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신호를 던졌다. 하지만 중국의 부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방방곡곡에서 무섭게 급증하고 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2011년 180%에서 지난 9월 말 255%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우량 대기업이나 중앙정부뿐 아니라 재정 위기에 몰린 지방 정부나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에도 많은 돈이 무분별하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 기업 부채의 9%는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에 지원됐고, 16%는 알루미늄·석탄 등 공급 과잉 분야의 기업에 지원된 것으로 추산된다.

거시 전문가들은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경제성장 속도보다 빠르다는 점도 우려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3~4년간 중국 민간 부문의 부채 증가율은 GDP 증가율보다 20~25%포인트 이상 높았다. 국제결제은행(BIS)은 민간 부채 증가율이 GDP 증가율보다 3년 연속 10%포인트 이상을 웃돌면 심각한 금융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IMF가 실시한 재무건전성 평가 결과에 따르면, 중국 내 33개 주요 중견 은행 중 27곳이 금융 위기에 대응할 만한 충분한 자본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금융 위기 가능성을 지적하면 "10년 전에도 들었던 이야기"라며 손사레를 치곤 한다. 중국 관변 학자들은 중국 기업은 아직 성장 여력이 크기 때문에 빚을 갚을 능력이 있어 부채 규모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최근엔 중국 내부에서도 조금씩 위기감이 새어 나온다. 중국 칭화대 주닝(朱寧) 교수는 중국 경제의 거품이 터지지 않는 것은 금융 위기가 터지더라도 중국 정부가 손실을 보전해줄 것이라는 '암묵의 보증'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최근 분석하면서, 부채로 쌓아올린 경제성장은 점차 한계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그동안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과감하게 부채 감축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1년간 전 세계 주요 도시 중 가장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캐나다 토론토의 아파트. 부동산 임대 수익을 노리는 막대한 차이나머니가 유입되면서 토론토 시내 곳곳에선 지금도 고급 맨션 공사가 한창이다./블룸버그

거품 3. 선진국 부동산

주요 도시 집값 5년간 50% 올라… 소득 증가의 5배

중국 홍콩 외곽의 쿠이충에 사는 주부 리샤오췬(39)씨는 두 아이와 30㎡(9평) 정도의 단칸방에서 생활한다. 가족들은 현관문 앞에 밥상을 차려 놓고 밥을 먹는다. 실내 면적의 3분의 2가량을 침대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집조차 월세가 3000홍콩달러(약 45만원)에 달해 지금 월급으로 리씨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홍콩엔 리씨처럼 열악한 쪽방살이로 내몰린 하층민이 2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동산 투자금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외곽 지역인데도 주택 가격이 3배 넘게 올랐기 때문이다. 매년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인 홍콩의 집값은 올해도 11% 상승했다. 몸을 간신히 가눌 20㎡도 안 되는 공간을 빌리려 해도 최소 월 30만원이 필요하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홍콩, 런던, 토론토, 스톡홀롬, 뮌헨, 밴쿠버, 시드니 등 세계 각국 주요 도시의 주택 가격은 2011년 이후 5년간 50% 넘게 올랐다. 같은 기간 이 도시들 근로자의 소득은 10% 오르는 데 그쳐 세계 곳곳에서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도시 난민'이 급증하는 추세다. UBS는 선진국 대도시 상당수의 주택 가격이 시민들의 임금과 경제성장률 등 기초 경제 여건보다 훨씬 빠르게 급등해 '버블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도시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요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저금리가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부동산 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흘러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년에 5000만원의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주택을 10억원에 구입한다면 연 수익률은 약 5%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연 1% 수익이라도 괜찮다"며 기대 수익을 낮출 경우, 부동산 가격은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5배 가까이 뛸 여지가 생긴다. 밴쿠버 등 주요 선진국의 고급 맨션은 빈집이 많은데도 연 2~3%의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하루 이틀 만에 싹쓸이 투자를 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 가격 상승은 종종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진다. 최근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주택 가격이 몇 배로 뛰자 영국 정부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주택 위기'를 불러왔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신규 주택 건설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자 기존 주택 소유자들이 "돈을 펑펑 쓰는 젊은 층을 위한 포퓰리즘"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기존 집값 하락을 우려해서다. 주택부 장관이 나서 "이기적인 베이비부머가 젊은이들을 거리로 내몬다"며 반박하는 소동이 벌어지는 등 전 세계가 부동산 가격 급등에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블룸버그

거품 4. 신흥국 자산 시장

신흥국 채권 규모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

지난 6월 아르헨티나 정부는 100년 만기 국채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발행 규모가 27억달러에 달했지만, 청약률이 3.5대1을 기록할 정도로 투자 열기가 뜨거웠다. 100년 만기 국채는 보통 신용등급이 우수한 선진국만 매우 이례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신용등급이 'AA'(S&P기준)인 한국도 만기가 가장 긴 국채는 50년물(物)이다. 100년 만기 국채는 앞으로 100년 동안 빚을 꼬박꼬박 갚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신용이 우수한 국가만 발행하는 게 국제 금융가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지난 100년간 무려 여섯 번이나 빚을 못 갚겠다고 선언한 '신용 불량' 국가다. 불과 3년 전에도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몰린 적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은 투기 등급인 'B+'(S&P기준)로, 한국보다 11단계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돈 풀기가 없었더라면 아르헨티나의 100년 만기 국채 발행은 상상도 못할 광경이다. 투자자들이 아르헨티나의 100년 만기 국채 투자에 열을 올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금리(연 7.12%)가 다른 국채보다 2배가량 높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국채 투자 열기는 신흥국 자산 버블의 한 단면이다. 신용이 낮은 기업·기관도 돈을 쉽게 빌릴 수 있게 되자, 신흥국에서 발행된 채권 규모는 5년 전보다 두 배 넘게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주식 시장 역시 뜨겁다. 터키·인도네시아 등 거시 경제 지표가 취약한 신흥국의 주가지수조차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24개 신흥 시장 주가를 종합한 모건스탠리인터내셔널(MSCI) 이머징마켓 지수는 1년 전보다 30% 가까이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형주 중심의 S&P 지수보다 약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신흥국 투자 열기가 본격적으로 과열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유럽·일본 등 주요국이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자 조금이라도 더 높은 이자를 원하는 '금리 사냥꾼'이 신흥국에 막대한 자금을 붓기 시작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경기 회복 등과 맞물려 신흥국의 거시 경제 지표가 회복된 것도 한몫했다. 올해 상반기 신흥국의 대표 주자인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경제성장률이 3년 만에 모두 플러스를 기록했다.

신흥국 버블이 붕괴되면 그 여파가 곧바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 열기가 과열된 지금의 상황에선 신흥국 자산 가격 하락이 해외 자본 이탈의 신호탄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본격적인 선진국 금융기관의 펀드런을 촉발해 우량 회사채 가격과 주가도 덩달아 급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악의 경우 상당수 중견 기업이 자금 경색을 겪을 수 있다. UBS, 누버거버먼 등 일부 월스트리트 금융회사들은 공개적으로 신흥국 시장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이는 중이다.

거품 5. 비트코인 등 '주변부 자산' 폭등

비트코인 열풍 외 정크 본드·미술품값 수십배 뛰어

지난 21일 뉴욕증시에서 미국의 소형 음료 기업인 '롱아일랜드아이스티(Long Island Iced tea)'의 주가가 2.4달러에서 9.5달러로 난데없이 3배 가까이 급등했다.

별다른 호재(好材)가 없었던 이 회사 주가가 뛴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회사 이름을 '롱블록체인'으로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블록체인은 최근 투기 열풍이 불고 있는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의 근간(根幹) 기술이다. 회사 측도 당황했다. 새로운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하지도 않았을뿐더러 블록체인 관련 유력 기업과 제휴를 맺은 것조차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회사명을 바꾼 것만으로 투기꾼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주가를 끌어올린 것이다. 이날 이 회사 주식 거래량은 17만주에 달했는데, 이는 지난 3개월간의 거래량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올해 초부터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불면서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묻지 마 투자'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비트코인 거래 초창기였던 2010년 비트코인 교환 비율은 1코인당 30센트에 불과했으나, 올해 초 1000달러를 돌파한 이후 순식간에 1만7000달러까지 치솟자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난해 말까지 비트코인 투자자들은 '공급량이 한정된 미래 화폐'라는 점을 투자의 주된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너도나도 가격이 급등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투기 열풍에 뛰어들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비트코인과 같은 투기 자산의 가격이 급등하는 지금의 상황을 '옴니버블(omni-bubble) 시대'라고도 부른다. 사실상 가격표가 붙은 모든 자산의 가격에 거품이 끼었다는 지적이다. 중앙은행들이 막대한 돈을 푸는 바람에 투자자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자 주식·채권·부동산과 같은 전통적인 투자 자산은 물론 정크 본드, 미술품, 사치품 등 미래 현금 흐름이 불확실한 자산 가격도 덩달아 수십배 가까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가격이 치솟자 리플, 라이트코인 등 이른바 잡(雜)코인의 가격도 덩달아 뛰는 것도 옴니버블 시대의 한 단면이다.

이러한 주변부 자산의 가격 추이는 최근까지 전 세계 금융정책 당국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들 자산 가격이 급락하더라도 닷컴 버블이나 글로벌 금융 위기 때처럼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 만큼 거래 비중이 크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권에서 '삼성전자 주식의 가격 약세가 비트코인 열풍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쏠림 현상이 심해지면서 각국 정부도 뒤늦게야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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